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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집중력 강화 약물’이 우리 아이 성적 올릴 수 있을까

등록 2019-02-08 10:22수정 2019-02-08 20:46

[김준혁의 의학과 서사] (15)
각성제=집중약? 초경쟁 사회 속 어둠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SKY 캐슬’ 초반, 로스쿨 교수 차민혁(김병철 분)은 입주민 독서 토론회를 이끌며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토론 도서로 선정한다. 이 토론회에서 문제를 꼽으라면 책 난이도보다 한 의견만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토론 진행 과정이다. 토론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이 모임에서 요새 문제가 되는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가 언뜻 보인다. 그것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확대 재생산하는 우리의 모습을 가리킨다. 출처: JTBC  홈페이지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SKY 캐슬’ 초반, 로스쿨 교수 차민혁(김병철 분)은 입주민 독서 토론회를 이끌며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토론 도서로 선정한다. 이 토론회에서 문제를 꼽으라면 책 난이도보다 한 의견만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토론 진행 과정이다. 토론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이 모임에서 요새 문제가 되는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가 언뜻 보인다. 그것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확대 재생산하는 우리의 모습을 가리킨다. 출처: JTBC 홈페이지
치과의사
치과의사
JTBC 드라마 ‘SKY캐슬’이 종영하면서 남긴 화제는 당분간 주목 대상일 것 같다. 케이블 방송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과 함께 일그러진 욕망이 부·모성애와 결합하여 낳는 끔찍한 현실에 대한 고찰은 두말할 것 없다. 오히려 드라마가 가져온 신기한 현상들에 주목하게 된다. 극 중 한서진(염정아 분)의 첫째 딸 강예서(김혜윤 분)가 쓰는 1인 스터디룸 책상(혼자 들어가 공부할 수 있는 밀폐 공간)이 인기가 치솟아 동났다거나, 고등학생 아이를 둔 부모들이 갑자기 입시 코디네이터를 여기저기 찾아다녀 코디네이터 업계가 해명을 내놓는다든가 하는 일 말이다.

<테이크 유어 필즈(Take Your Pills)> 포스터. 2018.
<테이크 유어 필즈(Take Your Pills)> 포스터. 2018.

현실적인 등장인물이 서사를 전개하는 현대극 대신 각 등장인물이 지닌 성격을 전면에 내세우는 그리스 비극으로 시작했던 ‘SKY 캐슬’이 한국 전통에 충실한 교훈극으로 끝나면서 “권금징흙(개과천선하는 금수저와 비참에 빠지는 흙수저)”이라는 비난이 들린다. 과연 그랬어야만 했을까. 아니면, 결국 드라마는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그렇다면 한번 물어볼 일이다. 과연 아이에게 들이는 노력이 코디네이터를 붙이는 것으로 끝날까? 드라마에도 잠깐 나오지만, 수험생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는 것은 어떤가? 약을 먹이는 것은?

한 연구에 의하면 학업에서 노력이 좌우하는 것은 4%뿐이라 했다.[1] 물론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후천적 요인이 4% 외에 많이 있기에 “유전이 96%다”라는 이전 언론 보도는 틀렸지만, 그래도 이전에 생각하던 것처럼 “지성이면 감천”이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력에 더해 다른 요인들을 극복하기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들인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약물을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집중력 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약물이 있다면, 코디네이터 붙일 정도인 부모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일이 아닌가.

집중력 강화 약물이 미국 사회를 점령하다

미국에도 코디네이터가 있다고 하지만, 약물이 더 인기인 모양이다. 2018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테이크 유어 필즈’(Take Your Pills)는 미국에서 집중력 강화 약물이 남용되고 있는 현실을 다뤘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것은 애더럴(Adderall)이라는 상품명으로 유명한 암페타민(amphetamine)과 마찬가지로 리탈린(Ritalin)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메틸페니데이트(methylphenidate)다. 두 약물이 인지 능력 향상과 주의집중 증가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부터였지만,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자 하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약을 먹고 공부하는 현상이 언론에 보도된 것은 2005년이었다.[2] ‘테이크 유어 필즈’는 이들 약물이 학업에 도움을 준다고 믿고 있는 대학생들을 인터뷰하면서 시작한다. 한 학생은 말한다. “모두가 애더럴을 먹어요. 한 명도 빠짐없이.” 두 약물은 미 서부에서 특히 유행해서,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스탠퍼드대학이 있고 실리콘 밸리에 포함되는, 샌프란시스코 북서부 지역) 고등학생 절반이 암페타민이나 메틸페니데이트를 구해서 먹는다고 한다. “최고가 되기 위해” 약을 먹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들. 학업, 교우, SNS, 인턴 등 대학생에게 요구되는 일 모두를 다 해나가기 위해서 “애더럴은 필수”라고 말한다.

