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용 쥐의 뇌에 축적된 병원성 인간 프리온 단백질의 영상. 미국 케이스웨스턴 리저브대학 연구진 제공
“인체 내에는 정상적인 프리온 단백질(PrP)이 있는데 이것이 비정상적인 프리온 단백질(PrPSc)로 변형되어 세포 내에서 분해되지 않고 축척되면 중추 신경계의 변성을 유발하게 된다. 이때 발생하는 질병이 ‘전염성 해면양 뇌병증(TSE)’이며 이중 대표적인 질환이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이다.”(질병관리본부,
<2017년도 크로이츠펠트-야콥병 관리지침>)
발병과정이 잘 알려지지 않은 ‘산발성 크로이츠펠트-야콥병(sCJD)’의 원인 단백질 프리온의 정체가 이제 점차 드러날까? 연구용으로 쓸 수 있는 인간 프리온 단백질이 실험실에서 처음으로 합성됐다. 연구용 인간 프리온 단백질의 인공합성을 이뤄낸 미국 연구진은 연구용 프리온이 앞으로 프리온의 구조와 성질, 그리고 질환 발병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산발성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은 오염된 소고기를 통해 감염돼 ‘인간광우병’으로도 불리는 ‘변형 크로이츠벨트-야콥병(vCJD)’과는 다른 것으로, 발병 과정이 잘 알려지지 않은 채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마찬가지로 뇌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미국 오하이오 주에 있는 케이스웨스턴 리저브대학교 소속 연구진은 최근 유전자 변형 대장균을 이용해 인간 프리온 단백질을 합성해 만드는 데 성공했다며 그 연구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이렇게 만든 인공의 인간 프리온 단백질은 실험동물 쥐를 대상으로 한 감염 실험에서 자연의 인간 프리온과 같은 감염성과 신경독성을 띠는 것으로 나타냈다고 전했다.
프리온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보여주는 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병원성 프리온은 뇌 세포 안에 있는 정상 프리온 단백질의 3차원 구조에 잘못 접힌 부분이 생겨나 만들어지는 비정상 변형체로서, 주변 단백질을 변형 프리온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비정상 프리온을 복제, 전파함으로써 치명적인 뇌질환을 일으킨다. 국내에선 변형 크로이츠벨트-야콥병(vCJD)의 발병 사례는 아직 없으나 산발성 크로이츠벨트-야콥병(sCJD)의 발병은 많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발병 과정과 치료법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진이 속한
대학의 보도자료를 보면, 그동안 인간의 프리온 질환 단백질을 연구하는 데엔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연구에 쓸 수 있는 감염성 인간 프리온 단백질을 실험실에서 얻기 어려워, 인간 대신에 쥐를 감염하는 다른 동물의 프리온이 실험용으로 주로 쓰였으나, 동물 연구 결과를 인간 프리온 질환에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이 때문에 인간 프리온 합성은 인간 프리온 질환을 연구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연구진은 대장균을 이용하는 합성생물학 기법을 써서 연구용 인간 프리온 단백질을 합성해냈다. 인간 프리온을 합성하는 유전자 변형 대장균을 만들고, 여기에 프리온 단백질의 모체와 특정 분자를 넣어주어 인간 프리온 단백질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든 인공합성 단백질이 인간 프리온 질환 연구에 실제로 쓰일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인간 유전자 일부를 갖추고 있는 실험용 쥐에서 감염 실험을 벌었다. 두 그룹의 실험용 쥐들에서는 인공 단백질에 감염된 지 각각 459일과 224일 뒤에 프리온 질환 증상이 나타났다. 인공 단백질이 인간 프리온 질환을 일으키는 프리온의 구조와 성질을 지녀 연구용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 프리온을 만드는 과정에선 프리온의 전파를 억제할 수 있을 만한 후보 물질도 발견됐다. 연구진은 감염 능력을 갖춘 인간 프리온이 합성하는 데엔 특정 분자(‘강글리오시드 지엠1’, Ganglioside GM1)가 필요한데, 이 분자가 프리온의 감염 전파를 촉발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프리온의 감염력을 촉발하는 이 분자의 기능을 표적으로 삼아 억제하면 프리온의 감염 확산도 억제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지금까지 프리온 단백질에 대한 이해는 제한적이었지만 실험실에서 인간 프리온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면서 앞으로 프리온의 구조와 복제 현상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