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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하나가 사람들을 이렇게 들뜨게 하는지 보고 놀랐다”

등록 2019-04-11 15:04수정 2019-04-12 18:43

‘블랙홀 최초 영상’ 참여 한국 연구진 회견
천문연 등 4개 기관, 국내외 10명 포함
내년 3개 망원경 추가해 동영상도 추진
서울대 등 국내 망원경 참여 추진 중
“만인의 궁금증 해결, 노벨상 받을 만해”
국제블랙홀연구협력집단인 ‘사건지평선망원경’(EHT) 연구팀은 10일(현지시각) 지구에서 5500만광년 떨어진 처녀자리은하단의 초대질량 블랙홀(Vir A*)을 관측해 영상을 공개했다. 블랙홀을 실제 사진으로 담아낸 것은 과학사상 처음이다. 블랙홀은 빛조차 탈출할 수 없어 검게 보이고(사진 가운데) 주변 지대(사건지평선)만이 밝게 빛나고 있다. EHT 연구팀 제공
국제블랙홀연구협력집단인 ‘사건지평선망원경’(EHT) 연구팀은 10일(현지시각) 지구에서 5500만광년 떨어진 처녀자리은하단의 초대질량 블랙홀(Vir A*)을 관측해 영상을 공개했다. 블랙홀을 실제 사진으로 담아낸 것은 과학사상 처음이다. 블랙홀은 빛조차 탈출할 수 없어 검게 보이고(사진 가운데) 주변 지대(사건지평선)만이 밝게 빛나고 있다. EHT 연구팀 제공
“고리 하나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들뜨게 하는지 보면서 놀랐습니다. 유치원생도 호기심을 갖는 블랙홀 영상을 실제로 관측하는 데는 세계 200여명의 과학자들의 공동연구가 있어 가능했습니다.”

국제블랙홀연구협력집단인 ‘사건지평선망원경’(EHT) 연구팀에 참여하고 있는 정태현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 전파천문본부 한국우주전파망원경(KVN) 그룹장은 11일 서울 중구 엘더블유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누구나 궁금해하는 문제에 해답을 줬다는 의미에서) 노벨상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HT 연구팀은 10일 밤 10시(한국시각) 과학사상 최초로 처녀자리은하단 중심의 M87 초대질량 블랙홀 영상을 공개했다. EHT 연구팀은 세계 13개 기관에서 200여명의 연구자들로 구성돼 세계 8개 전파망원경으로 구축한 지구 규모의 가상망원경으로 블랙홀을 관측하고 있다. 한국은 천문연 등 4개 기관, 8명의 과학자가 참여하고 있다. 또 2명의 한국인 과학자가 외국 연구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태현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연구부 그룹장이 11일 ‘블랙홀 최초 영상’에 대한 기자설명회에서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태현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연구부 그룹장이 11일 ‘블랙홀 최초 영상’에 대한 기자설명회에서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기자회견에는 정태현 그룹장을 비롯해 천문연 김종수 박사, 조일제 연구원, 광야오 자오 박사후연구원과 독일 막스플랑크 전파연구소의 김재영 박사가 참석했다. 또 천문연 손봉원 책임연구원과 김준한 미국 애리조나대 교수, 사샤 트리페 서울대 교수 등이 화상으로 참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블랙홀 최초 영상의 천문학적 의미는?

=(정태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극단적, 궁극적으로 증명해준 사례이다. 2000년대 이전부터 수십년 동안 발전해온 관측기술로 블랙홀 영상 얻게 됐다. 블랙홀은 크기는 작지만 영향은 우주 전체에 미친다. 블랙홀 연구로 우주 연구에 많은 정보를 줄 것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새로이 밝혀진 것은?

=(정태현) 연구팀은 관측 자료 보정과 영상화를 통해 고리 형태의 구조와 중심부의 어두운 지역 곧 블랙홀의 그림자를 발견했다.이번 분석을 통해 M87의 경계(사건의 지평선)는 약 400억㎞에 이르고, 블랙홀의 그림자는 이보다 2.5배 가량 더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동안 컴퓨터 모델들은 1~5배로 예측이 다양했는데, 이번 관측으로 2.5배인 것이 확인된 것이다.

―우리 은하 중심의 궁수자리 블랙홀은 관측되지 않았나?

=(김종수) 사건지평선망원경은 우리 은하 중심 궁수자리에 있는 거대질량 블랙홀도 관측했다. 다만 궁수자리 블랙홀은 M87에 비해 상대적으로 질량이 작아, 연구팀은 M87을 먼저 분석했다.

―블랙홀 제트스트림은 관측하지 못했나?

=(김재영) 블랙홀 주변지대에서 물질 에너지가 강해져 솟구쳐 오르는 제트 현상은 이번 EHT가 그만한 고해상도 이미지가 아니어서 관측하기 어렵웠다. 이미지 품질을 높이려 2020년에는 적어도 3대의 망원경 추가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제트 이미지도 잡힐 것으로 본다.

