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년 전 실험실에서 처음 만들어져 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의 주성분이 된 형질전환 연골세포들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2005년 코오롱티슈진 연구진이 논문으로 학계에 보고한 형질전환 세포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세포실험실 연구자들의 도움을 받아, 인보사와 관련해 발표된 연구 논문들을 현 쟁점을 중심으로 되짚어봤다.
국내 첫 유전자치료제로 시판되던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 케이주’의 주성분이 형질전환 연골세포가 아니라 허가받지 않은 다른 세포(GP2-293세포)임이 밝혀지면서, 환자들의 집단소송 움직임과 더불어 검찰 수사와 식약처 조사도 진행되고 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은 세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경위에 쏠려 있다. 인보사 주성분 세포가 처음 만들어진 2004년, 그리고 연구진이 이를 과학논문으로 발표한 2005년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인보사 연구개발은 그동안 어떻게 이뤄져왔을까?
1990년대 중반부터 이관희 전 인하대 의대 교수(전 티슈진 대표)가 이끌어온 인보사 연구개발의 주된 목표는 주변 세포의 성장을 돕는 성장촉진물질(TGF-β1 단백질)을 통해 손상된 연골을 재생하는 세포치료제를 개발하자는 것이었다. 공동연구의 파트너인 코오롱 쪽은 오래 지나지 않아 이 연구의 중심 기업이 됐다. 이런 배경에는 이웅열 코오롱 전 회장과 이 전 교수가 고교 동창이라는 관계도 한몫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이 나온 고교 동문회의 2007년 인터넷 웹진에 실린 인터뷰 성격의 글을 보면, “이 대표와 이 회장은 고교 동창이다. 코오롱은 1993년부터 10년 넘게 연구자금의 상당부분을 지원했다”고 밝히고 있다. 코오롱 쪽은 1999년 미국에 바이오벤처 ‘티슈진’(현 코오롱티슈진)을 설립했고 이 전 교수가 대표를 맡아, 본격 연구개발을 시작하며 여러 논문을 발표했다.
‘연골재생 세포치료’ 2000년대 잇단 성과
인하대 의대 연구진은 성장촉진물질을 지속적으로 분비하는 형질전환(유전자 변형) 세포로 연골 재생 효과를 내는 세포치료제의 개발에 공을 들였다. 눈에 띄는 성과를 낸 것은 2001년이었다. 그해 9월 인하대 의대 중심의 연구진(9명)은 국제학술지 <인간 유전자 치료.>에 섬유아세포(동물의 섬유성 결합조직에 있는 세포)에 성장촉진 유전자를 집어넣어 연골 재생 효과를 내는 형질전환 세포를 개발했다고 보고했다.
성장촉진물질은 다른 연구진들도 눈독을 들이는 각광 받는 정형외과 분야의 치료물질 후보였다. 하지만 효과의 수명이 짧고, 값이 비쌀 뿐 아니라 손상 부위에 직접 넣어선 큰 효과를 내지 못했기에 이 물질을 스스로 분비하는 형질전환 세포를 만들어 치료용 세포로 쓰자는 게 연구진의 야심찬 구상이었다. 연구진은 이렇게 만든 형질전환 섬유아세포가 실험동물인 토끼에서 연골 생성 효과를 보여주었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섬유아세포에 방사선을 쪼이면 세포 증식력을 조절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논문도 발표됐다.
점차 연구의 중심은 인하대 의대에서 바이오벤처 티슈진 쪽으로 옮아갔다. 연골 재생에 섬유아세포가 아니라 같은 종류인 연골세포를 쓰는 연구개발 성과가 뒤이어 나왔다. 코오롱생명과학 쪽은 인보사 주성분 세포가 처음 개발된 것이 2004년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이듬해인 2005년 그 성과를 보고하는 과학논문이 발표됐다. 코오롱티슈진 중심의 연구진(15명)이 2005년 초 국제학술지 <조직공학>에 발표한 논문(‘세포 매개 유전자 치료법에 의한 지속적인 TGF-β1 분비’)이 그것이다. 인보사 주성분인 형질전환 연골세포를 처음 알리는 논문이었다. 연구진은 이 논문에서 성장촉진물질을 스스로 분비하는 형질전환 세포를 연골세포로 만들었으며, 쥐 실험에서 연골 생성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논문 책임저자는 이관희 당시 티슈진 대표였고, 주요 저자에는 노문종 현 코오롱티슈진 대표(CTO)가 포함됐다.
