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라이프>의 포스터. 출처: JTBC <라이프> 홈페이지
드라마 <라이프> 첫 화를 여는 장면 하나.
진하게 선팅을 한 세단이 급정거한다. 차 앞에 선 응급의학과 전공의 예진우(이동욱 분)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세단을 바라보지만, 차 안은 보이지 않는다. 세단은 예진우를 지나친다. 예진우는 병원장이 사고사했음을 알고 비탄에 빠져 있다.
다음 화, 세단의 뒷자리에 탄 구승효 총괄사장(조승우 분)의 하루를 비추던 카메라는 세단 안으로 들어가 앞의 장면을 다른 시점에서 반복한다. 두 신은 겹쳐 아직 마주치지 않아 서로를 모르는 두 사람이 갈등의 축이 될 것이라는 암시를 전한다.
국내 의학 드라마 하면, 기존 병원 내 권력 암투를 흡인력 있게 그려냈던 <하얀거탑>, 병원의 천태만상을 밀도 있게 그려내며 정통 의학 드라마로서 자리매김함과 동시에 큰 사건마다 그 제목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게 된 <골든 타임>, 천재 괴짜 의사의 행보를 통해 ‘진짜 의사’를 보이고자 했던 <낭만닥터 김사부>가 떠오른다. 하지만 현재 막 중반을 넘어선 드라마 <라이프>는 기존 의학 드라마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먼저 의학 드라마의 화면을 점하던 의학 용어를 설명하는 자막이 등장하지 않는다. 더불어 그간의 작품들은 핵심 갈등을 의료인끼리 또는 의료인과 환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간적 갈등이나 원칙과 현실, 이상과 제도 사이에서 벌어지는 신념의 충돌에서 빌어왔다. 하지만 “살리기 위해, 우리가 먼저 살아야 했다”라는 포스터의 문구처럼, <라이프>는 갈등을 병원의 생존이라는 한국 의료계의 특수한 상황에서 가져온다. 이 점이 한국 의료계의 특수한 상황인 이유는 이미 외상외과 이국종 교수가 절절히 외친 바 있다. 1970년대 의료 서비스의 급속한 확대를 위해 기형적으로 설계된 의료 시스템이 고착되고, 2000년대를 쫓아가지 못해 드러나고 있는 한계들 말이다.
드라마의 설정과 실제 한국의 의료 현실
하지만 아쉽게도 드라마 <라이프>는 처음부터 그 동력을 상실한 채 시작한다. 이수연 작가의 전작 <비밀의 숲>이 수사물로 출발해 사회 고발로 끝난 사회파 드라마였기에 이번 작품 또한 같은 구도에서 살피는 것이 당연한 듯 보이나, 전작과는 달리 흡인력이 떨어진다. 그 이유는 한국 사회의 현실과는 너무도 괴리가 큰 설정을 작가가 내세웠기 때문이다. 배경 설정을 한번 보자.
드라마 <라이프>는 외부에서 병원을 바꾸려고 들어온 항원(抗原, 생체 속에 침입하여 항체를 형성하게 하는 물질) 구승효 사장에 대항하는 항체(抗體, 항원의 자극에 의하여 생체 내에 만들어져 특이하게 항원과 결합하는 단백질) 예진우 선생의 갈등과 그 과정에서 서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그리고 있다. 생사의 사투 자체가 이미 갈등을 충만하게 내포하고 있기에 기존 드라마가 수술방의 급박함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라이프>는 그 뒤에 있는 갈등, 즉 의료 시스템의 방향성을 놓고 벌이는 싸움을 병원이라는 축소판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출처: JTBC <라이프> 홈페이지
소위 빅 파이브(현실에서는 서울대학교병원, 신촌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의 다섯 개이다) 병원 중 하나가 속해 있던 사립대학 재단이 대기업에 넘어간다. 기업은 이전 물류 계열사를 담당하고 있던 구승효 사장을 병원 사장으로 내정, 병원 구조조정을 시도한다. 구 사장을 병원에 보낸 이유는 병원장을 위시한 의사들이 기업의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한 성과급제 등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구 사장은 병원장이 사고로 사망한 틈을 타 적자 상위 3개 과, 즉 응급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를 지방의료원으로 파견 보내고 환자 정보를 계열 생명보험사로 넘기는 등의 전략을 통해 병원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국내 의료 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겐 이런 구도가 어색해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비록 기업이 병원을 통해 이익을 남기려 한다는 사실이 괘씸해 보이긴 하지만, 병원이라고 회사와 다르지 않을 텐데 전문경영인이 이익 극대화 또는 경영 효율화를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시도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빅 파이브라고 불리는 대형병원에선.
