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연구팀이 상온에서 기압만으로 얼음을 형성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또 3차원 팔면체 얼음 결정을 2차원 날개 모양으로 변형시켜 얼음의 형상 변화 원리를 규명했다. 사진은 얼음 결정의 성장 형상 변화를 관찰한 이미지이다. 표준연 제공
1994년 10월31일 ‘할로윈데이’에 미국 아메리칸 이글항공 4184편이 인디애나 폴리스에서 시카고 오헤어공항으로 가던 중 추락해 탑승인원 68명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사후 조사에서 이 프랑스제 최신형 항공기는 상공의 한랭전선 때문에 생긴 결빙으로 항공기 날개가 제어되지 않아 추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상공을 운항중인 항공기는 승객들이 직접 느끼는 난기류보다 착빙이 더 위험하다.(
참고: 난기류 때문에 비행기 타기가 무섭다고요?) 얼음 결정의 성장속도와 형태를 조절하는 제어기술은 비행기 안전에 필수적이다.
국내 연구진이 영상의 상온에서 순수하게 압력만으로 얼음 결정을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3차원 모양의 얼음을 2차원으로 변형시키는 등 얼음 형상의 변화 원리도 밝혀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 융합물성측정센터 극한연구팀은 30일 “물을 1만 기압 이상 압축해 얼음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또 압력 조건을 제어해 3차원 팔면체의 얼음을 2차원 날개모양으로 변화시키면서 얼음의 형태 변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연구팀 논문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융합물성측정센터의 이윤희(오른쪽) 책임연구원과 이근우(왼쪽) 책임연구원이 얼음성장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초고속카메라를 조정하고 있다. 표준연 제공
연구 성과의 의의는 온도에 구애받지 않고 얼음의 크기나 형태 및 성장하는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연에서 관찰되는 얼음 결정 모양은 육각판, 기둥, 뿔 등 1만 가지 이상이다. 이를 임의로 조절할 수 있다면 온도에 의존해 만든 얼음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 가령 쇠고기 등을 대기압에서 영하 18도 이하로 냉동시키면 바늘처럼 뾰족한 육각형 얼음결정이 생겨 세포와 조직을 손상시킨다. 냉동실에서 꺼낸 고기의 육질과 맛이 냉장육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고압으로 냉동시키면 뾰족하지 않은 다른 형태의 얼음 결정이 생겨 육질을 보호할 수 있다.
연구팀은 초당 대기압의 500만배까지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실시간 동적 다이아몬드 앤빌셀’ 장치를 개발해 고압에서 얼음을 성장시켰다. 한 쌍의 다이아몬드 모루(앤빌)로 눌러서 고압을 형성하는 기존 기술에 고속 액츄에이션 기술을 결합한 연구팀 고유의 기술이다. 이 기술을 통해 일상의 온도에서 물을 압축해 고압 얼음을 만들고, 나아가 동적인 압력 조작을 통해 3차원의 팔면체 얼음을 2차원 날개모양으로 변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기존 연구에서는 이런 과정을 온도나 농도를 조절해가며 실험했기 때문에 열과 입자의 전달 속도 한계로 결정의 빠른 성장을 관찰할 수 없었던 반면 압력은 일정하게 높였다 줄였다 할 수 있어 물 분자의 결정화 과정을 상세히 순차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윤희 표준연 책임연구원은 “고압 냉동기술을 활용하면 식품의 맛과 신선도를 유지하는 새로운 형태의 얼음결정과 냉동공정을 만들 수 있다. 더욱이 고압에서는 살균처리가 가능해 제품의 고품질을 유지할 수 있고 고압을 이용해 단백질을 변형시키면 의약품 개발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근우 표준연 책임연구원은 “마리아나 해구처럼 고압 저온의 심해에서 사는 물고기, 툰드라의 혹한 추위에서 사는 생명체 등은 극한의 환경에서도 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화성에서는 탐사활동을 위해 방사능과 가혹한 온도를 견디는 얼음집이 제시된 바 있다. 이번 연구는 지구나 외계 행성의 극한 환경에 존재하는 물 또는 얼음의 형태를 예측하는 방법을 찾는 수단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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