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핀(왼쪽)과 기초과학연구원·막스플랑크 한국/포스텍 연구소 공동연구팀이 합성한 위성 강자성체(오른쪽).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국내 연구진이 위상학적 전자상태와 강자성을 동시에 가져 정보 손실 없는 양자 소자를 구현할 수 있는 신물질을 발견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24일 “원자제어 저차원 전자계 연구단의 김준성 연구위원(포스텍 물리학과)과 강상관계 물질 연구단의 양범정 연구위원(서울대 물리학과), 막스플랑크 한국·포스텍 연구소(MPK)의 김규 박사 등 공동연구팀이 철 원자를 기반으로 한 합성물질(Fe₃GeTe₂)이 강자성과 위상성질을 동시에 가지는 물질임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위상학(Topology)은 연속적인 변형에도 변하지 않는 물체의 특성을 연구하는 수학의 한 분야이다. 과학자들은 분류하기를 좋아한다. 젊은 사람과 늙은 사람처럼 분류하기 애매한 기준보다 남자와 여자처럼 칼로 무 자르듯 딱 떨어지는 분류를 선호한다.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 성인이 되고 늙어 죽더라도 변하지 않는 특성에 비유할 수 있다. 머그컵과 도넛이 모양은 다르지만 위상학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구멍이 하나이기에 구멍을 메우는 급격한 변화가 없다면 변형시켜 닮은꼴을 만들 수 있다. 머그컵과 도넛은 골프공과는 위상학적으로 다르다. 골프공으로는 머그컵을 만들 수 없다. 물리학자들은 일찍이 물질 분류에 이런 위성학 개념을 도입했다. 그 공로로 2016년 물리학자 3명이 노벨물리학상을 받기도 했다. 가령 물질은 스핀(전자 스스로의 회전운동)이 정수냐 반정수냐는 위상학적 숫자에 따라 ‘보손’(보스입자)과 ‘페르미온’(페르미입자)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나 중성미자는 페르미온, 광양자는 보손에 속한다.
위상물질의 특징은 뫼비우스의 띠에 비유할 수 있다. 뫼비우스의 띠는 이리저리 돌려봐도 그것을 찢지 않으면 정상적인 띠로 만들 수 없다. 위상물질의 전자구조는 물질의 화학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계속 보존된다. 이런 위상학적 안정성을 활용하면 외부 잡음에 강하면서도 정보 손실이 없는 양자 소자를 구현할 수 있어 위상물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연구팀이 합성한 물질(Fe₃GeTe₂)은 그래핀과 비슷한 점이 많다. 육각 벌집형태에 반데르발스 구조도 나타난다. 벌집구조는 위상학적 특징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인데, 그래핀이 탄소로만 이뤄진 구조인 데 비해 새 합성물질은 철(Fe) 원자와 게르마늄(Ge) 원자로 이뤄진 층에 텔루륨(Te)이 끼어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이들은 반데르발스 힘으로 연결돼 있다. 물질을 이루는 원소들이 결합할 때 분자간 약한 인력으로 결합한 것을 반데르발스 구조라 한다. 이 구조를 이용해 신물질도 그래핀처럼 한층씩 떼어내 2차원 강자성체를 만들 수 있다.
특히 합성물질은 강자성(외부에서 자기장이 가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스스로 자기화가 되어 자석이 되는 성질) 물체여서 전자의 스핀 방향이 대부분 한쪽으로 향해 있어, 외부 자극 없이 전자 각자의 스핀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휘어지는 ‘이상(비정상) 홀 효과’라는 물리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연구팀은 “위상 상태의 강한 이상 홀 효과를 이용하면 스핀 전류 조절과 스핀 정보 전달 방법을 응용할 수 있어 스핀을 읽고 쓸 수 있는 미래형 정보소자 개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연구팀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 머티리얼스> 17일(현지시각)치에 실렸다.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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