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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5만년 전 사라진 데니소바인, 남미인 입술에 흔적 남겼다

등록 2021-02-09 10:02수정 2021-02-09 10:18

얼굴형태 결정하는 유전자 32개 무더기 발견
이종교배 통해 데니소바인 입술 유전자 받아

중앙아시아에 살았던 고대인류 데니소바인의 입술 모양 유전자가 오늘날 남미 사람들한테서도 발견됐다. UCL 제공
중앙아시아에 살았던 고대인류 데니소바인의 입술 모양 유전자가 오늘날 남미 사람들한테서도 발견됐다. UCL 제공

콧날의 각도, 입술 두께 등 인간의 옆얼굴(프로필) 형태를 결정하는 유전자가 확인됐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이 주도하는 국제 공동연구진은 중남미 5개국 자원자 6천여명을 분석한 결과 코와 입술, 턱, 눈썹 모양 같은 얼굴 특징에 영향을 주는 32개의 유전자를 확인해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최근 발표했다.

연구진이 발견한 것 가운데 9개는 이번에 새로 드러난 것이며 다른 것들은 이전 연구에서 증거가 불충분했던 것을 명확히 확인한 것이다.

연구진은 참가자의 오른쪽 프로필 사진에서 얻은 입술 두께, 코 높이 등 59개 측정값(측정지점 사이의 거리, 각도, 비율)을 계량화해 특징을 추출한 뒤 유전자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특히 두 가지 유전자에 주목했다. 하나는 입술 모양에 관여하는 'TBX15'라는 유전자다. 연구진은 이 유전자가 5만년 전 멸종한 데니소바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DNA 분석을 토대로 형상화한 데니소바인 여성의 얼굴. 네이처(2019)
DNA 분석을 토대로 형상화한 데니소바인 여성의 얼굴. 네이처(2019)

데니소바인의 유골이 발견된 곳은 시베리아 알타이산맥의 데니소바 동굴 한 곳이지만, 과학자들은 유전자 분석 결과를 토대로 데니소바인은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에서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살았던 것으로 추정한다. 데니소바인의 유전자 일부가 태평양 섬 사람들과 미주지역 원주민한테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는 데니소바인이 현생인류와도 이종교배를 했음을 보여준다. 이들과 같은 시기에 서아시아와 유럽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이 살고 있었다. 두 고대인류는 20만년 전 갈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얼굴형태 결정에 관여하는 32개 유전자들의 기능을 표시한 그림(위)과 각 유전자들의 염색체 내 위치.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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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추운 기후에서 체지방 분산 역할한 듯

카우스투브 아드히카리 UCL 교수(유전학 및 진화환경학)는 "우리가 확인한 얼굴 형태 유전자는 고대 인류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긴 진화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데니소바인이 갖고 있던 입술 형태를 결정하는 유전자는 중앙아시아의 추운 기후에 더 잘 적응할 수 있게 체지방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현생인류와 이종교배하면서 이 유전자가 고스란히 현대 인류에게까지 전달된 것으로 그는 추정했다.

논문 공동 제1저자인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학의 피에르 포 박사는 "고대 인류에게서 유래한 유전자가 현대 인류의 얼굴 형태와 관련돼 있음을 밝혀낸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이런 연구가 나오지 않았던 것은 현대 유럽인한테는 데니소바인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번 발견은 연구 대상을 유럽을 넘어 다른 지역에까지 확장했기에 가능했다.

코 모양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VPS13B'는 마우스를 비롯한 다른 동물에서도 발견된다. 픽사베이
코 모양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VPS13B'는 마우스를 비롯한 다른 동물에서도 발견된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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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에서도 발견된 코 모양 유전자...광범위한 유전 기반 공유 증거

이번 연구에서 발견한 또 다른 유전자 `VPS13B'은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의 얼굴 형태 진화를 이해하는 데 시사점을 준다. 뾰족한 코 모양에 관여하는 이 유전자는 생쥐에서도 발견된다. 이는 종간 간격이 큰 포유 동물들 사이에서도 광범위하게 공유하는 유전적 기반이 있음을 가리킨다. 연구진은 그러나 이 유전자가 코 모양을 결정하는 유일하거나 절대적인 요인은 아니며, 다른 유전자들도 있고 환경 요인들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UCL 연구진은 2016년 코 모양을 결정하는 유전자 4개를 발견했을 당시 "코의 모양은 환경을 반영해 진화한다"며 예컨대 유럽인의 뾰족한 코는 춥고 건조한 기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특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얼굴 특징의 발달 과정을 더 잘 이해하고, 나아가 얼굴 기형을 유발하는 유전질환을 연구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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