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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새로운 항암 전략…암세포 방어술 낮추고 면역세포 공격력 높이고

등록 2018-07-02 10:54수정 2018-07-02 11:43

[한겨레 미래&과학]
주목받는 ‘항암 면역치료’ 어떻게

암과 면역 사이 ‘세포들의 전쟁’
암세포 생존 비결은 면역 회피
교란하고…위장하고…무력화하고
항암제-방사선등 치료법으론 한계

항체약물로 암세포 생존비법 차단
‘잃어버린 항암 면역’ 살리기 주력
면역세포(T세포)들이 암세포를 공격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면역세포(T세포)들이 암세포를 공격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암세포에 맞서는 새로운 항암 치료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항암 치료가 수술, 항암제, 방사선처럼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우리 몸 면역계의 ‘잃어버린 항암 능력’을 회복하고 증강하는 면역치료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약 연구자인 윤태진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요즘 관련 학회에 가보면 ‘항암 면역치료’를 다루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면역 항암이 큰 흐름이 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이미 대략 26건의 면역치료법이 임상시험을 거쳐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일부는 치료 효과에서 제한적이지만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 항암 면역 연구는 한 세기를 넘겼으나 실제 치료법이 주목받는 것은 2010년대인 최근이다.

암세포 생존 비법은 ‘면역계 무력화’

암세포의 생명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암세포 분자유전학을 연구하는 이현숙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는 놀라울 정도로 무작위적인 돌연변이 능력을 꼽았다. 그는 “세포 돌연변이가 정상에 비해 100배 내지 1만 배 높아질 때 암세포가 출현하는데 점점 더 디엔에이(DNA)도, 유전체도 불안정해진다”면서 “그 많은 돌연변이 중에서 면역계를 피하고 전이 환경에 적응하며 ‘자연선택’ 되어 살아남은 게 암세포이니 생존력이 강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볼 때 암 질환은 암과 면역 사이에 벌어지는 ‘세포들의 전쟁’으로도 이해된다. 암세포 세력이 약할 때엔 면역세포에 제압되지만, 면역 감시망을 뚫는 돌연변이 암세포들이 생겨나고 그 세력이 균형의 문턱을 넘어설 때 암 질환이 생긴다는 것이다.

특히나 암세포는 공격수 면역세포인 티세포(T세포)의 공격을 손쉽게 무력화하는 수단을 갖추고 있다는 게 밝혀졌다. 사기충천한 티세포에서는 면역 공격을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관문인 이른바 ‘면역 관문’ 시스템이 작동하는데, 암세포는 이를 이용해 티세포 활성을 정지시킬 수 있다.

티세포의 항암 면역을 연구하는 신의철 카이스트 교수(면역·감염질환 연구실)는 “면역 관문은 면역 공격이 과도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티세포 활성을 제어하는 메커니즘”이라며 “활성 띤 티세포의 표면에 생겨나는 ‘피디-1’(PD-1)이라는 수용체(신호감지 단백질)에 ‘피디-엘1’(PD-L1)이라는 리간드(짝 단백질)이 달라붙으면 ‘티세포 활성 정지’ 스위치가 켜진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암세포들이 피디-엘1 단백질을 다량으로 달고 다닌다는 데 있다.

신 교수는 “이 때문에 암세포가 자신을 공격하러 온 티세포의 활성을 억제해 탈진 상태로 만드는 상황이 벌어진다”면서 “이런 일이 암 환자한테서 꽤나 흔히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암세포는 위장술을 넘어 티세포 공격을 무력화하는 방어수단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암세포는 덩어리를 이루면 더 강해진다. 많은 암조직은 면역세포 침투를 아예 막아 ‘면역의 사막’이 된다. 일부 면역세포가 암조직 안에 살지만 면역계가 믿을 만한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김인산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테라그노시스연구단)은 “일부 암조직에서 면역세포들이 발견되는데, 공격형 면역세포는 거의 없고 면역반응을 오히려 억제하거나 뒷수습 하는 면역세포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항암 면역’일깨우는 항체들

암세포 생존비법이 밝혀지면서, 항암 면역치료의 초점도 암세포 방어술을 차단하고 면역세포 공격력을 높이는 쪽에 맞춰지고 있다. 특히 암세포가 악용하는 티세포의 ‘면역 관문’ 자체를 닫아버리는 항체 약물의 개발은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면역 관문 작용을 닫기 위해 연구자들이 찾아낸 방식은 두 갈래다. 면역 활동 정지 신호를 수신하는 티세포의 수용체(피디-1)를 막아버리는 항체를 만들거나, 면역 활동 정지 신호를 송신하는 암세포의 단백질(피디-엘1)을 막는 항체를 만드는 전략이다. 이렇게 면역 관문에서 신호 송신 또는 수신을 아예 막아버리면 티세포는 활성 정지 없이 면역 공격을 계속할 수 있다.

