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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건강 문제는 개인의 책임일까요?

등록 2019-09-06 08:00수정 2019-09-06 10:21

김준혁의 의학과 서사 (22)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를 통해 몸과 책임의 문제 살펴보기
1985년 작품 ‘시녀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훌루의 동명 드라마 ‘시녀 이야기’. 출처: 아이엠디비
1985년 작품 ‘시녀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훌루의 동명 드라마 ‘시녀 이야기’. 출처: 아이엠디비
2019년 5월19일,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선 많은 사람이 시위 장소에 모였습니다. 주 정부가 앨라배마 인간생명보호법(Alabama Human Life Protection Act)을 통과시킨 탓인데요. 1973년 미 헌법 수정 조항 제14조의 적법 절차 조항에 따라 여성이 임신중절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 이후 임신중절을 포괄적으로 금지한 법안이 등장하여 여성 선택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위에서 특이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빨간색 가운에 눈가리개를 겸한 하얀 보닛. 한 기사가 “2019년의 가이 포크스 가면(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나오는 가면으로 전체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을 상징)”이라고 부른 ‘시녀 복장’입니다.[1]

이 빨간 시녀복은 캐나다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디스토피아(유토피아의 반대말로, 비관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억압적 이상세계를 가리킨다) 소설 ‘시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의상으로, 미국의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가 소설을 드라마화하면서 명성을 얻었지요. 작품은 쿠데타가 일어난 근미래 미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전쟁과 환경오염으로 출생률이 바닥을 친 상황(어딘가가 떠오르지만 일단 넘어갈까요)에서 가임기 여성을 고위직 가정의 출생에 동원하는 사회, 그 사회에 속한 ‘시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작품 속이라지만 여성의 몸을 국가가 통제하는 사회가 현실에 도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법안 반대 시위에 반영된 것이겠지요.

시녀 복장 시위가 처음 시작되었던 계기가 재미있습니다. 2017년 텍사스에서 열린 창조산업 축제 에스엑스에스더블유(SXSW)에서 훌루가 드라마 ‘시녀 이야기’ 홍보를 위해 여성들을 고용, 시녀 복장을 입혔습니다. 텍사스에서 활동하던 전미 임신중절권리연맹(NARAL) 소속 운동가가 이 장면에 착안, 임신중절 시술 접근권을 제한하는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여성들에게 빨간 시녀 복을 입히면서 유행으로 번지기 시작했지요. 이제, 전 세계의 여성 권리 관련 시위에서 빨간 시녀복을 입은 여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2017년 6월 27일 워싱턴에서 미국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 지원금 감축을 반대하는 여성들이 빨간 시녀 복을 입고 시위하고 있다. 미국을 벗어나 아일랜드, 아르헨티나, 크로아티아, 폴란드 등 전 세계에서 빨간 시녀 복 시위는 진행 중이다. 출처: 뉴욕타임스
2017년 6월 27일 워싱턴에서 미국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 지원금 감축을 반대하는 여성들이 빨간 시녀 복을 입고 시위하고 있다. 미국을 벗어나 아일랜드, 아르헨티나, 크로아티아, 폴란드 등 전 세계에서 빨간 시녀 복 시위는 진행 중이다. 출처: 뉴욕타임스
이런 시위는 흥미롭지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광고를 시위에 활용하는 건 오히려 광고 효과만 높여주는 건 아닐까요? 게다가, 소설과 현실의 차이는 시위의 방향성에 질문을 제기합니다. 한 기고가는 빨간 시녀복 시위에 반대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시위자들이 주장하는 것이 미국이 길리어드(‘시녀 이야기’에 등장하는 전체주의적 가상 국가)로 변하고 있다는 것인지, 이미 미국이 큰 부분에서 길리어드가 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인지 헷갈린다.”[2] 소설에서 ‘시녀’는 임신의 상대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임신은 그에게 여러 특권을 부여하기에 어떤 식으로든 임신을 하려고 하지요. 반면, 현실에서 문제는 상대가 아니라 임신을 지속할 것인지 여부입니다. 이를테면 임신중절을 반대하는 측에서 우리는 선택을 억압하지 않고(누굴 만나는지 간섭하는 건 아니니) 단지 책임을 강조할 뿐이라고 말한다면, 시녀복 시위는 무엇에 반대하는 거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지요.

사실, 이런 논의가 벌어지는 것은 자유와 책임에 관한 논의가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 길리어드는 여성의 선택을 제한하면서 과거 방종한 여성을 비난합니다. 선택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을 선택했기에 그들이 어떤 운명에 처하든 그들의 책임이라는 것이죠. 예컨대 신의 뜻을 따르는 국가 정책을 따르지 않고 남성과 여성이 ‘자유롭게’ 만났을 때 발생하는 일은 그들의 책임이라는 겁니다. 한편, 미국의 현 대통령 트럼프로 상징할 수 있는 일단의 도덕적 자유주의자 또한 비슷한 결의 주장을 합니다. 현실에서 피해를 보고 있는 누군가는 그의 잘못된 선택이 가져온 결과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가는 그들의 피해를 보상해선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임신중절과 관련하여 임신중절 클리닉을 늘려 접근성을 확보할 필요는 없습니다. 임신은 개인의 선택이니 과정 또한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데요.