먼저, 의료법상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 있는 주체는 의료인, 국가, 의료법인, 비영리법인 등으로 한정되어 있다. 설정상 배경으로 나오는 병원이 대학병원이므로 이 경우 의과대학 부속병원에 해당한다. 이 경우 병원은 대학 소속이므로 총장이 명목상 인사권을 지니지만, 이사회 또는 구성원의 투표로 보직자를 선정하는 것이 당연시된 상황에서 기업이 비의료인인 사장을 직접 임명해 소위 ‘꽂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음, 기업이 병원의 지배권을 확보하려고 한다 해도 위의 이유로 비영리법인을 설립해서 운영해야 하는데(예로 삼성서울병원은 삼성생명공익재단의 대표이사가 맡고 있다) 이 법인은 말 그대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법인이다. 이런 법인이 재단 소속 병원에 구조조정, 경영 효율화 등 일반적인 영리 기업에 적용되는 방식을 적용하려고 하면 그 자체로 사회적 물의를 빚게 된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한 적자 상위 3개 과, 응급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는 종합병원 설립에서 필수적인 과로 규모를 축소하여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게 되면 병원은 인증평가를 통과하기 어렵다.
즉 <라이프>는 흥미로운 설정으로 시작했지만, 한국의 병원 현실을 보여주고 고발하는 사회파 드라마로 읽기에는 난점이 존재한다. 사회파 드라마는 특성상 현실 사회의 흐름이 극에 밀접하게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 설사 드라마 <시그널>처럼 다른 시대에 있는 등장인물이 서로 소통한다는 비현실적 장치가 등장한다고 해도 장치를 제외한 사회적, 구조적 묘사는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그래서 <시그널>은 사회파 드라마의 좋은 예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라이프>는 한국 병원을 현실적으로 그렸다고 보기에는 설정이 너무 어색하다. 설령 이 드라마를 통해 병원의 현실을 진단하려 한들 ‘그런 병원은 한국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라는 말 하나로 봉쇄될 것이다.
물론 드라마는 이제 막 중반을 넘었고 초반부의 내용 만으로 전체를 비평하는 일은 어리석을 것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가 전달하는 장르적 쾌감만을 소비하는 데서 그치는 것도 아쉽다. <라이프>가 5% 안팎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단지 흥미로움 때문에 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라이프>를 다룬 한 기사의 제목이 잘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잡히지 않는다면 이를 좀 더 세심하게 고찰할 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1] 단연코 말하건대 드라마가 그려내고 있는 것은 선악의 혼재가 아니다. 작가의 의도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라이프>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의료 자원 분배를 둘러싼 여러 가치의 다툼이다.
드라마 <라이프>와 의료 자원 분배
구승효 사장은 포스터의 문구처럼 병원, 의료가 다른 경제 주체, 제도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쫓는 효율성이라는 기치는 기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여러 보건의료 제도와 정책 뒤에 녹아 있는 공리주의적 관점은 최대 다수의 이익을 위해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다. 단지, 의료 시스템에선 효율성이 황금열쇠가 아니기에 충돌하는 여러 가치가 서로 다투고 있을 뿐. 출처: JTBC <라이프> 홈페이지
먼저, 구승효 사장을 보자. 그는 의업(醫業)이 다른 직업과는 구별된다는 관념을 각하하고 병원도 사업인 만큼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과별 적자를 기준으로 수익을 내기는커녕 적자만 안기는 세 과의 기능을 축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병원에 많은 수익을 가져다 주는 의사에게 더 많은 보수를 지급하는 성과급제를 통해 의사가 더 많이 진료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본다. 값비싼 장비는 회전율을 높여 그만큼 이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병원 내부에서 감춰 온 잘못을 드러내고 이를 바로잡으면서 모기업에 이익이 갈 수 있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운다.
예컨대 구 사장과 병원 의료진이 3과 파견을 놓고 대립하는 장면을 보자. 지방 의료 체계 붕괴를 막기 위한 보건복지부의 명령이라는 근거를 들어 구 사장은 적자가 만연한 세 과를 지방으로 파견 보내려 한다. 그의 편에 선 부원장과 구 사장 앞에서 의료진들은 우리가 모든 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공공재인 병원을 마음대로 움직여선 안 된다는 것 등을 들어 파견에 반대한다. 이에 구 사장은 생명이 숭고하다면, 그리고 병원이 공공재라면 지방에 거주하는 시민 또한 의료 혜택을 같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들어 방어한다.