―추가되는 3개 망원경은 어디에 언제 설치되나?

=(김재영) 미국 애리조나와 프랑스 고산지대, 그린란드 3곳에 구축되거나 구축될 예정이다.

(정태현) 그린란드와 남극을 이으면 실제 지구 크기만한 망원경을 만들 수 있지만 분해능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지구를 넘어 우주공간에 전파 망원경을 세워야 더 큰 분해능 만들 수 있다. 이미 일본와 러시아에서 우주 망원경용 전파간섭계를 실험한 바 있다. 그린란드 망원경을 이미 지난해 구축이 완료돼 일부 관측 활동에 참여했다.

―2017년 이후 관측은 했나? 앞으로의 계획은?

=(정태현) 2018년에는 칠레 아타카마사막에 설치돼 있는 알마(ALMA) 망원경을 사용할 수 없었다. 내년에는 3개 망원경을 합쳐 11개 망원경으로 관측할 예정이다. 블랙홀 관측에 날씨도 중요하다. 8개 망원경이 설치돼 있는 곳에서 최적의 날을 고른다. 2017년에 열흘 동안 닷새가 관측하기에 좋은 날이었다. 블랙홀 관측에 약간의 행운도 따른 셈이다. 2018년 관측 때는 2017년에 비하면 ‘반타작’이었다.

―연구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나?

=2017년 4월에 관측을 했지만 남극 망원경의 경우 겨울에 접어들어 교통수단 자체가 없지면서 6개월 뒤인 10월에야 데이터를 모을 수 있었다. 일부 망원경은 해발고도 4000m 넘는 곳에 있어 하루이틀 적응훈련을 한 뒤에 관측소로 가지만 그래도 기압이 600헥토파스칼밖에 안돼 숨도 차는 등 연구 환경이 좋지는 않다. 하지만 좋은 경치와 의미 있는 일이라는 데서 위안을 받기도 한다.

―향후 계획은?

=(정태현) 사건지평선망원경의 1단계 목표는 블랙홀 영상을 얻는 것이었다. 2차는 동영상 촬영으로 이미 알고리즘,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테스트중에 있다. 또 블랙홀 중심에서 일어나는 고에너지, 극한 상황의 물리 현상을 이해하는 것도 다음 목표의 중요한 부분이다.

―블랙홀을 다른 각도에서 찍으면 (모양이) 달라지나?

=(김재영) 이론적으로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달라진다. 하지만 M87 블랙홀만 해도 5500만광년 떨어져 있다. 지구 반지름이 6000㎞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지구 어디에서 봐도 방향 변화는 거의 없는 셈이다. 다른 블랙홀은 기울기가 다를 것이기에 지금 영상과는 다른 결과를 얻을 것이다. 블랙홀을 반대편에서 볼 수 있다면 1차적으로 똑같이 보일 것이다. 다만 이번 영상에서 아래쪽이 더 밝은 것이 특징인데, 이는 물질들이 광속으로 회전하면서 도플러 디밍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번 영상은 아래쪽이 밝지만, 뒤에서 보면 위가 밝을 것이다.

―이번 블랙홀 영상 관측은 노벨상을 받을 만한 성과라고 생각하나?

=(손봉원) 개인적으로는 노벨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된다고 판단하지만 확신을 갖고 말씀 드리기는 어렵다.

(김종수) 천문학에서 노벨상을 받은 경우가 여러 번 있다. 사건지평선망원경처럼 여러 망원경을 동시에 이용해 좋은 해상도로 관측하는 기법을 개발한 과학자에게도 노벨상이 주어졌다. 최근 중력파처럼 얻고 싶은 답을 해결해준 과학자들에게 노벨상이 주어진 것에 비춰 모두가 보고 싶어하는 블랙홀(정확히는 블랙홀 그림자이지만) 영상이어서 노벨상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시간이 지나 중요한 발견으로 사람들한테 인식이 되면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 영상이 5500만년 전 모습이라면 현재 모습은 추정 가능한가?

=(정태현) 블랙홀이 느려지는 시간을 계산해보면 우주의 나이보다 더 길게 걸린다. 5500만년은 우주 나이의 1%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기에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2018년 확보한 데이터를 분석하면 좀더 정확한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2020년에 서울대 전파망원경이 블랙홀 관측에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데?

=(손봉원) 서울대 망원경 참여를 준비하려 노력하고 있다. 내년 관측부터는 참여하게 될 것이다.

(사샤 트리페) 지난 3월에 동아시아지역 3개 전파망을 통해 사건지평선망원경이 2000년 초반에 했듯이 우리도 관측을 했다. 한국, 대만, 일본, 중국 등 4개 나라가 협력해 앞으로 동아시아 사건지평선망원경 일원으로 본격 활용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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