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에 있는 국가핵융합연구소 산하 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에서 김성봉 혁신기술연구부장이 플라스마 발생 장치와 농산물 처리 효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둥번개가 많이 치는 해에는 농사가 풍년이 든다’는 속담이 있다. 구전되는 옛말이지만 매우 과학적인 표현이다. 번개가 치면 공기 중 질소가 이온화돼 빗방울에 녹아들고 빗물이 땅속에 들어가면 천연 질소비료가 돼 농작물을 잘 자라게 하는 것이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가 척박한 바위 위에서 독야청청 자랄 수 있는 이유다. 전북 군산 새만금방조제 부근에 위치한 국가핵융합연구소 산하 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의 김성봉 혁신기술연구부장은 “방전의 일종인 번개가 치면 주변 공기가 플라스마 상태로 전기 분해돼 일산화질소(NO?), 이산화질소(NO₂?), 질산염(NO₃?) 이온이 발생하고, 방전 주변 빗방울에 녹아들어 간다. 여기서 과산화수소(H₂O₂)가 만들어진다. 이산화질소와 과산화수소 이온은 살균 작용을 하고, 이들도 나중에 질산염 이온으로 변하는데 질산염 이온은 비료가 되는 것이다. 자연현상에 깃든 농사의 기본 원리를 이용한 과학적 미래 농법 곧 플라스마 파밍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플라스마는 고체·액체·기체 다음의 ‘물질의 제4상태’로 알려져 있다. 보이는 우주의 99.9%가 플라스마다. 플라스마는 이온화된 기체로 전자, 이온뿐만 아니라 광(포톤), 라디칼, 활성종 등 다양한 물질이 존재한다. 학술적으로는 ‘집단행동을 하는 전기적으로 준중성인 기체’라고 정의한다. 겉보기에는 중성처럼 보이지만 마이너스와 플러스가 완전히 같지 않은 상태라는 뜻이다. 화학종(케미컬)이 무한하듯 플라스마도 산소플라스마, 질소플라스마, 아르곤플라스마 등 종류가 수없이 많다. 플라스마는 이미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와 표면개질, 태양전지, 폐기물과 오염수 처리, 의료 및 미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중이다. 이 플라스마를 “농장에서 식탁에 이르는 농식품 전주기에서 적용할 수 있는 포괄적으로 응용”하는 것이 ‘플라스마 파밍’ 기술이다. 이 용어는 유석재 국가핵융합연구소 소장이 2014년께 학회에서 처음 선보이고, 지난해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최원호 물리학과 교수가 리뷰논문에서 사용해 국제적으로 공식화했다. 김성봉 부장은 “네덜란드는 지속농업을 위해 2027년까지 시설 하우스에서 질소·인 등 배출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플라스마 파밍은 식량 위기를 극복하면서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고 식품의 안전까지 보장할 수 있으며 정보통신기술(ICT)와 사물인터넷기술(IoT)을 결합한 스마트한 농업”이라고 설명했다.
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는 2014년부터 플라스마를 이용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모델 식물인 애기장대(아라비돕시스)를 플라스마로 처리하니 점무늬 병원균과 잿빛 곰팡이병원균의 균사체가 50% 억제돼 부패균 발병률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또 새싹 인삼(묘삼)에 플라스마를 3분 정도 쬐니 뿌리 무게는 28%, 잎과 줄기는 54%가 증가했다. 유용 미생물을 활성화해 벼에 처리하니 잘 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분석해보니 플라스마를 처리하면 병 저항성 호르몬이 늘어나는 것을 규명했다.
제주대 생명공학부 정동기 교수 연구팀은 콩(대두)에 아르곤플라스마를 쬔 뒤 발아를 시켰더니 발아율과 생산율(성장률)이 크게 증가했다고 2017년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논문을 게재했다. 신기하게도 플라스마를 12초 동안 쬔 콩들은 전혀 쬐지 않은 콩들에 비해 발아율은 12% 가량 증가하고 생산율은 두 배 가까이 증가한 데 비해 플라스마를 3분 쬔 콩들은 발아율과 생산율이 오히려 떨어졌다.
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와 제주대 정동기 교수 연구팀이 콩에 플라스마를 쬐어 실험한 결과 12초 동안 플라스마를 처리했을 때 발아율과 성장률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 제공
정 교수팀은 지난해에는 <물리학 저널 D: 응용물리학>에 닭 수정란에 플라스마를 쬐었을 때 ‘수퍼닭’으로 자란다는 것을 보고했다. 4년 전 실험한 닭이 아직 살아 활동을 할 뿐더러 다른 닭보다 활동성이 강하고 힘도 세며 근육도 통통한 것으로 나타났다. 달걀의 경우 콩과 달리 플라스마를 2분 동안 쬐었을 때 가장 효과가 컸으며, 수컷 정자의 활성도 등 생식력이 10%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암컷에서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후대 세대에서는 이런 형질이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후속 연구를 통해 플라스마에 의한 형질 변화가 ‘후성유전’에 의한 것으로 분석했다. 곧 디엔에이 염기서열의 변화나 돌연변이(뮤테이션) 없이 유전자 발현의 조절에 의해 성장 형질이 강화됐다는 것이다. 제주에서는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플라스마기술 기반 스마트 축사 시스템 핵심 요소기술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플라즈마기술연구센터는 지난해 카이스트 최원호 교수와 함께 플라스마로 일산화질소(NO)를 생성하는 장치를 개발해 특허를 냈다. 제주대 화학생명공학과 목영선 교수팀과는 에틸렌을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런 기술은 농산물의 저장 효율을 높이는 데 사용된다. 농산물을 오래 저장하려면 숙성과 노화를 억제해야 하는데 숙성을 촉진하는 에틸렌을 플라스마로 제거하고 물로 씻는 대신 플라스마를 쬐어 미생물을 살균해 부패를 막는다.
플라스마는 고부가가치의 바이오 소재를 가공하는 데도 활용된다. 플라즈마연구센터와 대구대 연구팀이 플라스마를 쬐어 만든 용수로 백삼 가루를 처리하니 20종의 진세노사이드 성분 가운데 10종의 함량이 증가했다. 또 녹차의 유용성분인 카테킨(EGCG)을 플라스마로 20~30분 처리해 합성해보니 항산성·항당뇨·항미만 등 효율이 높은 두 종류의 이량체가 합성됐다.
김성봉 부장은 “플라스마 파밍 기술은 아직 초기단계이지만 개념 설정에서부터 기술 연구까지 한국이 선도하고 있다. 다양한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있어 벤처에 기술을 이전하고 벤처들이 토탈 솔루션을 생산해 새만금 쪽에 실증단지를 구축하면 지속가능한 농업 구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산/글·사진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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