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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과학기술계 유사학회 사태는 심각한 문제” 연구자 84%

등록 2018-09-10 16:57수정 2018-09-10 17:42

BRIC-미래&과학 설문, 1011명 응답결과

매우 심각 48%, 어느 정도 심각 36%
개인 도덕성과 양적평가지표 원인 지적
연구관리기관과 정부에 대책 책임 58%
근본대책 없이 행정규제만 늘 것 우려도
그림 출처: 미국과학건강협의회(ACSH) https://www.acsh.org/news/2017/12/19/stopping-predatory-journals-takes-teamwork-12257
그림 출처: 미국과학건강협의회(ACSH) https://www.acsh.org/news/2017/12/19/stopping-predatory-journals-takes-teamwork-12257
허술한 논문, 심지어 가짜 논문를 투고해도 돈만 내면 받아주어 발표할 수 있게 해주는, 이른바 ‘유사 학회’ 또는 ‘해적 학회’에 국가 연구비를 지원받은 국내 연구자 일부가 참여해온 것으로 최근 언론 보도에서 드러나, 연구자사회에도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아른바 ‘유사학회 와셋(WASET) 사태’에 대해 국내 연구자들의 대다수는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상당수는 한국연구재단 같은 연구관리기관이나 정부 부처가 이 사태에 대해 책임감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자칫 여론에 몰려 정작 근본 원인 파악은 놓치고 불필요한 행정규제만 늘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상당히 컸다.

이런 조사결과는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브릭)가 ‘한겨레 미래&과학’과 함께 대학 교수, 연구기관 연구자, 대학원생 등 국내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8월27~31일 닷새 동안 벌인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나타났다. 설문에는 1011명이 응답했으며, 직급별로는 교수·책임급 연구자가 50%, 일반 연구원이 19%, 대학원생이 17%를 차지하고 소속별로는 대학이 66%, 국가기관·출연연구원이 17%를 차지했다.

‘유사학회 와셋 사태’가 국내 연구자사회에서 본격적인 관심을 끈 것은 지난 7월이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는 국제 공조 취재팀과 함께 “대표적인 사이비 학술단체 와셋(WASET, 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 등에 대한 심층취재를 벌여 국내 연구자도 상당수가 이 학회와 학술대회에 참여해왔다는 실태를 지난 7월 보도했다.(▶ <뉴스타파> 보도: ‘가짜학문’ 제조공장의 비밀)

<뉴스타파> 취재진은 당시에 ‘가짜 논문’을 일부러 작성해 와셋이 운영하는 학술저널에 투고하고 와셋 학술대회에도 참가해 ‘가짜 논문’을 발표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뉴스타파>는 “국가별로 와셋 학술지 논문 투고 또는 학술대회 참석 건수를 집계한 결과 한국은 세계 5위였고, 논문 저자별로 집계한 결과 세계 2, 3, 4, 6위가 모두 한국인 학자였다. 국내 대학 순위를 집계해보니 서울대가 100건으로 1위였고, 국내 명문대가 대부분 상위 10위권에 들었다”고 보도해 파장을 일으켰다.

브릭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4%에 달하는 연구자 대다수가 이번 유사 학회 사태를 연구자사회에서 발생한 심각한 문제로 바라보는 것으로 나타났다(‘매우 심각’ 48%, ‘어느 정도’ 심각 36%). 응답자를 세대와 직급별로 보면 심각하게 본다는 응답은 대학원생(89%)이나 박사후연구원(89%) 응답자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아 젊은 세대가 문제의 심각성을 좀 더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사학회 참여 문제가 일반매체 보도에 등장할 정도로 심각해진 데에는, 그 주요 원인으로 연구자 개인의 도덕성 문제뿐 아니라 연구사업 평가 때 학회 참석 같은 양적 평가지표가 사용되는 제도의 문제도 많이 지적됐다. 이런 사태의 원인으로, 응답자의 34%는 ‘양적 연구사업 평가 지표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으며, 다른 33%는 연구자 개인의 학문적 부도덕성을 꼽았다. 이밖에 14%는 학계 내 무관심과 방관으로 건전한 견제가 상실된 점 때문이라고 답했다.

