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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인간은 물을 절약하는 생리구조로 진화했다

등록 2021-03-09 11:03수정 2021-03-09 11:08

하루 물 소비량, 유인원보다 30~50% 적어
건조한 환경에서 생존 위한 자연선택 결과
인간은 유인원보다 물을 알뜰하게 소비하는 쪽으로 진화했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Pixabay
인간은 유인원보다 물을 알뜰하게 소비하는 쪽으로 진화했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Pixabay

진화사에서 인간을 유인원과 구별하는 대표적 신체적 특징은 두 발로 서서 걷는 것과 큰 뇌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 듀크대의 진화인류학자 허먼 폰처(Herman Pontzer) 교수가 이끄는 국제 공동연구진이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획득한 또 하나의 중요한 생리적 특성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지난 5일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인간은 신체 생리가 다른 유인원보다 물을 덜 쓰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우리 몸에서 일상적으로 물이 빠져나가고 들어오는 양을 측정한 결과 인간의 몸은 유인원들보다 물을 30~50% 덜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열량을 많이 소비하는 쪽으로 진화한 뇌와는 정반대 방향의 진화 흐름이다.

우리의 몸에서 물이 차지하는 비중(질량 기준)은 약 60%다. 비유하자면 우리 몸은 물을 60% 채운 욕조와 같다고 하겠다. 그 욕조에선 끊임없이 땀 구멍이나 호흡기관, 비뇨기관을 통해 물이 체외로 배출된다. 따라서 혈액과 다른 체액을 정상 범위 내에서 유지하려면 수분을 계속해서 공급해줘야 한다. 몸 속으로 들어오는 물과 빠져나가는 물이 똑같아야 몸의 생리 활동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몸은 체내의 수분이 빠져나가면 갈증을 유발해 물을 마셔 보충하도록 하고, 필요량보다 더 많은 물이 들어오면 몸 속의 신장이 오줌을 통해 물을 빼내주는 생리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몸에는 침팬지보다 10배나 많은 땀샘이 있다. 그래서 영장류보다 땀을 많이 흘린다. 인간이 땀을 흘리는 속도는 침팬지의 4~10배에 이른다. 심한 운동을 하거나 아주 더운 곳에 있을 경우 1시간 동안 흘리는 땀의 양이 2리터를 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물 소비량이 유인원들보다 더 많아야 한다.

더욱이 침팬지, 고릴라 같은 유인원들은 신체 활동량이 적다. 유인원들은 대개 하루 중 10~12시간은 쉬거나 먹는 데, 다른 10시간은 잠을 자는 데 쓰며, 나머지 약 2시간 동안만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인원들은 별도로 물을 마시기보다 식물을 통해 수분을 섭취한다. 듀크대 제공
유인원들은 별도로 물을 마시기보다 식물을 통해 수분을 섭취한다. 듀크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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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몸은 하루 평균 3리터 물 소비

인간은 과연 유인원보다 물을 많이 소비할까?

연구진은 인간과 유인원의 물 소비량을 정확하게 비교 분석하기 위해 두 집단의 물 회전율을 직접 측정했다. 인간의 물 회전율은 농민, 현대의 수렵채집 생활인, 사무직 노동자 등 신체 활동 유형이 다양한 5개 그룹 309명을 대상으로 측정했다. 유인원은 동물원과 열대우림 보호구역에 있는 유인원 4종(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 72마리를 선정해 측정했다.

물 회전율 측정에는 t신체의 총에너지소비량을 확인하는 데 사용하는 이중표지수(DLW)를 섞어 마시게 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이중표지수란 물 분자를 구성하는 수소와 산소를 각각 안정동위원소(수소는 중수소, 산소는 산소동위원소18)로 치환한 물이다. 이중표지수의 수소와 산소는 체내 대사과정을 거치며 몸 밖으로 배출되는 속도와 양이 달라지는데, 회전율은 이를 기반으로 계산한다.

그런데 연구진의 측정 결과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배치되는 결과가 나왔다. 사람(사무직 노동자 기준)은 하루에 평균 약 3리터의 물을 소비했다. 반면 동물원의 침팬지나 고릴라의 경우엔 사람보다 2배 더 많은 물을 소비했다.

전체적으로 유인원의 물 회전율은 섭취 식품 칼로리당 2.8ml로, 인간의 물 회전율은 칼로리당 1.5ml로 수렴했다. 연구진은 전통적으로 물을 많이 마시는 에콰도르의 한 시골마을 주민들의 경우에도 전체적인 물-에너지 비율은 1칼로리당 1.5ml로 다른 지역 사람들과 같았다고 밝혔다.

유인원 중에선 침팬지와 보노보가 가장 높은 물 회전율을 보였고 고릴라가 가장 낮았다. 특히 열대우림 보호구역의 유인원은 물을 따로 마시기보다는 음식을 통해 수분을 공급했다. 반면 동물원의 유인원은 공급받는 음식의 수분량이 부족해 하루 평균 2~5리터의 물을 따로 마셨다. 유인원이 사람보다 물을 덜 마시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유인원은 일상적으로 수분이 풍부한 식물을 섭취하기 때문이다. 따로 물을 마시지 않고도 최대 몇주를 보낼 수 있다.

사람 중에선 현대 수렵채집 공동체 사람들의 물 회전율이 가장 높았다. 농민 등 육체 노동자는 사무직 노동자보다 물 회전율이 높았지만 수렵채집인보다는 낮았다. 그러나 집단별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 실험그룹은 유인원에 비해 에너지당 물 소비 비율이 여전히 낮았다.

물 회전율은 에너지 소비량, 육체 활동, 기후(온도 및 습도), 제지방질량(지방을 제외한 질량)의 영향을 받는다. 연구진은 이같은 변수의 영향력을 제거해도 인간 신체는 유인원보다 물을 덜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엄마 젖의 칼로리 대비 물의 비율도 유인원의 젖보다 낮다.
엄마 젖의 칼로리 대비 물의 비율도 유인원의 젖보다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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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원보다 오똑한 코 구조도 물 재활용 전략

인간의 신체 생리는 왜 이런 방향으로 진화가 진행됐을까?

폰처 교수는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인류의 조상들이 먹거리를 찾아 개울이나 웅덩이에서 먼 곳까지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물 없는 환경에서 더 오래 버틸 수 있다면 이는 초기 인류가 당시 건조한 사바나 기후 환경에서 살아남는 데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연구진은 250만년 전에 시작된 홍적세 시대에 이런 일이 발생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물을 절약하는 인체의 생리학적 변화는 어떻게 일어났을까?

연구진은 우선 인체의 갈증 반응이 유인원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칼로리당 물을 덜 소비하도록 조정됐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예컨대 아기가 첫 이유식을 먹기 전 엄마 젖의 칼로리 대비 물의 비율은 유인원들의 젖보다 25% 낮다.

연구진이 제기한 또 다른 가능성은 우리의 코 구조에 있다. 연구진에 따르면 직립보행을 시작한 호모에렉투스 시절이었던 160만년 전 화석 증거를 보면, 인간의 코는 유인원보다 좀 더 오똑하다. 반면 고릴라와 침팬지의 코는 납작하다. 오똑한 콧구멍은 숨을 내쉬는 공기의 수증기를 냉각, 응축시켜 다시 체내로 흡수해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폰처 교수는 “아직 풀어야 할 미스터리가 있지만 인간이 물을 절약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며 “어떻게 해서 우리 몸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규명해내는 것이 다음 연구 과제”라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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