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김용규 책임연구원이 성층권 환경을 본떠 만든 고층기상모사시스템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1862년 영국 기상학자 제임스 글레이셔와 헨리 칵스웰은 대기 상층의 기온을 측정하려 열기구를 타고 상공 8.8km까지 올라갔다. 고도와 추위 때문에 팔과 다리가 움직이지 않자 글레이셔는 칵스웰에게 얘기를 하려 했지만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혼절했고, 이를 본 칵스웰은 열기구 밸브를 열어 고도를 낮추려 했다. 하지만 그 역시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칵스웰이 이빨로 겨우 밸브를 열어 열기구 고도를 낮추고 나서 두 사람은 무사히 지상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40년 뒤 독일의 기상학자 라인하르트 쥐링과 아르투르 베르손은 10.8㎞까지 올라가 영하 37.9도의 온도를 측정했지만 영국팀과 마찬가지로 잠시 의식을 잃었다.
기압과 추위 등으로 10㎞ 상공을 넘어서는 고층 고도에 사람이 직접 올라가 기온과 풍속을 재기는 어렵다. 고층의 기상요소들은 1930년대부터 라디오존데라는 기구를 통해 측정하기 시작했다. 라디오존데는 풍선에 기온, 습도, 기압 등의 센서와 무선송수신기, 위성항법장치(GPS)를 달아 공중에 쏘아 올리는 장치로 풍선이 터지는 35㎞ 정도까지 기상인자들의 값을 수초 간격으로 측정해 지상으로 송신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상청과 공군이 지역별로 하루 2~4차례씩, 연간 3만여개의 라디오존데를 사용한다. 전 세계 연간 사용량은 100만여개다. 라디오존데는 기상예보를 위해 지상에서 10㎞ 상공 사이의 대류권 기상을 측정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지만 장기 기상예보나 기후변화의 예측을 위해 대류권 위에서부터 상공 50㎞ 사이 성층권의 온도 등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기의 90%가 머무는 대류권과 달리 공기가 적은 성층권은 구름도 별로 없고 수증기도 없지만 의외로 역학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이다.
최근 기상기후학계는 겨울철 한파의 원인으로 성층권 기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한파 예보 때 자주 등장하는 극 소용돌이(폴라 볼텍스), 북극진동(AO), 성층권 돌연승온(SSW) 등은 모두 성층권과 관련된 용어들이다. 극 소용돌이는 북반구 겨울철 성층권 극지역에서 북극을 감싸고 도는 강한 서풍대(제트)를 동반한 저기압 시스템이다. 북극진동지수는 북위 60도 이상의 고위도 해면기압과 중위도 해면기압의 차이를 계산해서 나오는데, 마이너스일 때는 북극이 평소보다 따뜻하고 중위도는 평소보다 차서 남북 기온 차가 작고 이로 말미암아 제트기류가 구불구불 사행한다. 음의 북극진동이 지배적일 때 극 소용돌이에 갇혀 있던 북극 한파가 남쪽으로 내려올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성층권 돌연승온은 약 30㎞ 고도에서 북위 60도의 동서바람 방향과 북위 60도보다 북쪽의 남북 온도 기울기(경도)가 급격히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돌연승온이 발생하면 서풍이 약해져 성층권 극 소용돌이가 와해되면서 대류권으로 내려와 한파 등 이상기상 현상을 일으킨다. 지난해와 올해 유럽과 북미대륙을 강타한 한파와 폭설 등의 원인으로 성층권 돌연승온을 지목하는 학자가 많다. 유럽에서는 이런 기상현상을 ‘동쪽에서 온 야수’(비스트 오브 이스트)라고 일컫기도 한다.
성층권 등 고층 기상온도의 변화는 지구 온난화를 진단하고 예측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이다. 세계기상기구(WMO) 등이 설립한 측정전문 국제기구 ‘범지구관측시스템’(GCOS)은 고층 기상온도를 중요 기상인자로 지목하고, 온도의 정밀도 목표를 0.3도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 오차 범위를 훨씬 벗어난다. 2010년 세계기상기구가 세계 각국에서 쓰이고 있는 라디오존데의 온도센서들을 비교한 결과 편차가 무려 1.7도에 이르렀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고층기상모사시스템에서 핀란드제 라디오존데 RS41의 온도센서가 고층에서 태양복사 작용 아래 제대로 온도를 측정하는지 검증해보니, 0.4~0.9도의 편차가 생기는 것을 확인해, 시스템이 0.1도 수준까지 정밀 교정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 고층기상연구팀은 성층권의 저온저압 상태와 태양복사에 의한 온도 가열 조건, 풍선의 상승에 따른 공기유동 효과 등을 동시에 재현할 수 있는 고층기상모사시스템(UAS)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연구책임자인 김용규 표준연 책임연구원은 “라디오존데 온도센서를 지상에서 평가한 오차가 실제 수십㎞ 고층에서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다. 압력은 낮아지고 태양복사가 있는데다 라디오존데가 올라가는 속도와 바람의 영향 등이 모두 변수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정밀하게 바람의 속도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와 태양복사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 등을 장착한 대형챔버를 만들어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핀란드 바이살라사의 라디오존데 ‘아르에스41’(RS41)로 측정한 결과 0.1도 수준까지 정밀하게 평가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강원도 강릉 지역의 고도별 대기권을 모사해 비교해보니, 태양복사를 쬐었을 때 RS41의 온도센서는 15㎞ 대류권 환경에서 0.4도의 편차를, 30㎞ 성층권 환경에서 0.8도의 편차를 보였다.
지난해 12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을 방문한 독일 기상청(DWD) 연구원들이 고층기상 관측용 온도센서 평가를 위한 공동연구에 쓰이는 라디오존데를 띄우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김용규 책임연구원은 “기상청 등이 사용하는 라디오존데를 국가표준에 맞춰 평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라디오존데를 구입할 때 가격경쟁력으로만 선택하다 보니 해마다 제품이 달라진다. 2017년에는 프랑스제가, 지난해에는 중국제가 쓰였다. 오차 보정을 업체가 제시하는 값에 의존해야 해 이들 제품으로 생산된 기상자료로 작성한 연구 결과의 신뢰도에도 한계가 있었다. 기상청 등은 라디오존데 입찰 때 업체들한테 시험성적서 제출을 요청해 사전에 품질 평가를 할 수 있게 됐다. 표준연은 고층기상모사시스템 구축 과정에 개발한 특수 온도센서 기술로 라디오존데 국산화에도 나설 계획이다.
대덕연구단지/글·사진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