신의철 교수는 항체 약물 전략을 “암세포가 누르고 있던 ‘면역 브레이크’를 해제하는 것”에 비유했다. “기존 항암 치료가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것이라면 면역치료는 잠긴 브레이크를 풀어 면역세포 공격력을 되살리는 것이다.”

티세포를 후방에서 돕는 또 다른 면역세포인 수지상세포에 주목하는 항암 연구도 있다. 수지상세포는 티세포가 공격 대상으로 삼는 항원들의 정보를 수집해 티세포에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암세포를 잡아먹어 분해하고서 암세포임을 식별해주는 암 고유의 항원 정보를 골라내어 ‘신병훈련소’(림프절)에 있는 출동 전 티세포들에게 알려준다. 당연히 수지상세포가 새로운 항원 정보를 많이 수집할수록 면역 감시와 공격은 강해진다.

그런데 암세포는 정보를 수집하는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는 위장술도 갖추고 있다. ‘나를 먹지 말라’는 신호 물질을 암세포 표면에 달아 수지상세포나 대식세포의 공격을 피한다. 이런 암세포 위장술을 차단하거나 수지상세포의 능력을 증강하는 것도 면역 항암 효과를 높이는 연구 주제가 된다. 수지상세포의 항암 면역을 연구하는 김인산 책임연구원은 “면역 초기 단계에 있는 수지상세포의 능력 회복과 강화는 이후 단계에 있는 티세포 활동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면역의 기초를 다지는 데 중요한 항암 치료 전략”이라고 말했다.

실험실에서 T세포 공격력 증강해 재투입

공격수 면역세포 자체를 강하게 만드는 ‘카-티’(CAR-T)라는 첨단 세포치료법도 주목을 받고 있다. 암 환자의 피나 암조직에서 티세포를 걸러낸 다음에 체외 실험실에서 특정 암세포의 항원에 강하게 반응하도록 그 유전형질을 바꾸어준다. 이렇게 만든 티세포를 환자의 암조직에 넣으면 강력한 암세포 공격이 이뤄진다. 아직 혈액암 같은 일부 암에서만 효과를 내고 강력해진 티세포가 과다 면역반응을 일으킬 위험도 있다는 점은 넘어야 할 한계로 지적된다. 윤태진 유한양행 수석연구원은 “이런 한계도 있지만 잠재력도 커서 최근 글로벌 제약사들이 카-티 세포치료 연구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면역치료 연구는 주로 항체 약물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김인산 책임연구원은 “항체 약물 요법이 훨씬 전부터 많은 연구를 거쳤고 여러 암종 환자들에게 널리 쓰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숙제들이 있다. 항체 약물에 잘 반응하는 암 환자들은 아직 제한적이고 의료비가 매우 비싸기 때문에, 치료 효과를 넓히고 높이는 연구와 더불어 항체 약물에 잘 반응할 환자를 예측하는 검사법 개발도 필요하다. 기존 항암 치료에 면역치료를 어떻게 결합할지도 주요 관심사다. 우리 몸 면역계에 작용하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면역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연구도 계속돼야 한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남는 궁금증 하나. 독감을 앓고 완치되면 항체가 생기듯이, 한번 암 질환을 앓은 뒤에 완치되었다면 암에 대한 면역력도 생길까?

신의철 카이스트 교수는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그는 “실험실에서 암이 발병했다가 면역치료로 완치된 실험동물 생쥐한테 이전과 똑같은 암세포를 이식하면 암세포가 자라지 않는 경우도 관찰된다. 일종의 ‘기억 면역’으로 생각된다”면서 “암 면역력이 실재하는지, 어떻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그 상세한 메커니즘을 밝히는 것도 연구자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연구주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돌연변이를 일으켜 출현하는 새로운 독감 바이러스에 이전의 항체가 소용없듯이, 돌연변이에 능한 암세포에 대해 언제나 작용하는 암 면역력이 존재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보고 있다. 실험동물 생쥐한테 암 면역력이 생겼다면, 그것은 이전에 발병했던 암세포와 ‘동일한 암세포’에만 반응하는 특정한 항체나 티세포의 면역력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환자와 많은 종류의 암에서 치료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항암 면역 항체를 찾으려는 것은 이 분야의 지속적인 목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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