물론 시청자는 구 사장의 이 움직임이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병원, 나아가 모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불편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것은 구 사장의 호적수가 될 예진우 선생이 구 사장을 공격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파견은 돈벌이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병원이 개인의 배를 불리는 것은 잘못이겠지만 그렇다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까지 잘못일까? 더 나아가 이것을 의료 자원의 분배라는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과연 ‘눈앞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숭고함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있을까?
여기서 구승효와 예진우가 상징하고 있는 가치에 이름을 붙여본다면, 그것은 각각 공리주의적 가치와 구조의 규칙(Rule of Rescue: 눈앞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때 이를 구해야 할 의무가 있음)이 될 것이다.[2] 두 가치는 의료 자원을 분배하는 데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점한다. 효율성의 추구는 다수에게 최대의 혜택을 돌아가게 만들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이 경우, 눈앞의 고통을 외면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반대로 당장 닥친 환자를 살리는데 모든 자원을 집중하다 보면 결국 필요한 곳에 필요한 것이 가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때, 의료 시스템에서 모든 선택은 언제나 비극적이다.[3]
왜 그런지 살펴보자. 의료 서비스 공급에서 일반적인 재화처럼 소위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가격이 낮아지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특정 서비스에 국한하여 관찰하면 공급이 많아지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좀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보면 그것은 특정 서비스 또는 분야로 공급이 비정상적으로 몰리는 것을 의미할 뿐이며 이는 다른 분야의 공급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의료 서비스 공급의 총합은 의료 서비스 필요의 총합보다 언제나 부족하다. 이를 세계보건기구(WHO)는 의료 서비스 공급의 세 차원으로 개념화한 바 있다.
WHO는 세 차원을 통해 의료 서비스 공급을 도식화하였다. 세 차원은 각각 보장 대상, 보장 서비스, 보상 비용을 말한다. 각 국가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어떤 측면을 우선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며 선택에 따라 국가의 의료 시스템은 다른 형태를 띠게 된다. 출처: WHO
어떤 국가도, 어떤 체계도 모든 시민에게 모든 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할 수 없다. 따라서 누군가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더 적은 사람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던가, 아니면 모든 사람에게 선택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던가 하는 식의 결정을 말이다. 이 결정을 누군가는 비극적인 선택이라고 불렀더랬다. 누군가 혜택을 보면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 하는 그런 선택.
미시적인 예로 장기 이식을 생각해보자. 방금 뇌사 판정을 받은 환자가 이전에 장기 기증에 동의했다고 하자. 그의 기증은 숭고하다. 그러나 그가 기증한 장기를 누구에게 주어야 하는가? 수많은 사람이 간, 폐, 심장을 기다리고 있다. 장기는 하나뿐이므로 나눠서 줄 수는 없다. 거시적인 관점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의료보장에 들어가는 예산이 무한히 증가할 수는 없으며 의료인도, 약도, 시설도 언제나 부족하다. 예컨대 <라이프>에서 응급의료센터가 처한 상황을 생각해보자. 지방 의료 활성화를 이유로 서울 대형 병원의 의료진을 파견 보내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생각은 그저 의료 체계에 대해 아무 생각 없는 공무원의 미봉책이 아니다. 그것은 균형 공급에 가치를 부여한 결과이며, 그 결과는 서울 시민의 피해와 지방 시민의 이익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잘한 일일까, 아니면 잘못한 일일까. 이런 상황에서 제일 나은 선택은 무엇인가? 어떤 합의된 정답도 없다. 단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물어볼 필요가 있을 뿐이다. 여기에선 여러 가치 중 공리주의적 방향성을 따라 움직이는 구 사장의 행동을 통해 당장 당면한 현실 문제를 하나 고민해보려 한다.