설문에 응답한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유사학회 참석 활동의 부정적인 영향으로는, 연구자와 연구사업 평가 때 잘못된 성과물(학회 참석 횟수)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23%) 국가 연구 사업비의 혈세를 낭비한다는 점(20%) 연구윤리 측면에서 연구부정행위를 부추기고 조장할 수 있다는 점(20%) 등이 지적됐다. 한편 같은 물음에서 29%에 달하는 많은 응답자들은 유사학회 참석 사태의 부정적 여파로 인해, 정상적인 학술대회 참석과 활동에도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거나 그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있음을 우려했다.

이와 관련해 설문 응답자들은 ‘관련 부처와 기관의 조처와 대안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이 무엇인가’라는 물음(2개 복수응답 가능)에서는, 불필요한 행정적 규제들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65%)는 응답을 가장 많이 꼽았으며, 정확하고 세밀한 분석 없이 대안과 조처가 나올 우려가 있다(53%)는 응답, 그리고 학술대회 활동이 전반적으로 위축될 우려가 있다(28%)는 응답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에 ‘연루된 연구자에 대한 징벌, 징계로만 끝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지적한 응답자도 20%에 달했다. 이런 응답은 이번 사태를 일으킨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중요하게 제기되면서, 또한 당장 눈에 띄는 해결책을 마련하려다 불필요한 행정규제만 늘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연구 현장의 연구자들 사이에 상존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연구자들은 건전한 해외 학술대회 참석이 주는 긍정적 영향(2개 복수응답 가능)으로는, 연구와 관련해 폭넓은 시각을 얻을 수 있고(81%), 자신이 진행하는 연구에 대한 깊게 생각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며(49%), 다양한 지역 연구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40%) 등을 주로 꼽았다.

응답자 1011명 중 78%는 최근 5년 동안 해외 학술대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그 해외 학회 참석 결정은 연구책임자와 연구실 구성원들이 함께 결정하거나(41%), 연구책임자가 전적으로 결정한다(36%)고 답해 연구책임자가 해외 학회 참석 결정에서 중요함을 보여주었다. 설문 응답자들은 선택형 응답이 아니라 서술형 응답에도 여러 의견들을 남겼다. 다음은 응답자들이 남긴 많은 의견 중 일부다.

▷ BRIC 설문조사 결과보고서

http://www.ibric.org/scion/survey/report/WASET2018.pdf

연구자들의 서술형 답변들 (일부, 문장교정)

실적보고 위해 불필요한 학회 참석

▷ “대학원생으로서 BK21플러스 사업 등에서 요구하는 양적 지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국내외 학술발표대회에 참가해야 했다. 정작 내 연구 분야가 맞는 해외 학술대회는 실적 대비 비용이 크게 들어 참석하지 못하였고, 비용이 적게 드는 국내 학술대회에는 소속 학회의 참석자 동원 혹은 지표 달성 등의 사유로 참가해야했다(이 경우 대개 학회 내용이 매우 부실함). 실적을 내기 위하여 포스터 발표를 하지만, 포스터 초록 등이 학회 내에서만 공유되기 때문에 동료심사(피어리뷰) 절차가 없으므로 대부분 학위 초록 수준으로 머물러 있었다. 이런 불필요한 지표를 달성하느라 무분별한 학회가 난립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근본적으로는 연구자 평가방식이 문제

▷ “근본적으로는 연구자에 대한 평가문제라고 봅니다. 평가는 기본적으로 질적/양적 평가를 하게 되는데 특히 양적 평가는 논문 개수, 특허 개수 학회 참석 횟수 등등 양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이번 학회 참석 문제뿐 아니라 ‘개수나 횟수’를 만들기 위한 소모적인 활동이 연구자들에게 강제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에 익숙해지게 된다면 초심을 잃어버리고 적당히 양을 맞추는 편안한 연구 활동을 하게 됩니다. 창의적인 연구 활동을 하려고 할수록 ‘개수’ 때문에 스트레스가 과중하게 됩니다. 사람은 적응을 잘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열정을 가진 연구자일수록 이런 시스템에 크게 실망하고 돌아서버리거나 그냥 적당히 적응하고 말아버립니다. 이러한 공무원스러운 시스템에서 창의 혁신이 나오기는 힘들 뿐 아니라 적당히 적응한 연구자들만 양성하는 현실을 보았으면 좋겠네요.”