조금 혼란스러운 내용을 말씀드렸어요.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살피기 위해서, 소설 속 세상으로 잠깐 들어가 보려 합니다. 길리어드에서 ‘오브프레드’(‘프레드의 것’이라는 의미)라는 가명으로 불리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전체주의와 도덕적 자유주의가 피해자를 비난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한목소리를 내는지 보여줄 거예요. 이것은 몸과 책임의 문제라는 난제와 직접 연결되어 있지요. 임신중절, 약물중독, 정신질환 등 논쟁적 주제는 이 문제를 비껴가기 어렵습니다.

절대 짓밟히지 않겠다는 다짐을 허물어뜨리는 것은

소설 마지막에 나오는 길리어드 연구 심포지엄의 내용을 보면, 길리어드는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유일신정국(唯一神政國)’입니다.[3] 정확한 연대에 관한 언급은 없으나 정황상 세기말에 등장하여 백년 정도 존속하다 사라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는 2195년 현재엔 이미 과거로 사라져 버린 국가이기 때문이지요.

세계대전이 다시 벌어져 지구 전역이 전쟁의 참화를 겪는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 작품과 달리, ‘시녀 이야기’는 비록 환경 문제가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렸을지언정 모든 국가가 기능을 멈추고 혼란의 세계로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국가 간 교역과 왕래는 이뤄지고 있지요. 단,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종교단체는 시민에 대한 통제를 시작하여 그들에게 새로운 질서를 강제합니다. 정권을 잡은 자들은 먼저 정보를 통제하여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도록 만든 다음, 외부 세력과 계속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바깥(‘콜로니’)에선 엄혹한 환경 속에 사람들이 노출되어 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유포합니다. 이 내용이 사실인지는 소설을 다 읽은 다음에도 알 수 없는데, 이는 마지막 장을 제외한 소설 전부가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며 주인공 또한 소문을 전해 들을 뿐 정보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죠.

기독교에 기반을 둔 길리어드 정권은 이어 기묘한 정책을 도입합니다. 어찌 보면 새로운 가정의 형태를 도입한 것이라 볼 수도 있는데, ‘사령관’(지배 계층)은 아내를 둘 수 있으며 여기에 더해 ‘시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녀는 집안일을 하는 ‘하녀’와 달리, 임신할 수 있는 여성만 선별하여 이들에게 소정의 교육을 한 뒤 각 사령관의 가정에 순환식으로 배치를 합니다. 이들의 역할을 예측하실 수 있겠지요. 이들은 이미 가임기를 지난 사령관의 아내를 대신하여 임신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령관이 된 남성은 웬만하면 고령이거나 고령에 가까울 거예요. 그가 맞이한 아내 또한 마찬가지겠지요. 출산율이 극단적으로 낮은 소설 속 세계에서 지배 계층은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합니다. 따라서 시녀의 ‘씨받이’ 역할은 당위를 부여받습니다.

드라마 ‘시녀 이야기’는 애트우드의 소설을 성공적으로 시각화하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주어지는 에미상 드라마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사진은 주인공 준(엘리자베스 모스 분)이 재닌(매들린 브루어 분)의 ‘출산의 날’ 의식(시녀의 출산 과정에 지역의 모든 아내와 시녀가 참석해 함께하는 것)에 참석하여 재닌을 만나는 장면. 출처: 아이엠디비
드라마 ‘시녀 이야기’는 애트우드의 소설을 성공적으로 시각화하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주어지는 에미상 드라마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사진은 주인공 준(엘리자베스 모스 분)이 재닌(매들린 브루어 분)의 ‘출산의 날’ 의식(시녀의 출산 과정에 지역의 모든 아내와 시녀가 참석해 함께하는 것)에 참석하여 재닌을 만나는 장면. 출처: 아이엠디비
길리어드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이런 상황을 정당화하려 해요. 구약 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은 유대 민족의 시조 중 한 사람으로 두 명의 아내, 레아와 라헬을 두지요. 통 아이를 갖지 못하던 라헬은 야곱에게 사정하여 자기 종 빌하에게 아이를 갖게 하여 그 아이를 자기 아이로 삼겠다고 합니다. 이 내용을 전유(傳諭)한 길리어드는 자신들의 정책이 신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시녀가 사령관과 동침할 때, 아내는 그 과정에 함께하여 비록 시녀의 신체를 빌리지만 정신은 아내와 이어져 있음을 보여야 합니다. 혹시 시녀가 임신하게 되면, 그 아이는 아내에게 귀속됩니다.

