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오사와 테너, ‘감사기도 드리는 가난한 사람들’ (The Thankful Poor). 1894.
“코로나19 종식은 없다.”[1-2] 이 말은 듣기에 따라 사람을 좌절에 빠뜨리기도 하고, 안도를 주기도 합니다. 현재의 고된 상황이 지속할 것에 따른 좌절과 올 것이 왔음을 확인하는 데서 얻는 안도일 텐데요. 소위 ‘포스트 코로나’ 담론이라고 하는 것이 출발해야 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또는 그와 비슷한 감염병이 인간을 계속 괴롭힐 것이라는 현실 앞, 인간의 대응을 논의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포스트 코로나를 들먹이며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가면 새로운 사회경제적 혁신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는 글쎄, 현재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무엇에 대응해야 할까요? 여러 번 언급된 것처럼 코로나바이러스의 빠른 변이에 초점을 맞춘다면, 백신 개발이 승부수가 되긴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3] 물론, 백신·치료제 개발은 계속 추구되어야 할 목표이며, 이를 통해 코로나19가 사회경제적으로 지우고 있는 부담을 줄일 수 있겠지만요.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그리고 그 이후의 대응에서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감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바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사스, 메르스, 에볼라,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전염병, 즉 동물과 인간을 모두 감염시킬 수 있어 서로 퍼지는 감염병의 경우 시작은 동물입니다. 동물에서 퍼지던 감염병은 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인간에게 전달되고, 인간에게 퍼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환경 파괴로 동물이 서식지에서 쫓겨나고 열악한 환경에서 동물이 마구 취급되면서, 감염은 손쉽게 인간으로 넘어옵니다.[4]
인간에게서는 어떻게 퍼져 나갑니까? 확산 국면에서 크게 문제가 되었던 집단감염 사례들, 신천지, 콜센터, 이태원, 물류센터를 하나로 묶는 공통점을 찾는다면, 이들의 구성원이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천지는 기성 종교에 실망하고 사회에 좌절한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미래를 보여주며 힘들어하는 청년들을 모았습니다.[5-6] 콜센터와 물류센터 노동자는 열악한 근무 환경을 보여주었지요.[7-8] 이태원에 모였던 이들 중 일부는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을 너무나 어려워하는 성소수자들이었지요.[9]
감염병을 시작점에서 근절하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수많은 미생물 중, 어느 것이 인간에게 위험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아직 위험하지 않은 것도, 갑자기 변이를 일으켜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미생물 없이 우린 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감염병을 완전히 없애는 환상 대신, 우리에게 감염병이 다가오는 긴 연쇄의 고리 중간에 개입하는 방법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감염 고리(chains of infection)는 병원체가 인간 또는 동물에 오기까지의 경로를 모식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감염 차단은 이 중 하나의 고리를 끊는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하나의 병원체가 인간에 접근하는 경로는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고리 하나만 끊는다 하여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즉, 경로를 차단하는 개입은 여러 방식으로 가능하며, 여러 경로를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위에서 본 것처럼, 감염병은 우리 곁으로 올 때 취약한 고리들을 경유합니다. 환경 파괴,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동물 처리, 과밀화된 도시 환경 등을 건너, 인간으로 와선 약한 집단들을 타고 넘어옵니다. 이렇기에,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약한 구석이 어디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것은 위기이지만, 새로운 변화의 출발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를 지키기 위해 우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새로이 깨닫고 있습니다. 나만 건강하다고 해서 안전할 수 없습니다. 내가 건강하기 위해선 남이 건강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사회에서 건강의 취약 지점들을 찾아내어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를 목도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까요? 앞서 언급했지만, 코로나19가 공격하는 부분들이 우리의 약점들임을 확인하게 되지요. 그렇다고 코로나19의 공격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성은, 사후약방문 대신 문제를 미리 파악하고 대비하는 능력을 허락하니까요. 하나 주의할 것은, 이 모색이 무척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흔히, 이런 이야기는 건강 불평등 문제라는 틀에 들어가, 손쉽게 ‘저소득층 지원’과 귀결되곤 하지요. 그렇다면 해결책은 저소득층을 고소득층으로 만드는 것일까요?
그런 해법을 그려볼 순 있겠지만, 제 생각엔 그것은 더 큰 문제를 보다가 정작 눈앞,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회피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싶어요. 지금 여기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추상적 원인이 아닌 구체적인 사례를 살피고, 우리가 건강을 위한 접근에서 간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가난한 백인 여성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는 세라 스마시의 ‘하틀랜드’보다, 더 걸맞은 출발점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틀랜드’, 여성의 목소리가 보여주는 ‘가난한 시골 백인’의 삶
스마시의 ‘하틀랜드’는 캔자스 남부에서 살던 가난한 백인 가족의 삼대에 걸친 역사를 통해 미국 시골, 가난한 백인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11] 스마시 본인이 낳지 않았지만 언제나 함께 해왔다고 상상하는 자신의 딸에게 가족의 삶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서술된 이 책은, 미국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의 문제가 인종차별로 연결되곤 하는 분석 앞에서 당당히 말합니다. 우리 가족은, 아니 할머니, 엄마, 나는 그 모든 불평등을 견뎌내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우리는 백인이라고. 인종차별이라는 거악(巨惡)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한 시골 백인 여성의 삶 또한, 마땅히 알려져야 하는 슬픔이라고.