실험 방법은 세포의 종류가 바뀌었을 뿐 형질전환 섬유아세포를 만들 때와 비슷했다. 성장촉진 유전자를 전달할 바이러스를 미세구멍(지름 0.45마이크로미터)의 필터로 걸러내어 정제한 다음에 이것을 연골세포에 감염시키는 방법으로 그 유전자를 연골세포에 집어넣었다(
그림 참조). 이후엔 성장촉진물질 분비 능력이 뛰어난 연골세포를 골라내어 다시 20만개 세포로 증식 배양해 연골 생성 실험에 사용했다. 그해 같은 학술지에 발표한 다른 논문(’인간 연골세포와 TGF-β1 생성 연골세포 혼합법을 이용한 연골 재생’)에선 보통 연골세포와 형질전환 연골세포를 섞어 쓰면 연골 생성이 더 좋게 나타난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발표됐다. 이로써 형질전환 연골세포와 보통 연골세포를 섞어 쓰는 현재 인보사 치료제의 기본 구성이 2005년에 완성되었다.
세포 연구자들, 2005년 논문 직접 읽어보니
인보사 세포의 탄생을 알린 2005년 논문은 역설적으로 현재 ‘인보사 사태’의 시작점에 놓여 있다. 논문에선 형질전환 연골세포의 존재를 몇 가지 근거로 입증하고 있지만 지금 치료제에 실제로 쓰이는 세포는 연골세포가 아니라 당시 실험에서 쓰던 293세포인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논문의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만들어 배양 증식하고 입증했던 인보사 세포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2005년 논문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 건 아닐까. 형질전환과 세포 배양을 일상적으로 행하는 실험실 연구자들에게 당시 논문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하고 논문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이들은 2005년 논문에서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형식과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오히려 논문에서 제시한 실험 방법과 절차에서 세포가 뒤바뀌는 실수가 일어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내 대학의 ㄱ연구교수는 “실험 재료만 갖춰지면 293세포를 통해 바이러스를 생산하고, 필터를 통해 바이러스만을 걸러내고, 그것을 연골세포에 넣어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는 절차는 실험실에서 흔히 이뤄지는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활동이다. 이런 단순한 절차에서 실수가 있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대 자연대의 ㄴ박사후연구원도 “이런 실험 절차는 너무 기본적인 것이라 숙련된 연구자가 세포가 바뀌는 실수를 한다는 건 생각하기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인보사 세포은행에 보관된 세포들이 293세포인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그러면 논문에 보고된 세포와 현재 세포은행의 세포가 달라진 경위에는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 ㄱ교수는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는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2005년 논문 연구자들이 실험 과정에서 미숙련의 실수를 했고 극소수 293세포가 섞여 들어갔을 가능성이다. 그는 “293세포는 실험실에서 쓰는 세포들 중에서 증식력이 가장 강한 세포 중 하나다. 통상 실험에서 그런 가능성은 지극히 작지만 세포 몇 개만 섞여들어가도 빠르게 증식해 며칠 안에 배양접시가 온통 293세포로 채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런 경우라면 당시 연구자들도 실험 결과로 얻은 세포가 293세포로 바뀌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가능성으로 논문이 진실하다고 믿는다면, 논문의 실험 작업과 세포은행 보관용 세포를 만드는 작업이 별개로 진행됐고, 세포은행에 보관할 세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일어났을 수 있다. 