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동물 ‘디킨소니아’(Dickinsonia) 화석. 호주국립대학교(ANU) 제공
수십억 년 동안 단세포 따위의 단순한 형태였던 지구 생명이 어떻게 지금의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를 갖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다. 에디아카라기에서 캄브리아기로 넘어가는 5억4천만년께 생명은 갑자기 여러 형태의 동물로 폭발적으로 분화하기 시작했는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실마리를 밝혀줄 수 있는 최초의 동물 하나가 확인됐다. 호주 연구진이 ‘디킨소니아’(Dickinsonia)의 화석을 분석해 지구 동물 왕국의 최고 선조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밝혀 20일(미국 현지시각)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디킨소니아는 그 화석이 1947년에 처음 발견돼 이미 오랫동안 알려져 있던 생명체였다. 이후 세계 수십 곳에서 화석이 추가로 발견됐는데, 5억7500만년 전에서 5억4100만년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굉장히 오래 전이기 때문에 디킨소니아 화석은 전체 몸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선 지금까지 이 생명체가 해파리 같은 수중 생물인지, 환형동물인지, 아니면 버섯의 일종인지 논란이 분분했다.
그런데 2013년 당시 러시아의 대학생이었던 일리야 보브로프스키(Ilya Bobrovskiy)가 전과 다른 종류의 화석을 발견해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의 요헨 브록스(Jochen Brocks) 교수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수십 년 된 미스터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는 점토와 사암에 뒤섞여 미라가 된 완전한 형태의 디킨소니아 화석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다.
브록스 교수의 박사 과정 학생으로 들어간 보브로프스키는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둘은 생물의 형태에 기반한 통상적인 화석 연구 방법과 달리 정교한 화학적인 분석을 했다. 그 결과 오직 동물의 세포에서만 나타나는 특성을 화석에서 찾아내 디킨소니아가 지구 최초의 동물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디킨소니아 화석은 수㎜에서 1m가 넘는 것까지 다양한데, 이번에 동물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디킨소니아는 인간이 눈으로 볼 수 있는 크기의 첫 동물이 된 셈이기도 하다.
브록스 교수는 이번 발견이 “캄브리아기 동물들의 폭발적인 진화 전에 에디아카라기 동물군이 이미 서막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확고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발견은 지구 생물학을 넘어서는 의미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연구 참여자가 아닌 더글라스 어윈(Douglas Erwin)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의 고생물학자는
미국 과학 매체 <사이언티픽 아메리칸>과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는 어떻게 희미한 화학적 흔적만으로도 화석으로 남은 생명체의 자세한 특성까지 파악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태양계의 다른 곳에서 생명을 발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권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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