<테이크 유어 필즈>에서 한 대학생이 기숙사 방에 숨겨져 있는 애더럴 약병을 집어드는 장면. 집중력 향상을 위해 파란 약, 애더럴을 먹는 건 잘못일까. 잘못이라고 한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혹시, 개인이 잘못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면 누가 잘못한 것인가. 이 모든 질문을 짊어지고 달려가는 다큐멘터리 <테이크 유어 필즈>는 모호한 논조로 갈지자걸음을 걷는다. 그 덕에 현재 미국을 순간 포착한 작품이라는 평가도 받았지만, ADHD로 치료 중인 자녀를 둔 칼럼니스트에게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출처: IMDb
<테이크 유어 필즈>에서 한 대학생이 기숙사 방에 숨겨져 있는 애더럴 약병을 집어드는 장면. 집중력 향상을 위해 파란 약, 애더럴을 먹는 건 잘못일까. 잘못이라고 한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혹시, 개인이 잘못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면 누가 잘못한 것인가. 이 모든 질문을 짊어지고 달려가는 다큐멘터리 <테이크 유어 필즈>는 모호한 논조로 갈지자걸음을 걷는다. 그 덕에 현재 미국을 순간 포착한 작품이라는 평가도 받았지만, ADHD로 치료 중인 자녀를 둔 칼럼니스트에게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출처: IMDb
인터뷰는 어느새 전 내셔널 풋볼 리그(NFL) 선수 에벤 브리튼(Eben Britton)으로 옮겨간다. 그는 데뷔 첫해 괜찮은 성적을 거두지만, 디스크 등 여러 부상을 당한다. 다른 선수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브리튼은 암페타민에 손을 댄다. 그는 암페타민을 먹었을 때 자신이 “최고의 나, 가장 똑똑하고, 가장 빠른 나”가 된다고 말한다. 암페타민은 복용 금지 약물이지만, 치료 목적 사용면책(therapeutic exemption)을 받는 경우 복용이 가능하다. 고용량으로 암페타민을 복용하다 약이 떨어진 어느 날 브리튼은 메틸페니데이트를 먹고 경기에 나가고, 허가받지 않은 약물 복용으로 네 경기 출장 정지를 당한다.

블루(Blue)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매니저 마이클 윌리엄스(Michael Williams)는 아웃캐스트(Outkast), 닉 캐넌(Nick Cannon), 에릭 베네(Eric Benet), 시로 그린(Ceelo Green) 등 유명 가수를 담당해 왔다. 그 역시 암페타민을 때때로 복용하는데, 약물 도움을 받으면 일을 놓치지 않고 모두 처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실리콘 밸리 프로그래머는 암페타민을 상용하며, 약물을 복용하면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프로그래밍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집중력 약물, 암페타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의 역사

이 현상을 살피기 위해선 약물에 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암페타민은 신경과 신경 사이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키고 재흡수를 막는다. 간단히 말해, 약물을 먹으면 신경 신호가 더 쉽게 전달된다. 이를 각성 상태(alertness)라고 불렀더랬다. 중추신경계를 자극하는 카페인, 즉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를 찾게 만드는 성분 또한 같은 효과를 일으키지만, 암페타민이 더 빠르고 강한 효과를 일으킨다. 2014년 가수 박봄이 신고 없이 가져오다가 기사화가 되었던 약이 애더럴이다.

암페타민은 1887년 루마니아 출신 화학자 라자르 에데레아누(Laz?r Edeleanu)가 처음 합성했지만, 효과가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있었다. 1927년 고든 알레스(Gordon Alles)가 에데레아누와는 별도로 이 약물을 합성해내는 데 성공했고 각성 효과가 있음 또한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비행기 조종사를 대상으로 하여 오랜 시간 동안 깨어서 목표를 쫓도록 조종사를 도우려는 목적으로 연구되고 사용되었다는 이 약을 1933년 ‘스미스, 클라인 앤드 프렌치’(Smith, Kline and French)가 코 흡입약 형태로 담았다. 벤제드린(Benzedrine)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 약물은 코막힘 완화제로 처방되었다.