양적 평가와 무사안일주의

▷ “양적 평가와 질적 평가의 차이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기본적으로 연구비를 제공하는 단체나 기관에서 연구평가의 능력 증진을 위한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단순히 비판을 덜 받기 위해 양적 평가를 통한 무사안일주의로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평가기관이 연구자나 연구그룹의 평가에 대한 방법론이나 평가 시스템을 꾸준히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특허출원 같은 다른 양적지표도 문제

▷ “이런 사태의 근본 원인은 양적 연구사업 평가지표로 인해 단순히 양적 지표 달성을 위해 가짜 성과물이 팽배한 와중에 드러난 한 가지 문제에 불과합니다. 이외에도 지난 성과로 출원한 지식재산을 출원일을 기준으로 삼는다며 특허 출원하여 현재 해당 연구사업의 결과라고 우겨넣는 등 다른 성과 조작도 만연해 있습니다. 이런 성과조작의 근본 이유는 연구비 때문이고 연구비 관리 기관의 부실한 검증과 솜방망이 처벌조차 하지 않는 안일한 행정, 연구자의 비양심적인 은폐, 이런 3박자가 갖춰져서 일어납니다. 연구비가 국민 세금 재원인 만큼 연구비 사용에서 공익을 훼손하는 경우에 엄정한 처벌을 해야 합니다. 과학계의 적폐를 청산하여 부패한 과학계를 바로잡아야 미래 세대에 부끄럽지 않고 또 과학계가 다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연구책임자가 더 큰 책임 느껴야

▷ “학회 참석 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연구를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은 대학원생입니까, 연구원입니까, 연구책임자입니까?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은 대학원생이나 연구원이지만 학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자금을 가져오고 결정권을 지닌 사람은 연구책임자입니다. 연구책임자는 자신이 원하는 학회나 인맥을 위한 학회에 참석하기 보다는 진정으로 자기가 연구하는 분야의 학회가 어떤 것인지를 인지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또한 이 연구책임자가 결정한 학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학회에 참여하고 무엇을 느꼈는지를 연구관리기관에서는 실질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학회장 주변에서 쓴 비용의 영수증이 참석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좋은 학회 참석까지 막혀선 안 돼

▷ “유사학회 참석을 막는다는 조치가 양질의 학회 참석을 제한하게 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을 인지하기 바람. 예를 들어 룩셈부르크의 한 생명과학 연구자가 저명한 어떤 학회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개인 차원에서 매우 훌륭한 학회를 해마다 개최하여 매우 양질의 훌륭한 학회(심포지움)을 연속적으로 개최한 적이 있었음. 이런 학회는 어떤 저명 학회보다 우수한 정보를 전달하여 주었음. 우리나라에서 유사학회 참석을 막는다는 조치를 취하면서 세계 학회/학술대회에 기준과 조건을 붙일 경우에 앞에서 말한 그런 양질의 학회 참석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음. 따라서 제한하되 참석자가 학회의 유용성을 충분히 설명하는 자료를 제출하면 이에 대해 전문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기관 혹은 연구자를 통해 검증이 이루어져 양질의 학술대회 참석에 위축이 일어나는 것도 막아야 함.”

새로운 ‘방지턱’ 추가로 끝날까

▷ “이번 사태로 인해, 건전한 연구를 진행하고 이에 대해 학술 결과를 발표하는 다른 연구자들에게 또 불 필요한 행정적인 절차가 추가될까 우려됩니다. 사건이 일어나면 개개인의 책임을 묻고 이를 제도적으로 개선을 하는 방식으로 갔으면 하는데, 항상 보면 새로운 ‘방지 턱’ 추가로 마무리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방향보다는 과학계의 자정 작용을 통해, 유사학회 참석을 실적으로 제출하는 연구자들이 자리 잡을 수 없는 풍토로 나아간다면 이런 학회는 서서히 소멸되어 갈 것입니다. 연구관리기관은 새로운 절차 추가가 아니라 데이터 수집으로 이런 내용을 판단할 수 있는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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