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그림의 노란 부분이 우리나라 응답자의 성향을 나타낸 그래픽이다. 전체 평균(하얀 부분)보다 사람을 중시하고, 젊은 사람보다 나이 든 사람을 중시하며, 사회적 지위를 별로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나타난다. 설문 사이트 (moralmachineresults.scalablecoop.org) 갈무리
길을 가는 자율주행차가 아이 또는 어르신 둘 가운데 한명을 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부닥쳤다. 우리는 누구를 구하도록 인공지능을 프로그램해야 할까? 이런 ‘기계 윤리’(machine ethics)에 대한 지금까지 최대 규모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결론은 우리의 윤리 기준은 보편적이지 않으며 어느 문화권에 속하는지에 따라 갈리는 것으로 나왔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의 이야드 라흐완(Iyad Rahwan)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은 세계 233개 나라의 230만명을 대상으로 이런 딜레마에서 인공지능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보는지에 대한 온라인 설문 결과를 분석해 지난 24일(미국 현지시각)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했다.
설문은 누군가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가상의 상황 13개 시나리오로 구성됐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 아이와 노인, 노숙자와 기업 최고경영자 등 둘 중에 누구를 살릴 것이냐는 질문이다.
우선 나이나 성별,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응답자가 합의하는 보편적인 답들도 있었다. 인간과 동물 중에는 인간을 살린다, 개인과 여러 사람 중에는 여러 사람을 살린다 등이다.
하지만 그밖에는 응답이 갈렸다. 연구진은 최소 100명의 응답을 모은 130개 국가를 대상으로 보다 자세한 분석을 했는데, 대략 3개의 그룹으로 비슷한 특징을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첫째는 북미와 유럽 몇 개 국가를 포함해 역사적으로 기독교 전통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문화권이다. 둘째는 우리나라, 중국 등 유교문화권과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 이슬람 문화권을 함께 묶은 그룹이다. 셋째는 남미와 세계 각지의 옛 프랑스 지배를 받았던 국가들의 집단이다.
첫째 집단은 다른 집단에 비해 특히 어른보다 어린이를 살려야 한다고 한 비율이 강하게 나타났다. 반면 우리나라가 포함된 두 번째 그룹은 비록 어린이 비율이 더 높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나이 많은 어른을 살려야 한다는 응답이 강하게 나타나는 특징을 보였다. 연구진은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적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했다. 한편 세 번째 그룹은 남자보다 여자를 살려야 한다는 비율이 다른 곳에 비해 강하게 나타나는 특징을 보였다.
정부의 발전 형태에 따른 차이도 나타났다. 정부 조직이 강하게 자리 잡은 일본이나 핀란드 같은 나라의 응답자일수록 자율주행차에 탄 탑승자와 불법 횡단을 하는 보행자 가운데 보행자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응답이 강하게 나타났다. 반면 이런 사회 조직이 약한 나이지리아나 파키스탄 같은 나라의 응답자일수록 그런 경향은 약했다.
빈부 격차도 판단에 차이를 가져왔다. 경제적 불평등 정도가 작은 핀란드와 같은 나라 사람들은 회사 임원과 노숙자 가운데 누구를 살려야 하느냐는 질문에 특별히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경향을 보였지만, 불평등이 심한 콜롬비아와 같은 나라의 응답자 평균은 노숙자를 희생시켜야 한다고 답한 것이다.
연구를 진행한 라흐완 교수는 “사람들은 보통 ‘기계 윤리’하면 모든 로봇에 적용되는 완벽한 규칙을 떠올리곤 한다. 우리 데이터는 그런 보편적인 규칙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조사가 워낙 이례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법대 교수 워커 스미스(Walker Smith)는
<네이처> 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런 가정이 매우 비현실적이라며 “(이런 식으로 대비하려면) 우주에서 운석이 떨어져 자율주행차를 치는 경우에 어떻게 할지도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논문 저자들은 이 조사가 운전자가 매일 내리는 일상적인 도덕 판단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유의미하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노인을 태우고 2차선을 운전 중에 자전거를 탄 어린아이가 길을 막고 있어 반대 차선을 잠시 침범해 차의 위험을 감수하는 경우, 이는 노인보다 아이를 더 보호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고, 이번 조사가 이런 성향을 드러내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 웹페이지 링크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