이 약물에 관해 특별한 규제가 없었던 당시, 많은 사람은 암페타민을 우리가 지금 커피 들이키듯 흡입했다. 약물을 복용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빠르고 멋지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은 벤제드린을 사서 포장을 벗긴 뒤, 속에 들어 있는 약물을 직접 복용했다. 많은 연예인, 유명인이 암페타민을 상시 먹었고 그들에게 암페타민을 “스피드 드러그(speed drug)”라는 이름으로 처방해주던 의사 로버트 프레이맨(Robert Freymann)은 당시 미국 유명인을 모두 환자로 보고 있다고 자랑하곤 했다.

처음 코막힘 완화제로 판매되던 벤제드린은 점차 우울증 치료제, 다이어트 제제 등으로 그 범위를 넓히기 시작했다. 주부들이 겪던 어려움, 즉 체중 증가, 우울증, 피로를 모두 해결해줄 수 있는 약이라는 광고가 붙기 시작했고, 약물은 비슷한 화학 구조를 지니고 있는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 즉 마약인 필로폰과 혼합제제로 판매되기도 했다. 약물이 지닌 중독성과 위험성이 알려지고 제재가 가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출처: 논문[3]
처음 코막힘 완화제로 판매되던 벤제드린은 점차 우울증 치료제, 다이어트 제제 등으로 그 범위를 넓히기 시작했다. 주부들이 겪던 어려움, 즉 체중 증가, 우울증, 피로를 모두 해결해줄 수 있는 약이라는 광고가 붙기 시작했고, 약물은 비슷한 화학 구조를 지니고 있는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 즉 마약인 필로폰과 혼합제제로 판매되기도 했다. 약물이 지닌 중독성과 위험성이 알려지고 제재가 가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출처: 논문[3]
암페타민 남용은 월남전까지 이어졌다. 이후 사망사고 몇 건이 발생하고 약물에 중독성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자, 미국은 70년대 초 암페타민 등 약물 남용을 막기 위해 규제 약물 법(Controlled Substances Act)을 발효하고 암페타민을 2급 규제 약물(schedule 2 controlled substance)로 묶어 처방을 규제했다. 이후 암페타민 사용은 줄어들었지만, 운동선수들은 경기력 향상 목적으로 계속 사용해 왔다고 한다.[4] 근육량을 늘리는 스테로이드 복용은 유명하지만 암페타민은 상대적으로 그 인지도가 낮은데, 경기력 향상 약물보다는 그저 금지 약물로 여겨졌기 때문이지 싶다.

한편, 비슷한 약물인 메틸페니데이트는 1944년 스위스 제약회사 시바(현 노바티스) 소속 화학자 리안드로 파니존(Leandro Panizzon)이 합성했으며 아내 이름인 리타를 따 리탈린이라는 상품명을 붙였다. 직접 신경전달물질 분비량을 증가시키는 암페타민과 달리 메틸페니데이트는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재흡수를 줄이는 역할만 한다. 그러나 기전 자체는 암페타민과 비슷하여 각성 효과를 지닌다. 처음에 기억 감퇴를 보이는 노인을 대상으로 사용되던 메틸페니데이트는 1960년대 암페타민처럼 문화 현상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암페타민과 메틸페니데이트 복용량이 증가하게 된 것은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한 치료제로 연구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1930년대 미국 소아과 의사 찰스 브래들리(Charles Bradley)가 벤제드린을 정신병원 입원 아동에게 투약해 행동 안정과 학습 능력 향상을 관찰한 것이 이들 약물을 행동 안정 목적으로 사용한 시초였다.[5] 1960년대 ADHD 진단 기준을 만든 미국 정신건강의 키스 코너스(Keith Conners)가 암페타민과 메틸페니데이트를 아동 대상으로 무작위 임상 시험을 시작했다.[6] ADHD 진단을 받는 아동이 늘어나면서 암페타민과 메틸페니데이트를 처방받는 아동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ADHD란 이름처럼 주의산만과 과다행동 증상을 보이는 아동, 성인에게 내리는 진단명이다. 오랫동안 의학적 근거가 부실하고 개념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7] 진단을 받은 환자에서 뇌 기저핵(basal ganglia) 발달 지연이 나타났고[8] ADHD 진단을 받아 오랫동안 약을 먹은 환자에서 기저핵과 소뇌(cerebellum)에 질병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는 보고가 나오면서[9] 뇌 구조와 관련성이 있다는 주장은 그 지반을 점차 넓히고 있다. 암페타민과 메틸페니데이트를 적정 시기에 복용하는 것은 ADHD 증상 완화를 넘어 뇌 구조를 변화시켜 장기적으로 증상을 없앤다는 연구 또한 존재한다.[10]