공리주의적 관점과 의료 시스템
공리주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슬로건으로 요약되는 가치 판단 기준을 말한다. 주창자였던 영국의 철학자, 정치가였던 제러미 벤담은 가장 많은 사람의 쾌락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결정이 선하다고 생각했다. 이 입장은 많은 사람의 암묵적 지지를 얻고 있으며, 의료 정책 수립의 주요 기준 중 하나인 비용-효과 분석(cost-effective analysis)의 배경 가치이기도 하다. 공리주의 또한 다양한 판본이 있기에 두루뭉술하게 하나로 말하긴 어렵지만, 구 사장의 행동은 최대 다수 대신 기업을 그 자리에 놓고 있기 때문에 공리주의적 정의와는 거리가 있다. 단지 그의 이득 극대화라는 구호는 지극히 공리주의적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구 사장의 행동에는 일말의 당위성이 부여된다. 분명 그는 ‘장사꾼’이며, 모기업에 이득이 돌아가는 선택을 내린다. 예컨대 병원이 쉬쉬했던 투약 사고를 외부에 알린 구 사장은 모기업의 화학 계열사로부터 설비 투자를 받고 의약품 홍보, 영업까지 의료진에게 할당한다. 이런 부분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가 단지 ‘자본 논리’의 화신이라면 그는 돈에 눈이 먼 악마, 절대 악으로 그려져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런 식의 단순한 이분법을 따라가지 않으며, 시청자로서 그의 움직임이 무조건 악행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구 사장 역을 맡은 조승우의 연기가 자연스럽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그의 효율성이라는 구호가 병원을 바꿀 힘이라는 점이 그의 행보에 정당성을 실어준다.
구 사장에게 잡아 먹히지 않으려는 병원은 의뭉스러운 곳이다. 출신을 따져 ‘성골’ 운운하며 공석인 병원장 자리를 잡기 위해 편을 가른다. 심지어 사망사고를 은폐하기까지 하는 병원은 ‘살려야 한다’는 식의 전통적인 가치 앞에서 이 모든 부정을 긍정하는 곳이다. 응급 상황에선 일탈도, 잘못도 용인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일들을 놓아두는 것은 결국 더 큰 손해로 돌아오게 된다. 가족 같은 분위기는 당장의 고됨을 이기는 힘이다. 그러나, ‘혈통’을 따지고 사내 정치에 혈안이 될수록 의료진과 병원 시스템의 수준은 저하될 것이다. 사고의 은폐는 생명을 살리려고 노력한 의료진에게 주어진 면죄부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면죄부는 병원 시스템에 남아 더 큰 사고를 일으키는 독이 될 것이다.
효율성은 이 모두를 껴안으면서도 부정한다. 당장 이득이 되는 것은 놓아두나 전통으로 고착된 그것이 결국 손해를 가져오면 가차 없이 버린다. 구 사장의 이런 행동 양식은 인정이나 연민 등 정서에서 출발하는 전통적인 도덕적 가치 대신 돌아갈 이익에 집중한다. 그렇다면 이익의 극대화가 정답일까? 글쎄, 앞서 살핀 것처럼 의료 시스템에서 모든 선택은 비극을 내포하고 있으며, 당장 <라이프>의 한 장면에서 그렇듯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일이다. 당장 병원 응급실을 축소한다고 해 보자. 이전에 응급실에 오던 환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렇다면, 효율성이라는 양날의 검을 휘둘러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만병통치약일 수 있을까? 무엇보다, 희생자를 누가 정할 수 있는가?
비슷한 움직임을 현 정부의 의료 정책에서 감지한다. 문재인 정부는 7월19일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부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방안’을, 20일 ‘바이오?메디컬 산업 육성을 위한 연구의사 양성 및 병원 혁신전략’을 발표했다.[4] 정부가 마련한 전략이 효율성을 재고하여 이익을 끌어올리는 방향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27일 오전 정책과 관련하여 개최된 ‘문재인 정부의 보건의료 혁신성장론,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입을 모아 지적한 것처럼 이것은 박근혜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을 재탕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임숙영 과장의 말처럼 이 정책을 통해 “연구개발 및 병원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 투자는, 그 이익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시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단지 기업의 배를 불리기 위한 효율화, 이익 극대화는 아닌가.
[1] 김종성. ‘장사꾼’ 조승우 앞세운 ‘라이프’,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오마이스타. 2018년 8월 8일.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461469. Accessed August 24, 2018.
[2] Cookson R, McCabe C, Tsuchiya A. Public healthcare resource allocation and the Rule of Rescue. J Med Ethics. 2008; 34: 540-544. http://dx.doi.org/10.1136/jme.2007.021790
[3] Calabresi G, Babbitt P. Chap. 5. Three features of tragic allocations. In: Tragic Choices. New York: W.W. Norton and Co; 1978: 131-146.
[4] 김경애. 문재인 정부의 보건의료 규제완화 정책에 ‘의료영리화’ 부정하는 복지부. 메디포뉴스. 2018년 8월 27일. http://www.medifonews.com/news/article.html?no=140272. Accessed August 28, 2018.
김준혁/치과의사, 부산대 의료인문학교실 박사과정(의료윤리학)
junhewk.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