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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노인의 삶은 과연 불건강한가?…건강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등록 2021-04-20 09:59수정 2021-04-20 10:25

김준혁의 의학과 서사(46)
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 답하며
휠체어경주자. 출처: 픽사베이
휠체어경주자. 출처: 픽사베이

최근 백신 반대 운동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면서 국내에서 있었던 관련 사례를 살펴야 했다. 2005년 즈음 국내에 백신 반대 운동 관련 서적이 번역, 소개되던 것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기는 어려웠고, 2005년에도 백신 반대 운동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사회에 이 운동이 처음 회자했던 것은 2017년,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카페가 문제가 되면서였다. ‘자연주의 치료’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괴롭히던 이들 중, 이끌던 이에겐 결국 유죄 판결이 내려졌고 따라가던 이들은 후회하게 되었다. 국내에서 백신 반대 운동에 관한 내용이 많이 퍼진 것의 진원지를 여기에서 살펴도 되지 싶다.

이 카페를 이끌던 모 의료인에 대해선 별다른 할 말이 없으며, 응당 대가를 치르길 바란다. 그러나 그를 따라가던 부모들은 어떤 이유에서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의 해결책을 따랐던 걸까. 아프다 해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그냥 낫기를 기다리던 마음에는 어떤 생각이 있었을까. 나는 이 일을 복기할 때마다, 한편으로 미안하다는 마음이 든다. 그 부모들이 나쁜 마음을 먹은 것이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위 또한,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왔을 것이다. 단지 현대 의료가 싫었던 것뿐이리라.

아니, 다시 말해야 한다. 그들은 현대 의료가 싫었던 게 아니라, 의사가 싫었던 거라고. 단지 그들이 만날 수 있는 의사가 현대 의료를 행했던 자들이고, 이 의사들에게 느낀 거부감에서 다른 의사를 찾았던 이들이 ‘자연주의’라는 말에 혹해서 그릇된 치료 방식을 따라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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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는 필요하지만 의사는 싫어요

나는 소아치과 전문의이자 의료윤리학자로서 ‘의료는 필요하지만 의사는 싫어요’라는 말에 어떻게든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말은 생각보다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장 백신 반대 운동을, 코로나19 대응에 관한 여러 지점을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이 글의 초점은 아니니 넘어가자. 여기에선 이 질문을 읽어낼 수 있었던 책, 여성, 평화, 장애 활동가 조한진희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가 던지는 질문들에 답해보려 한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는 투병기이자, 질병으로 인한 여러 경험과 생각을 적은 에세이다. 저자는 갑상선암, 빈혈, 현기증, 부정출혈, 골다공증 등 여러 증상을 겪고 그 경험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 기록은 투병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가 질병에 걸렸지만, (많은 도움으로) 완치하고 원래 생활로 돌아갔다”는 전통적인 서사를 따르지 않는다. 저자는 여전히 투병 중이다. 또는, 내 식대로 표현하면 병을 지내는 중이다. 몸이 어디가 어떻게 잘못인지 알 수 없기에, 현대 의학은 딱히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 병자는 어떻게든 병과 화해하며 지낼 뿐이다. 책은 그런 지냄, 삶의 기록이다.

조한진희 작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표지. 출처: 알라딘
조한진희 작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표지. 출처: 알라딘