세라 스마시의 ‘하틀랜드’는 그동안 재현되지 않은 삶이었던 백인 빈곤층의 고난을 서사로 풀어냈다. 분석만큼 서사로 제시하는 것은 중요한데, 분석이 현실을 추상해 어떤 해결책이나 시사점을 찾아낸 것이기에 당장 문제의 답을 낼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만큼 진짜 문제로부터 우리를 떼어놓기 때문이다. ‘진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우리는 이야기된 서사를 필요로 한다. 출처: 알라딘
책은 가족의 가난, 여성의 몸, 도시와 시골의 격차, 능력주의 사회 속 가난의 수치, 주거, 노동 계급 여성, 지역 차이를 각 장의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시골, 가난, 여성, 주거, 수치 각각은 누군가가 느끼는 차별을 설명하기엔 부족한 요인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요인이 연결되어 ‘가난한 시골 여성’의 위치를 구체화할 때, 이 위치는 언론이나 미디어, 예술 작품이 주목하지 않는 고난의 자리를 드러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고정관념 때문이겠죠. 백인 여성은 차별의 대상이라고 여겨지지 않으니까요. 시골 백인은 무시당할지언정, 농장의 풍성함이라는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으니까요.
이들 요소는 연결되어, 각각이 미치는 아픔보다 큰 상실을 가져옵니다. 예로, ‘가난한 시골 엄마’를 살펴봅시다. 스마시가 아직 네 살일 때 엄마는 둘째를 낳습니다. 아빠는 바로 일하러 나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엄마는 두 아이를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합니다. 매달려보지만, 일 나가는 남편을 막는 것은 언감생심입니다. 그리고, 아이는 사고를 치곤 하지요.
아빠가 나간 뒤 엄마는 침대에서 통증을 참으며 쪽잠을 자려고 애썼고 맷은 요람에서 울었어. 내가 엄마 침실에 있는 서랍장 위에 올라갔는데 서랍장이 엎어져버렸어. 그래서 서랍장 밑에 깔렸지.
엄마가 침대에서 뛰어나와 어찌어찌 서랍장을 들어 올렸는데 힘을 주다가 회음부 꿰맨 자리가 터져버렸어. 피가 허벅지를 타고 흘렀어.
다시 병원으로 가지는 않은 것 같아. 엄마가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들려 주었는데 아빠가 없어서 죽을 뻔한 날이었다고 했어. 나는 그날이 사회에서 출산율과 자립은 중요시하면서 여성과 아이들에는 신경을 쓰지 않은 날이었다고 봐. 임신을 하면 활동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임산부는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지. 핵가족에서는 줄어든 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아빠들이 두 배로 일하고 엄마 혼자 아이를 떠맡아야 했어. 시골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었어(82~83쪽).
위 상황에서 남편이 있었다면, 둘째를 낳지 않았다면, 서랍장이 엎어지지 않도록 설계되었다면, 응급의료 접근성이 높다면 등 어느 하나의 조건만 충족되어도 엄마가 위험에 처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나 이들 요소는 복합적으로 연결되면서 위험을, 취약한 지점을 만들어 냅니다.
‘가난한 시골 아빠’도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보잉 회사 일이 끝난 다음에 아빠는 위치토에서 또 다른 일거리를 찾았어. 이번에는 산업용 세척제를 공급하고 처리하는 일을 하는 국영기업 일이었어. 밴을 몰고 도시와 주변 타운을 돌면서 정비소에 세척 용제와 장비를 배달했어. 또 엔진오일 같은 이미 사용한 화학 물질을 밴 뒤에 있는 커다란 드럼통에 받아서 지정된 폐기장에 갖다 버렸지.
그 일을 시작한 지 열흘쯤 되었을 때, 아빠가 주간 도로를 홀로 달리는데 갑자기 세상이 느리게 돌아가더래. 회사 안마당에 들어왔을 때는 입에서 거품을 흘리고 있었어. 어떤 직원이 아빠를, 엄마가 가끔 명절에 상품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는 쇼핑몰 옆 경증 응급 센터로 데려갔어.
아빠는 자기가 죽어간다는 걸 알았대. 쇼핑몰 입구에서 무릎을 꿇고 하느님에게 기도를 드리자 쇼핑하러 온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쳐다봤지.