2016년 기준 국가 아동 건강 설문(National Survey of Children’s Health)을 기반으로 하여 추산한 미국 4-17세 아동 ADHD 발생률은 9.4%이다.[11] 이것은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APA)가 내놓은 정신 질환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5)이 ADHD 유병률을 5%라고 추산한 것보다 상당히 높은 수치이다.[12] 한편, 전체 아동 중 5.2%가 ADHD 치료제를 먹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집중력 강화 약물 복용을 강요하는 초경쟁 사회

다시 다큐멘터리로 돌아가자. 여러 인터뷰를 나눠 배치하는 가운데 다큐멘터리는 앞서 살폈던 두 약물의 역사를 훑고 전문가 인터뷰도 틈틈이 끼워 넣는다. 빠른 리듬으로 여기저기 살펴보기에, 보고 있으면 같이 산만해지는 것 같다. 카메라는 ADHD 환아도 만나고, 코너스 박사 인터뷰도 하고, 약물 남용 통계도 살피고, 약물을 복용했던 유명 가수들, 운동선수들을 나열한다. 이쯤 되면 이 약을 안 먹은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기분도 들고, 약을 안 먹는 게 오히려 바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며시 고개를 쳐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린 지금 누구나 초경쟁(hypercompetition) 사회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초경쟁. 1994년 다트머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리처드 다베니(Richard D’Aveni)가 저서 『하이퍼 컴피티션』에서 제시한 이 개념[13]은 안정적인 경쟁 우위란 없다고 말한다. 이 논의는 기업에 관한 것이었지만 개인에게 적용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생 마지막 시험이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수능시험을 잘 보면 장밋빛 미래가 약속되던 시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시험은 그 끝을 보이지 않는다. 수능시험 다음에는 토익, 토플을 준비해야 하고 공모전에 참여해야 한다. 취직 문턱을 넘어선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웹툰 원작 드라마 <미생>이 그렸던 “미생”의 삶, 아직 완전하게 살아 있지 않은 상태란 다음에 넘어야 할 문턱이 계속 똬리를 틀고 있는 상황을 가리킨다.

말 그대로 끝없는 경쟁으로 내몰리는 우리 삶은 아플 수 없으며 항상 최고 상태로 달려야 한다. 병원에 가면 바로 증상을 완화해 다시 뜀박질할 수 있는 처방이 나와야 한다. 거기에 집중력을 강화하는 약을 쓸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상대를 모두 물리치고 난 다음에 도달하는 곳이 어디인지, 상대를 “모두 물리친다”는 것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할 틈은 허락되지 않는다. 모두가 경마장에 내몰린 상황에서 그런 질문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저 한 걸음이라도 더 잘 내딛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에서.

많은 기사는 암페타민과 메틸페니데이트가 지닌 집중력 강화 효과란 거짓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두 약물이 인지를 향상하는 효과는 없고 동기만 강화한다고 보고한 2013년 연구를 인용하는 식이다.[14] 하지만 2015년 체계적 문헌 고찰[15]과 메타분석[16]은 암페타민을 저용량으로 복용하는 것은 인지, 작업 기억, 장기 기억, 통제력, 집중을 약간 향상하는 효과를 나타낸다고 보고했다. 무조건 약물이 효과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약물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에 더불어, 약물 복용이 성적 향상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이다.[17] 약물을 복용한 학생이 지겨움을 참고 오래 공부할 수 있으며 잠깐 더 잘 외울 수는 있다. 하지만 뇌가 특정 기간에 인지하여 처리할 수 있는 용량에는 한계가 있기에 더 오랜 시간 공부한다고 하여 더 성적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약물을 복용해서 자신감과 통제력을 확보하려고 하는 것은 약물 중독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의대 입학을 끊임없이 다그친 부모에게 아들은 복수를 결심했더랬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서로를 비참에 빠뜨리고 있는가. 출처: JTBC ‘SKY캐슬’ 홈페이지
의대 입학을 끊임없이 다그친 부모에게 아들은 복수를 결심했더랬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서로를 비참에 빠뜨리고 있는가. 출처: JTBC ‘SKY캐슬’ 홈페이지
다시 ‘SKY캐슬’이 촉발한 성적 논란으로 돌아가자. 다큐멘터리와 여러 논문을 종합해보면 결국 코딩이나 긴 보고서 작성과 같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지겨운 작업을 하는 데에 암페타민과 메틸페니데이트는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당장 내일 내야 하는 숙제가 있는 대학생이나 짜야 할 코딩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프로그래머에게 발등의 급한 불을 끄는 역할을 할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약물은 고등학생이 좋은 내신 성적과 높은 수능 점수를 받는 데에는 도움을 주기 어려워 보인다. 드라마 초반,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명주(김정난 분)가 자살을 택하도록 만드는 상황, 즉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옭아맨 부모에게 아이가 복수를 결심하도록 만드는 비극을 더 악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문제는 약물 자체보다, 약물까지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다. 우리는 왜 이 경쟁을 하고 있는가. 누구와 싸워서 무엇을 얻어내려고 하는가. 그 경쟁 상대는 사실 우리가 같이 힘을 합해야 하는 동료 시민 아니었던가. 원체 외부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면역세포가 자신에게 속하는 세포를 공격하는 것을 자가 면역 질환(autoimmune disease)이라고 부른다. 아직 치료법이 없다는 아토피가 대표적인 자가 면역 질환이다. 초경쟁에 내몰려 동료를 찌르고 약물을 먹어 몸을 망치는 이 상황, 자기 몸을 칼로 찌르는 자신. 이 신화적 광경이야말로 질환이 아닌가.