이런 비정상적 상황이 신을 내세워 합리화되는 사회에서 시녀로 사는 주인공은 끊임없이 과거를 회상합니다. 사실 소설 전체의 기록이 이후에 발견된 테이프에서 녹취된 것이라고 설정되어 있기에, 소설은 이중의 회상 구조를 취하고 있지요. 회상으로 기록한 내용 속에 담겨 있는, 회상의 시점보다 더 과거를 떠올리는 자신. 이 모습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자신을 이중화하는 주인공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이전 결혼 생활, 어딘가에서 남의 손에 크고 있을 딸, 탈출 과정에서 살해당한 남편을 떠올리는 일이 주인공에게 비참한 세상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지요.

세상을 견뎌 나가는 것은 주인공 혼자만의 결심도, 노력도 아닙니다. 사령관 프레드의 가정에서 시녀 역할을 하는 주인공은 방에서 이전에 살던 시녀가 남긴 낙서를 찾아냅니다. “놀리테 테 바스타르데스 카르보룬도룸(Nolite te bastardes carborundorum).” ‘그 빌어먹을 놈들한테 절대 짓밟히지 말라’는 뜻의 라틴어는 시녀들의 결의이자 직접적 소통을 차단당한 사람들을 연결하는 매개로 작동합니다. 절대 꺾이지 않을 것, 절대 짓밟히지 않을 것.

이 과정을 회상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워요. 몇 번이나 책장을 덮고 싶었는지, 아니 실제로 덮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인공이 비인격적 대우를 받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주인공의 상황은 간접적으로 묘사되는 다른 사람들의 상황보다 나은 편이거든요. 심지어 주인공의 사령관은 다른 꿍꿍이가 있긴 하지만 친절한 편이고, 다른 사람들의 조력도 얻거든요. 주인공의 삶이 현실을 떠올리게 해서도 아닙니다. 말씀드렸듯, 길리어드라는 전체주의 사회는 현실과 어느 정도 간극이 있으며(비록 그것이 현실이 될까 두려울 때가 있지만) 저는 감히 임신과 출산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닙니다.

고통스러운 것은 몇 년 만에 변한 사람들과 사회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소설 속 일이니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하시겠지요. 하지만 길리어드 속에서 사람들이 왜 체제에 복종하는 선택을 하는지, 서로를 의심하여 유대를 상실하는지를 소설은 너무나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구절이 좋은 예가 될 텐데요.

하복은 벌써 상자에서 꺼내 옷장 속에 두 벌을 걸어두었다. 순면이라서 싸구려 합성 섬유보다는 훨씬 좋았지만, 그래도 7~8월의 무더위에는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하지만 자외선에 화상 입을 걱정은 없잖아. 리디아 ‘아주머니’의 말이다. 옛날의 여자 꼴불견들은 기가 막힐 정도지. 꼬치에 꿴 바비큐처럼 몸에다 기름을 처바르고 한 길가에서, 사람들 다 보는데 등과 어깨를 훤히 드러내고 다녔으니. 게다가 스타킹도 신지 않은 맨다리를 내놓았다고. 그러니 그런 일들이 일어난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런 일들, 리디아 ‘아주머니’가 혐오스럽거나 더럽거나 끔찍한 단어를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을 때 한데 뭉뚱그려 쓰는 말이었다.(99쪽)

사회는 피해자였을 여성에게 잘못을 전가하여 현재의 강압을 정당화합니다. 이런 ‘피해자 책임전가(victim blaming)’가 소설 곳곳에 등장하여 신의 명령을 따르는 정부와 정책을 허용해야 하는 이유로 등장합니다. 피해를 본 사람은 그 사람의 잘못 때문이라는 말. 지금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부정한 세대 때문이고, 누군가가 아픈 것은 환자가 생활이 정돈되지 않고 무절제했기 때문이며, 출산율이 떨어진 것은 아이를 안 낳으려 한 사람들 때문이라는, 말이 돌아 현실을 바꾸고 부당한 현실을 수용하게 만드는 이 상황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건강 책임과 피해자 책임전가 문제