구급 요원들이 아빠에게 구속복을 입히고 진짜 병원으로 데려갔어. 아빠와 내가 태어난 병원. 아빠는 화학 약품에 중독된 거였어.
폐기장에 불법으로 버려진 독성 폐기물이 반응을 일으켜 생긴 가스를 들이마셔서 그렇게 된 거라고 들었어.(104~105쪽)
일거리를 찾아 전전하는 삶, 안전장치가 없는 일에 내몰리는 아빠는 결국 화학 약품에 중독되고 이는 아빠의 몸과 삶에 후유증을 남깁니다. 망상형 조현병 진단을 받은 증조할머니 도러시, 폐렴과 히스토플라스마증에 걸리는 할머니 베티. 심지어 야경증에 시달리는 동생 맷까지. 스마시의 가족 모두는 질병을 안고 삽니다. 그들이 처한 환경은 위험하며, 그것을 막을 안전장치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하틀랜드’의 저자 세라 스마시는 여러 지면에 사회경제적 쟁점을 다룬 글을 기고해 왔으며 최근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되었다. ‘하틀랜드’에 담긴 그의 목소리는 왜 구체적인 시선과 표현이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다. ©Paul Andrews
여기에서 최후 안전망으로 작동해야 할 병원마저 차츰 기업화, 민영화로 이들이 찾아갈 수 없는 곳으로 바뀝니다. “내가 태어날 무렵에 시골 병원이 하나둘 문을 닫고 미국 의료 체계는 도심에 있는 번드르르하고 거대한 사업체로 바뀌었어.” (113쪽) 이들의 거주지는 위험으로 가득 차 있고, 돌봄을 위한 어떤 체계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비일상은 점점 일상이 됩니다. “우리가 사는 곳, 우리가 속한 계급의 신체적 지표가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적이라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못해봤어.” (127쪽)
코로나19 시대, 건강 차별을 말하자
스마시가 전달하는 고통의 기억들은 우리에게 이 삶의 위험이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강제합니다. 고난은 삶을 휘감고 있어 빠져나갈 구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도, 이들의 삶은 개별 요소가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약자’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요소는 연쇄를 일으켜 삶을 취약하게 하고, 거주하는 곳을 위험으로 덮습니다.
코로나19를 대할 때, 우리는 건강이 무엇인지 좀 더 세밀하게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코로나19가 공격하는 곳은 평소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던 지점입니다. 사회에서 내몰린 청년들이 종교에 의탁하여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질서를 따르고 있음을 알던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콜센터와 물류센터의 근무 환경이 좋지야 않았겠지만, 업무를 해내기 위해 개인 안전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었을까요. 성소수자 차별에 관한 문제야 생각은 해봤겠지만, 그들이 병·의원 방문하는 것을 꺼린다는 것까지 살펴본 적이 있었을까요. 그러나 이 모두는 각자의 건강을 취약하게 만드는 요소이며, 이런 구체적인 지점들을 건드리지 못할 때 건강 위험의 연쇄가 만들어집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이 심각한 문제가 되면서, 하나의 건강(One Health)이라는 접근법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인간과 동물, 환경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각각의 건강함이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 그렇기에 인간의 건강을 위해 동물과 환경 또한 돌봐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출처: 논문[11].
모두가 건강해야 나도 건강할 수 있다면, 건강은 모두에게 주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모두에게 설정된 당연한 권리라서가 아니라, 모두의 건강이 실제적인 요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만 건강한 삶을 추구한다고 해서 건강하게 지낼 수 없는 세상. 이것이 진정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의미일 것입니다. 모두의 건강 안에서, 건강을 박탈당한 이가 있다면, 그에겐 건강의 차별이 주어진 것이며, 건강으로 인한 차별을 받는 상태라고 말해야겠지요. 스마시가 ‘하틀랜드’에서 그린 가난한 백인 시골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코로나19에 시달리는 우리의 현실이 그런 것처럼.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까요? 답은 생각보다 가까운 데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취약 지점들을 하나씩 고쳐 나가는 것. 문제가 되는 근무 환경이 있다면 개선을 요구하며, 의료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가 있다면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사회경제적 이유로 정신적 위기를 느끼는 이들에게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는 일도 좋겠죠. 위생적이지 않은 도축 환경에 문제를 제기하고, 더 나아가 동물 또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육 환경을 말하며, 환경 파괴에 경각심을 가지고 동물의 거주지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힘쓰는 것도 좋겠죠.
할 일은 무척이나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남을 위한 헌신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며, 나를 위한 노력이 남을 향한 도움으로 이어짐을 깨닫는 방향 전환입니다. 건강 위험이라는 차별을 줄여 모두가 건강하게 사는 삶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 세대에게 필요한 정의라고 저는 믿습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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