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미생물(박테리아)과 함께 산다. 몸 안의 장내에도 입안에도 많은 미생물이 다양하게 산다. 몸 밖의 피부에도 미생물은 많다. 건강한 몸에선 별 탈 없이 공생하는 미생물들이고 개중엔 오히려 몸의 건강에 꼭 필요한 것도 일부 있다. 우리 주변 환경에도 많은 미생물들이 산다. 그런 미생물 종 분포는 사람들의 일상생활 패턴에 따라서 바뀌기도 한다.
날마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대도시 지하철에서 많은 사람이 바쁘게 이동하듯이, 지하철의 박테리아 세계도 하루 동안 분주하게 바뀐다. 아침에는 미생물의 종 분포가 지하철 노선별로 다르지만 저녁 시간에 이르러선 거의 비슷한 종 분포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500만 명이 이용하는 홍콩 지하철의 미생물 조사 결과이다. 이 결과는
생물학술지 <셀 리포트(Cell Reports)>에 최근 보고됐다.
중국 홍콩특별행정구 홍콩대학과 독일 한스크뇔연구소 소속 연구진은 홍콩 내 운행 지하철들과 일부 중국 내륙을 거쳐 가는 지하철 등 총 8개 노선에서 미생물이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지하철 노선별로 출퇴근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손바닥 피부에 묻어 있는 미생물 종을 조사했다.
조사는 이런 식으로 진행됐다. 먼저 자원봉사자들은 지하철을 타기 직전에 손을 비누로 깨끗이 씻는다. 그러고서 아침과 저녁에 붐비는 시간대에 한 노선의 지하철을 30분 동안 탄다. 지하철 안에서는 손잡이나 철봉 같은 사람 손을 많이 닿는 곳을 자주 만진다. 자원봉사자들이 열차에서 내리면, 연구자들은 이들의 손바닥을 면봉으로 닦아 조사대상의 시료를 채집한다. 3주에 걸쳐 지하철 노선별로 3차례씩 이런 시료 채취 과정을 거친다. 연구자들은 시료에 있는 모든 디엔에이 염기서열을 분석해서 이 시료에 있는 미생물 종들을 식별해낸다.
홍콩 지하철 노선들에서 아침과 저녁 사이에 미생물(박테리아)이 뒤섞이는 패턴을 보여주는 그림. 아침엔 노선별로 특징적인 미생물이 나타나지만(위) 저녁 시간대에는 미생물들이 섞여 비슷한 분포가 나타난다(아래). 출처: @CellPressNews
이런 과정을 거친 조사결과에서는, 아침과 저녁 시간대의 시료들에서 미생물 종 분포의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고 한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아침엔 지하철 노선별로 서로 다른 특징적인 미생물 종 분포가 나타났으나 저녁엔 거의 모든 지하철 노선에서 미생물 종 분포가 비슷하게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아침의 지하철 노선에 나타난 차이는 노선별로 다른 특징에서 비롯한 것으로 풀이됐다. 예컨대 해안가를 거치는 지하철 노선에서는 물에 사는 미생물의 디엔에이가 가장 많이 검출됐으며, 산악 지형을 지나는 통과하는 지하철 노선에선 높은 고도에서 흔히 발견되는 미생물의 디엔에이가 많이 나타났다. 하지만 낮 시간대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저녁에 채취한 시료에서는 매우 고립적인 운행 노선을 오가는 지하철 노선을 빼고 거의 모든 지하철 노선들에서는 주로 사람들의 피부에 흔히 사는 미생물 종들이 거의 비슷하게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런 결과는 날마다 살균 위생처리 과정을 거치는 홍콩 지하철 열차에서, 아침에는 사람의 영향을 덜 받아 노선별 특징이 나타나다가 낮 시간대에 많은 사람이 지하철을 타고 오가면서 점차 사람 피부에 흔히 사는 미생물 종들이 지하철 미생물 계에서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풀이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병원성을 띠는 미생물도 일부 식별되었으나 심각한 수준의 병원성 미생물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그렇지만 주목할 점은 있다. 항생제에 저항적인 유전자(ARG)들이 아침엔 일부 노선에서만 특징적으로 나타났지만 저녁에 이르러선 거의 모든 노선에서 비슷하게 검출된 점은 유의할 만하다고 연구진은 보고했다. 항생제 사용이 잦은 중국 내륙을 거치는 특정 노선을 통해 이런 유전 물질이 홍콩의 전체 지하철 노선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풀이됐다. 홍콩에서는 2003년 심각한 바이러스성 전염병인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파동을 겪은 이후에 공중위생 정책이 크게 강화됐다.
사실 박테리아들은 모든 사람의 모든 일상생활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렇게 보면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사람들의 이동으로 미생물들의 종 분포가 변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번 연구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수단인 지하철의 실제 사례에서 이런 미생물 분포의 변화를 보여주었다는 점, 그리고 노선별로 나른 특징적인 미생물 분포가 아침과 저녁 사이에 전체 노선에서 균질화할 정도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연구진은 일상적인 대중교통 수단인 지하철 열차 안의 미생물 분포에서 크게 위험한 요소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들은
보도자료과
언론매체 <기즈모드(Gizmodo)>의 보도에서 “이번 연구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사람들이 늘 다양한 박테리아에 노출되어 있음을 인식하자는 것이고, 또한 우리가 도시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마주하는 박테리아 유형도 달라질 수 있음을 인식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연구는 공중위생 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도 대도시 지하철 안의 미생물 분포를 조사한 적은 있다. 2016년 미국 연구자들이
보스턴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손이 자주 닿는 매표소, 열차 손잡이 등에서 시료를 채취해 미생물 분포를 조사해 발표한 바 있다. 당시에 지하철에서 조사된 미생물 대부분이 사람 피부에 공생하는 미생물이었으며 병원성 미생물은 검출되지 않았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