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야생마’ 프르제발스키의 복제 망아지 탄생 한달
복제말 커트가 태어난 지 4주째에 접어든 8월30일 걷기 연습을 하고 있다. 샌디에이고동물원 동영상 갈무리
대리모와 함께 있는 복제말 커트. 8월28일에 찍은 사진이다.
종 보전 위해 12마리 포획했으나 유전적 다양성 떨어져 위기 애초 프르제발스키의 종 보전을 위한 인공 번식 프로그램에서 확보한 개체수는 고작 12마리였다. 11마리는 1899~1902년 야생에서 포획한 것이고 나머지 한 마리는 1947년에 잡은 것이다. 어쨌든 이 프로그램 덕분에 현재 개체수는 2000마리로 불어나 있다. 숫자로만 보면 성공적인 결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유전적 다양성이다. 12마리란 숫자는 종의 심각한 개체수 감소를 뜻하는 개체군 병목 단계에 진입했음을 가리킨다. 이후 개체수가 회복될 수도 있지만 멸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유전적 다양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유전적 변이가 적을수록 외부 환경의 압박이나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개체수가 적으면 유전자 부동(genetic drift), 즉 기존의 종 특성이 개체군 내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유전적 다양성은 더 줄어든다. 특히 개체수가 줄면서 근친 교배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문제다. 이는 환경 적응력을 떨어뜨리는 `근친교배 약세'(inbreeding depression)를 부른다. 열악한 특성이 개체군에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져 종의 생존력이 약화되는 것이다. 프르제발스키 말의 경우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사육 말과의 종간 교배 문제였다. 종간교배로 잡종이 태어나면서 프르제발스키 순종은 다시 하위집단으로 쪼개져 나갔고, 이는 유전전 부동 현상을 더욱 심화시켰다.
샌디에이고 냉동동물원의 냉동보관 탱크.
1980년 냉동보관 처리…혈통 분석 결과 매우 다양한 유전 변이 보유 이런 상황에서 1980년 샌디에이고 냉동동물원에서 냉동처리한 쿠포로비치란 말의 세포주는 과학자들에게 큰 선물이 됐다. 1975년 영국에서 태어나 1978년 미국으로 옮겨진 이 말의 혈통을 분석한 결과, 현재 살아 있는 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유전적 변이를 갖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직접적으로는 잡종 말의 후손이지만, 그 이전 두 마리의 야생 조상말이 갖고 있던 대립 유전자들을 더 많이 갖고 있었다. 이는 이 말이 후손을 번식할 경우, 다른 말들보다 더 큰 유전적 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걸 뜻한다. 1998년 쿠포로비치가 죽은 지 20여년 후에 정확히 그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복제동물을 탄생시킨 이유다. 샌디에이고세계동물원의 생명과학 최고책임자인 동물학자 밥 비제(Bob Wiese)는 "이 망아지는 프르제발스키종에서 유전적으로 가장 중요한 개체 중 하나일 것"이라며 "이 망아지를 통해 프르제발스키종 개체군의 미래에 유전적 변이가 다시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몽골의 하르 오스 노르(Khar Us Nuur) 국립공원 지역에서 다시 야생으로 돌아간 프르제발스키.
복제 성공 냉동보관 기간 두 배로 늘어…영구동토층의 매머드 복제 꿈 커트의 탄생은 멸종 위기에 처한 다른 동물의 종 보전에도 기대감을 갖게 한다. 커트는 냉동 보관된 유전 물질의 복원과 복제 가능 기간을 크게 늘려줬다. 이전에도 냉동 유전자를 이용해 동물을 복제한 사례는 있었다. 2009년엔 13년간 냉동보관했던 황소의 고환 세포에서 배아를 만들어 복제한 적이 있다. 2015년 멸종 위기종인 검은발족제비의 20년 동결 정자를 이용해 복제에 성공한 사례가 보고됐다. 야생동물 보전단체 리바이브앤리스토어는 언젠가는 수천년 전에 멸종한 매머드도 영구동토층에 냉동상태로 남아 있는 조직 세포를 이용해 복제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번 동물 복제의 성공은 그 길로 가는 길에 한 발짝 더 나아간 셈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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