2019년 현재 미국은 보건의료의 여러 영역에서 개인의 책임을 강화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라고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개인이 건강을 추구하는 방법을 제시하여 의료 비용을 줄이도록 돕는다는 소위 ‘웰니스(wellness)’ 산업의 그늘에는 건강 문제는 개인의 책임이라는 주장이 숨어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거짓은 아닙니다. 예컨대 흡연으로 인한 폐암은 담배를 끊지 않은 환자 탓일 수 있지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도덕적 자유주의 진영은 개인의 자유를 허용해야 하고, 그로 인해 발생한 결과에 대해 개인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는 자유의 문제와 책임의 문제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자유를 강조하며 이를 개인성의 필수적 요소라고 보는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건강 또한 개인 자유라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파서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 자신이니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제한할 수도 없지요. 다음, 우리는 개인의 자유로 인해 발생한 결과는 그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과 정책이 어떤 일의 피해 보상을 따질 때 그 일을 일으킨 사람이 자유롭게 행위를 했는지 여부가 중요하니까요. 여기에 의료행위는 환자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료윤리의 중요 원칙이 끼어듭니다. 오랫동안 의사가 권위적으로 결정했던 것에 반발한 현대 의료윤리는 환자가 자율적으로 의료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에 엄청난 우선권을 부여했지요. 두 생각이 결합하여 ‘의료적 결과에 대한 개인 책임’이라고 할 만한 것이 탄생합니다. 즉, 환자는 자율적으로 의료적 결정을 내렸으므로, 그 결과는 개인의 책임입니다.

피해자 책임전가에 반대하는 대표적 운동 ‘슬럿워크’. 성폭행을 당하는 것은 옷 때문이 아니며 안전한 사회보다 안전할 필요 없는 사회를 요구하는 주장은 국내에서도 ‘달빛시위’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피해자 책임전가에 반대하는 대표적 운동 ‘슬럿워크’. 성폭행을 당하는 것은 옷 때문이 아니며 안전한 사회보다 안전할 필요 없는 사회를 요구하는 주장은 국내에서도 ‘달빛시위’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하지만, 건강 문제를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릴 때부터 또래 집단이 흡연을 권하는 환경에 노출된 사람이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위해 계속 흡연을 유지하다 폐암에 걸린 사람에게 ‘왜 미리 끊지 그랬어요’라고 말하기만 하면 될까요? 임신중절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만 듣던 두 아이가 제대로 된 피임법도 알지 못한 채로 성 경험을 갖고, 그 결과로 임신하여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게, 왜 부주의하게 행동했어’라고 말하면 끝일까요? 그것은 몸에 미치는 사회문화역사적 영향의 두께를 무시한 채,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신화에서 나오는 피해자 책임전가의 한 형태일 뿐입니다. 누구도 사는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개인의 선택도 몸도 그 안에서 일정 범위의 자유를 행할 수 있을 뿐입니다.

‘시녀 이야기’에 나오는 한 구절은 이런 피해자 책임전가가 어떤 식으로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지요. “재닌이 일어나 열네살 때 집단 강간당하고 낙태를 해야 했던 경험을 간증한다. 지난 주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 심지어 그런 경험이 자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애초에 꾸며낸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128쪽) 재닌과 같은 처지에 놓인 주인공이지만, 피해자의 서사를 구현하고 있는 그를 동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난하지요. 그가 체제에 동조하고 있다는 이유를 내세우는 이면엔 그가 보이는 ‘피해자다움’을 부정하겠다는 의도가 내비치지요. 그렇게, 체제는 피해자들을 서로 총질하게 만들며 굴러갑니다. 그것은 소설 속 길리어드라는 전체주의 사회와 현실에서 도덕적 자유주의가 취하는 견해에서 동일하게 나타나지요.

‘시녀 이야기’에서 출산율이 극도로 낮아진 이유로 피임 등 산아제한이 중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환경오염과 감염성 질환(‘유명한 R계열 매독과 악명 높은 에이즈 전염병의 시대’, ‘불임 바이러스’) 또한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오지요. 하지만 길리어드 사회는 후자는 무시한 채 전자만을 문제 삼아 산아제한을 철폐하고 임신을 강제하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소설 속이라 해도, 길리어드 사회가 지속 가능성이 없었음은 당연합니다. 전부는 아닐지언정 응당 사회의 책임이 있는 현상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일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며칠 전 한 정치인이 공무직 후보자에게 미혼과 아이 없음을 문제 삼아 물의를 빚었습니다. 이 사건은 성차별의 문제를 벗어나, 우리 사회가 사회 문제를 어떻게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가를 보여주는 일화일 거예요. 이런 일이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이 아니라면, 우리 사회가 오히려 ‘길리어드’는 아닌지 물어야 할 겁니다.

김준혁/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참고문헌

1. Ellis EG. Handmaids Tale Garb Is the Viral Protest Uniform of 2019. Wired [Internet]. Jun 5, 2019 [cited at Sep 3, 2019]. Retrieved from: https://www.wired.com/story/handmaids-tale-protest-garb/.

2. Roberts M. Why it’s time to retire the Handmaids. The Washington Post [Internet]. May 17, 2019 [cited at Sep 3, 2019]. Retrieved from: 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2019/05/17/handmaids-arent-avatar-abortion-rights-movement.

3. 마거릿 애트우드. 김선형, 옮김. 시녀 이야기. 서울: 황금가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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