김준혁/치과의사, 부산대 의료인문학교실 박사과정(의료윤리학) junhewk.kim@gmail.com

참고문헌

[1] Macnamara BN, Hambrick DZ, Oswald FL. Deliberate Practice and Performance in Music, Games, Sports, Education, and Professions: A Meta-Analysis. Psych Sci. 2014;25(8):1608-1618.
[2] Rasmussen N. Medical Science and the Military: The Allies’ Use of Amphetamine during World War II. J Inter Hist. 2011;42(2):205-233.
[3] Jacos A. The Adderall Advantage. The New York Times. Jul 31, 2005.
[4] 최강. 머리 좋아지는 약물? 정상인엔 ‘득보다 실’ 위험. 한겨레. 2018년 2월28일.
[5] Bradley C. The Behavior of Children Receiving Benzedrine. Am J Psych. 1937;94:577-585.
[6] Frances A. Keith Conners: Last Words on ADHD from The Father of The Diagnosis. BMJ. 2017;358:j2253.
[7] 조태성. “ADHD는 의학적 근거 부실? 학교를 교도소처럼 쉽게 관리하려는 것”. 한국일보. 2018년 6월 11일.
[8] Qui A, Crocetti D, Adler M, Mahone EM. Basal Ganglia Volume and Shape in Children with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m J Psych. 2008;166(1):74-82.
[9] Curtin K, Fleckenstein AE, Keeshin BR, Yurgelun-Todd DA, Renshaw PF, Smith KR, Hanson GR. Increased Risk of Diseases of the Basal Ganglia and Cerebellum in Patients with a History of 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Neuropsychopharm. 2018;43(13):2548-2555. doi:10.1038/s41387-018-0207-5.
[10] 정태원. ADHD에는 메칠페니데이트가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 정신의학신문. 2018년 8월 17일.
[11] CDC. Attention-Deficit / Hyperactivity Disorder (ADHD). CDC. Sep 21, 2018.
[12] APA.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Fifth edition: DSM-5. Washington: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
[13] 리처드 다베니, 이현주 옮김, 『하이퍼 컴피티션』, 21세기북스, 2009.
[14] Ilieva IP, Farah MJ. Enhancement Stimulants: Perceived Motivational and Cognitive Advantages. Front Neurosci. 2013;7:198.
[15] Spencer RC, Devilbiss BM, Berridge CW. The Cognition-Enhancing Effects of Psychostimulants Involve Direct Action in the Prefrontal Cortex. Biol Psychiatry. 2015;77(11):940-950.
doi:10.1016/j.biopsych.2014.09.013.
[16] Ilieva IP, Hook CJ, Farah MJ. Prescription Stimulants’ Effects on Health Inhibitory Control, Working Memory, and Episodic Memory: A Meta-analysis. J Cogn Neurosci. 2015:27(6):1-21. doi:10.1162/jocn_a_00776.
[17] Abelman DD. Mitigating Risks of Students Use of Study Drugs through Understanding Motivations for Use and Applying Harm Reduction Theory: A Literature Review. Harm Reduct J. 2017;14:68. doi:10.1186/s12854-017-0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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