하지만 통상 연구와 개발은 동시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구태여 별개 과정을 두어 세포은행용 세포를 제작했을 가능성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논문에 보고된 실험 방법과 실제 행해진 방법이 애초에 달랐을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김병수 성공회대 교수(건강과대안 운영위원)는 “형질전환 연골세포가 애초 없었을 가능성도 또한 의심할 수 있기에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당시 실험 원자료의 공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논문에서 실린 형질전환 연골세포의 현미경 흑백사진이 연골세포임을 곧바로 입증하기에는 불분명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인간 연골세포를 연구하는 류머티스 연구자들은 논문을 살펴보고서 “실험 결과로 얻은 형질전환 세포가 연골세포인지를 세포 사진에서 분명하게 확인하기 어렵고 언뜻 293세포와 비슷한 모양도 있어,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코오롱생명과학 쪽은 세포가 바뀐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뒤바뀐 경위에 대해선 공식적인 해명을 내지는 않고 있다. 코오롱 관계자는 “세포가 바뀐 경위에 대한 조사가 현재 진행 중이라 지금으로선 무엇도 확실히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연구개발 책임자였던 이관희 전 대표의 얘기를 듣고자 그가 현재 속한 국내 바이오기업 쪽에 연락했으나, 회사 관계자는 “(인보사 문제로) 요즘 많이 힘들어해 취재에 응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뒤바뀐 세포’ 임상시험 결과 어찌되나
2005년 논문 이후에 인보사 세포의 특성을 다시 확인해줄 만한 후속 논문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언론에서도 유전자치료제 특허와 신약의 시장 개척과 전망, 그리고 임상시험 결과에 관한 기사들이 주로 보도됐다.
미국 임상시험을 앞둔 전임상 연구로 2010년 국제학술지 <세포치료>에 발표한 논문에서 연구진은 방사선을 쪼여 증식력을 제한한 형질전환 연골세포와 보통 연골세포를 1대3으로 섞어 주사했더니 실험동물들에서 연골 증식 효과가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오랜 목표였던 연골 재생 효과는 실제 진행된 여러 임상시험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다. 미국에서 행한 임상시험 1상 결과를 담아 <세포치료>에 발표한 2012년 논문에 이어, 2015년 미국 대학병원 등 소속 연구진(6명)은 국제학술지 <골관절염과 연골>에 미국 2상 결과 논문에서도 102명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에서 관절의 기능 개선과 통증 완화의 유의미한 변화가 관찰됐다고 보고했다.
2018년 국제학술지 <인간 유전자치료 임상발전>에 발표된 국내 3상 논문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제시됐다. 논문을 보면 이 임상시험에는 서울대, 인하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충북대, 경상대 등 10여개 대학병원 의료진이 참여했다. 연구진은 163명을 대상으로 행한 임상시험에서 마찬가지로 기능 개선과 통증 완화 효과가 유의미하게 관찰됐다고 보고했다.
임상시험에 쓰인 약물이 허가되지 않은 다른 성분인 것으로 밝혀진 상황에서, 기존의 임상시험 결과들은 어떻게 처리될까. 국내 3상 논문의 공저자 12명 중 7명한테 이와 관련해 전자우편으로 물었으나 10일 현재 답장은 오지 않았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임상시험 1상에선 안전성 평가, 2상에선 유효성 평가가 이뤄지고 3상에선 위약(가짜약)과 신약을 비교하는 유효성 비교평가가 이뤄지는데 당시 인보사 성분이 293세포로 알려졌다면 임상시험 설계도 달라져야 했기에 연골세포인 줄로 잘못 알고 행한 임상시험 결과는 의미가 없어진다”라고 말했다. 백한주 류마티스학회 정책이사(가천대 의대 교수)도 “ㄱ약물로 임상시험 했는데 알고 보니 ㄴ약물이었다면 당연히 임상시험 결과나 논문은 무효가 될 수밖에 없다. 논문의 철회 여부는 저자나 학술지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인보사 관련 연구개발을 되짚어보면 인보사 세포의 특성에 대한 후속 연구개발이나 주기적인 확인 검사는 그 세포가 처음 만들어진 2004~2005년의 시계에서 멈추어 더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중반 시작해 2000년대에 본격화한 인보사 세포 개발의 초기 논문은 인보사 사태가 터지면서 이제 연구 진실성에 대한 의문을 함께 불러일으키고 있다. 임상시험 논문들도 시험 약물이 뒤바뀌면서 모두 의미를 잃어버릴 처지에 놓이게 됐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