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비, 높은산, 깨끗한 공기의 절묘한 조합
뜨는 위치·모양 따라 표현 단어·문구 20여가지
뜨는 위치·모양 따라 표현 단어·문구 20여가지
하와이 호놀룰루항의 무지개. 하와이대 제공
마노아계곡에 낮게 깔린 무지개. 하와이말로 이런 무지개를 ‘우아코코’라고 부른다. 미 기상학회지
해가 40도 각도 이내 있어야…겨울엔 거의 종일 볼 수 있어 지면에서 무지개를 볼 수 있으려면 해가 약 40도 각도 이내에 떠 있어야 한다. 이는 빛의 굴절 각도 때문이다. 햇빛이 물방울에 부딪히면 원뿔형으로 굴절돼 방출된다. 그 각도가 42도다. 태양이 더 높이 뜰수록 무지개 높이는 점점 내려가 결국 사라진다. 따라서 무지개는 아침 일찍 또는 해질녘 직전 해의 반대편 쪽에서 가장 크고 선명한 모양을 띤다. 해가 낮게 뜨는 겨울에는 낮 시간에는 거의 언제나 무지개를 구경할 수 있다.
무지개를 활용한 하와이의 각종 디자인들. 미 기상학회지
한밤의 상·하 기온차가 만드는 아침 소나기 하와이에선 왜 그렇게 무지개가 유난히 자주 뜰까? 최근 하와이대마노아의 한 대기과학자가 하와이를 무지개 천국으로 만든 요인들을 분석해 미국 기상학회지 2월호에 발표했다. 논문 작성자인 스티븐 뷰싱어(Steven Businger) 교수에 따르면 첫번째 요인은 구름 상층부와 하층부의 기온차다. 한밤에 복사열이 우주로 빠져나가면서 구름 상층부는 급격히 차가와지는 반면 낮에 따뜻해진 바다에 면한 아래쪽 공기는 데워진다. 이로 인해 다음날 아침 시원한 소나기가 내리고, 무지개를 보면서 아침식사를 하는 호사를 누리게 해준다.
하와이 앞바다의 부서지는 파도 입자들이 만들어낸 무지개. 미 기상학회지
높게 솟아 오른 화산들이 만드는 비 뷰싱어 교수가 꼽은 두번째 요인은 하와이의 산들이다. 화산 활동으로 곳곳에 삐죽이 솟아 오른 산들이 습한 바람을 위로 밀어올려 구름을 형성하고 산 위에서 비를 만든다. 산이 없다면 하와이는 연간 강우량이 430mm에 불과한 사막같은 곳이 됐을 것이라고 뷰싱어 교수는 지적했다. 현재 하와이의 강우량은 연평균 1만2000mm로, 세계 두번째로 많다. 세번째 요인은 한낮 햇빛에 의해 따뜻해진 공기가 섬 일대를 순환하는 현상이다.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하와이의 산들은 높이가 높아서 바깥쪽에서 불어오는 무역풍을 차단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에 따라 바람이 강하지 않고 산-골짜기 사이의 공기순환도 안정돼 있다. 산을 방패막이로 삼아 따뜻한 공기가 산들바람을 타고 섬 일대를 순환한다. 이럴 때 한낮이 지난 오후에 산등성이에 소나기가 내리면 해가 질 무렵 무지개를 풍성하게 볼 수 있다.
하와이 쿨라우산맥 상공의 적운에서 내리는 비와 무지개. 미 기상학회지
흡습력 큰 에어로졸이 만드는 작은 비구름 네번째 요인은 에어로졸의 역할이다. 하와이는 미 대륙에서 3000km 이상 떨어져 있는 외딴섬이다.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을 통해 서방 세계에 하와이섬이 알려진 게 18세기 말이다. 육지에서 멀리 있다는 건 대기 오염 물질이나 대륙에서 날아온 먼지 등이 거의 없어 공기가 매우 깨끗하다는 걸 뜻한다. 따라서 에어로졸에 의한 햇빛 산란이 적어 태양이 낮게 떠 있을 때도 햇빛의 스펙트럼 전체를 구경할 수 있다. 하와이 하늘에 에어로졸을 뿌려주는 주된 공급원은 바다다. 부서지는 파도에서 소금 에어로졸이 형성되면 바람이 이를 위로 올려준다. 또 바다에서 나오는 천연가스의 입자 물질 전환 과정에서 미세한 황산염 입자도 만들어진다. 소금과 황산염 에어로졸은 물을 잘 빨아들이는 성질(흡습성)이 있어 다양한 크기의 구름 입자를 형성한다. 이 입자들은 기류를 타고 이동하다 구름 상층부에서 서로 응집하면서 비를 만든다. 그 결과 하와이에서는 소형 적운도 비를 뿌릴 수 있다. 이 작은 비구름은 산 뒤쪽에서 경사면을 타고 서서히 가라앉으며 소멸된다. 그 사이 비는 계속 내리고, 비가 그치고 난 뒤엔 일곱색깔 무지개가 파란 하늘에 수를 놓는다. 뷰싱어 교수는 지난해 앱 개발자와 함께 하와이의 현재 비, 구름 상황과 예보를 통해 무지개를 추적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RainbowChase)도 개발해 내놓았다. 현재는 하와이제도의 8개 주요 섬 가운데 주도 호놀룰루가 있는 오아후섬에 대한 정보만 있지만, 향후 대상 지역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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