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자 데이터의 기만적인 사용으로 문제가 된 앱, ‘웨더 채널’(왼쪽)과 ‘나쁜 기억 지우개’(오른쪽)의 모바일 화면. 화면 갈무리.
방송통신위원회는 9일 ‘나쁜기억지우개’라는 모바일 앱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청소년 고민 상담 앱을 표방하는 이 ‘착해’ 보이는 이름의 앱이 무슨 문제인 걸까? 데이터가 문제였다.
왕따가 위험의 상수인 요즘 이 앱은 청소년에게 친구나 가족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들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 결과 구글 플레이스토어 누적 다운로드 수 50만건 이상을 기록하며 호평을 받았다. 언론에서도 대표 이준호씨 이야기를 여러 번 다뤘을 정도다. 하지만 지난 5일 문제가 터졌다. 익명으로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고 작성 글은 “24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지워진다”던 이 앱이 실은 고민을 모은 데이터를 한 온라인 데이터 거래소에서 500만원에 버젓이 팔고 있었다는 사실이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알려진 것이다. 해당 데이터에는 청소년들의 ‘날 것’ 그대로의 고민 뿐 아니라, 출생연도, 성별에다 작성 당시 위치정보까지 담겨 있었다.
회사 쪽은 논란이 되자 판매 데이터를 내리고 유튜브 영상을 통해 해명에 나섰다. 그런데 이 해명이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앱 운영자는 “데이터 판매 이슈 건에 대해 많은 분들을 염려케 해서 사과드린다”면서도,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은 아니며, 고민 글은 서비스 관리용으로 백업 데이터 베이스에 남겨 놓은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해명 영상에는 57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분노”와 “실망”이 대부분이었다. “변명 잘 봤으니 사과문 보여주세요.” “그래서 팔려다가 걸리니까 못 판 거잖아요.” “나쁜 기억 복사기네.”
한편 같은 날 미국에선 날씨 앱이 구설수에 올랐다. 누적 다운로드 수가 1억 건에 달할 정도의 인기 앱인 ‘웨더채널’(Weather Channel)이 주인공으로, 아이비엠(IBM)의 자회사가 운영 중인 앱이다. 이 앱은 사용자 현재 위치의 날씨를 예보해 주겠다며 위치정보를 수집했는데, 알고 봤더니 위치 데이터를 모아 날씨와 상관 없는 헤지펀드 마케팅 등에 쓴 것이다. 이에 로스앤젤레스 주 정부는 이 회사를 잘못된 데이터 사용 및 판매 혐의로 고소했다.
나쁜기억지우개와 웨더채널이 사람들의 분노를 산 이유는 간단하다. ‘속였기’ 때문이다. 나쁜기억지우개 운영자 해명 대로 법적으로는 개인정보 유출에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해당 앱을 써본 결과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입력 받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정보가 없으니 개인정보를 판 것은 아니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고민 글과 위치정보를 결합하면 특정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해당할 여지는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수 청소년을 비롯한 이용자의 기대가 그런 내용이 아니었단 점이다. 이 앱은 우리 고민을 듣고 잊어줄 것이라고, 24시간이 지나면 정말 지우개처럼 기록에서 그리고 어쩌면 기억속에서도 그 고민을 지워줄 것이라는 게 기대였다. 그런데 그것이 ‘거짓’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그것도 돈을 벌기 위한 이기적 목적을 가리는 수단으로서 말이다.
두 사건 사이 차이가 있다면 정부의 역할이다. 나쁜기억지우개 건에서 운영자가 고민 데이터를 올린 장터는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데이터스토어’였다. 정부는 판매를 돕는 역할을 맡았다. 반면 웨더 채널에서 정부는 데이터의 잘못된 사용을 적발해 고발하는 역할을 맡았다. 데이터 거래 활성화 정책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활성화에 매진하느라 누구나 문제라고 느끼는 데이터를 걸러 내지 못하는 정부와 지금까지 데이터 거래가 너무 활성화 되어 왔다는 데에 문제를 느끼고(미국은 유럽 등에 비해 데이터 거래 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꼽힌다) 제재에 나선 정부의 현실 인식 차이는 분명하다.
주민등록번호나 지문 같은 뚜렷한 개인정보가 아닌 다른 정보에 대해서도 처리 방법에 대한 정직한 표시와 적절한 보호를 요구하는 것은 최근에 두드러진 변화다. 무수한 종류의 데이터가 생성되는 ‘데이터 시대’에 데이터의 주체를 ‘기만하지 말라’는 것은 첫 번째 새겨야 할 명제가 되고 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