알츠하이머병 같은 노화 질환은 ‘신피질 팽창’을 일으키며 놀랍게 진화한 인간 뇌가 겪는 대가일 수 있다?
인간과 영장류의 유전체(게놈)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해 ‘그럴 가능성’을 제시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다른 영장류와 달리 인간 뇌의 빠른 진화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을 인간 고유의 유전인자들이 다른 한편에선 노인성 질환을 일으키는 부정적인 상관관계도 함께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엠디 앤더슨암센터 소속 연구진은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디엔에이(DNA) 염기서열 부위를 가리키는 ‘인핸서(enhancer)’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인간 진화와 노화의 관계를 분석해 이런 결론을 생물학저널
<셀 시스템즈(Cell Systems)>에 최근 발표했다. 논문의 요지는 인간 고유의 뇌 발달에 기여한 인핸서 정보를 다수 찾아내어 살펴보니, 이들은 성장기엔 뇌 발달에 기여하지만 성숙기 이후엔 암이나 노화 질환에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노화의 진화’ 가설 중 하나를 유전자 수준에서 확인하기 위한 이뤄졌다. 1957년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스(George Williams)는 유전자 하나가 여러 형질의 발현에 관여할 수 있다는 ‘유전자 다면발현’ 이론에 바탕을 두어 노화의 진화를 설명했다. 생애 초기에 적응도(fitness)를 최대화 하는 진화 적응으로 인해, 성숙기 이후에는 그 대가로 질병의 부담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최대의 적응을 위해 진력하는 유전자는 노화와 질병에 취약해지는 ‘길항적인(적대적인) 다면발현’의 특성을 띠지만, 노년기에 취약하더라도 생애 초기에 적응력이 높은 유전자는 자연선택을 피해 후대에 유전될 수 있다.
연구진은 먼저 인간과 영장류의 신경조직에 있는 인핸서들의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비교분석해 인간과 침팬지의 종 분화 이후에 인간한테만 나타나는 인핸서 93가지를 찾아냈다. 이들의 활성은 주로 신경줄기세포나 신경세포(뉴런)에서 나타났다.
이런 인핸서들은 노화 질병에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암 촉진 유전자들과 상관관계를 지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인핸서들이 놓인 디엔에이 염기서열 부위의 인근에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당뇨병 같은 주요 노화 질환의 관련 유전자들도 많이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가운데 특정 인핸서 하나를 골라 그 기능을 확인하는 실험을 벌였다. 이 인핸서가 알츠하이머병 관련 유전자를 억제하는 특정 유전자(REST)의 기능을 막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알츠하이머병 관련 유전자들의 발현을 촉진한다는 실험결과를 제시했다. 연구진은 디엔에이 염기서열을 절단하는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 기법을 써서 인간 세포에서 이 인핸서의 기능을 없앴더니, 알츠하이머병 관련 유전자들의 발현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이 인핸서가 존재할 때에는 알츠하이머병 관련 유전자들의 발현이 촉진됐다.
이번 연구결과를 보면, 인간 신경줄기세포 등에 있는 인간 고유의 인핸서들은 생애 초기에 인간 뇌 발달을 돕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 동일한 인핸서들이 성숙기 이후에는 노화 질환을 일으키는 경로에 관여하는 부정적인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인간 고유의 인핸서들과 노화 질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음을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그 둘 간에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연구진은 인간 뇌의 빠른 진화 과정에 나타난 유전자 차원의 적응과 변화가 알츠하이머병 같은 노화 질환에 대한 현대인의 취약성과 관련 있으리라는 해석을 제시했다. 오철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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