잘 아플 권리, 즉 질병권(疾病權)을 주장하는 이 책 여기저기에도 ‘의사는 밉지만 의료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보인다. 그 미움은 보통 의사의 잘못에서 나온다. 이를테면, 자궁근종을 진단받는 과정에서 의사는 얼굴도 보지 않고 반말로 지시하고 나가버리고, 간호사는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의사와 병원 시스템은 시종일관 무례했다”는 당연한 반응은 뼈를 때린다. 때로 그것은 의사를 포함한 주변의 시선이 만드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환자에게 참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 안에서 저자는 “아픈 몸을 향한 간섭과 통제의 말은 또한 내 몸이 사회적 시선에 감금되는 몸”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환자와 질병을 대하는 의사와 사회의 태도가 변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오는 질문들에 반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당장 문제는 의사의 태도이고 내가 만나는 의사가 잘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더 큰 문제를 상대해야 한다. 여기에선 책이 던지는 질문 하나 답하면서, 진짜 적을 찾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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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건강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조한진희 작가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사회 활동을 하는 데 무리가 없는 상태”와 “질병이 없는 상태”라는 답에 도달하지만, 두 정의 다 이상하다고 말한다. 전자는 적절한 사회 활동의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고, 후자는 질병 없음이 꿈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작가는 질병으로 인한 불편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좋은 지적이지만, 좀 더 생각해보자. 건강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이 질병 없음을 넘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 상태라는 세계보건기구의 정의이다. 등장한 지 70년이 넘어가는 이 정의는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를 재건하던 시점에 필요한 외침이었다. 재건이란 당장 눈에 보이는 몸을 수리하는 데만 집중하기 마련이었으니까. 세계보건기구는 당장 건물부터 고치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건물만 짓는다고 다가 아니야, 라고 말한 셈이다.

이상적인 구호였지만, 문제는 너무 이상적이었다는 데에 있었다. 질병이 없는 것을 넘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런 삶은 사는 사람은 대체 지구상에 몇 명이나 될까? 세계보건기구의 건강은 목표로선 좋았지만, 현실에서 건강을 정의하고 그에 따른 정책 결정을 내리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후 여러 건강의 정의가 등장했다. 70년대 제시된 건강은 “종적 기능의 평균”이라는 정의가 대표적이다. 건강하다는 것은 몸이 나타내는 기능이 종(인간)의 평균 범위에 들어 있다는 의미다. 이런 정의는 우리가 혈압이 120/80mmHg, 공복 혈당이 70~110mg/dL면 건강하다고 말할 때 잘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정의는 건강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설명할 수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은 낮은 산소 수치에 적응하면서 혈중 적혈구 수가 적어진다. 그렇다면 이들은 빈혈인가? 또 많은 사람이 지닌 문제를 건강이라고 설명하게 된다(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아직 치약과 칫솔이 없고 치과가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 설탕을 즐기던 근대인에게 충치가 한두 개 있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면 충치가 있는 것은 건강한 것인가? 최근에는 이 건강 정의가 상정하는 ‘인간’이 사실 유럽의 비장애인 백인 남성이라는 점을 문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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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상태’에서 ‘능력’으로

최근에는 건강을 “도전에 적응하고 자기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이런 접근은 건강을 상태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건강을 어떤 상태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을 보아도, 건강은 질병이 없는 상태, 신체·정신·사회적 안녕 상태, 종적 기능의 평균 상태다. 하지만, 이런 정의들은 건강을 어느 하나로 고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놓치게 된다. 오히려, 건강하다고 말할 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상태가 아니라, 우리가 그를 통해 누리는 삶이다.

예컨대 노인의 건강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보통 노인이 만성 질병을 여러 개 달고 산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이전의 건강 정의에서 나온 생각이기도 하다. 노인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하지 않다, 노인은 종적 평균에서 벗어나 있다, 등등. 하지만 노인의 삶은 정말 불건강한가? 그런 생각이 오히려 우리 삶을 의학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시력은 1.0 이상이어야 하고, 치아는 28개여야 하며, 몸은 군살 없이 탄탄히 근육이 붙어 있어야만 건강한가? 더 중요한 것은, 이 몸을 가지고 내가 당면한 과제 또는 도전을 해결할 수 있는지에 있는 것은 아닐까.

프리다 칼로의 ‘부러진 척추’ (1944).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었으며, 교통사고로 철근이 몸을 관통하여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고, 아이를 유산하기도 했던 칼로에게 몸은 고통스러운 것이었으리라. 배경의 지진은 그의 몸 또한 가르고, 그 안 기둥과 몸을 뒤덮은 수많은 못으로 칼로는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의 강렬한 눈은 정면을 응시한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끌어안으라며 감상자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그런 칼로의 몸은 결코 건강하지 않지만, 그는 ‘건강’하다.
프리다 칼로의 ‘부러진 척추’ (1944).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었으며, 교통사고로 철근이 몸을 관통하여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고, 아이를 유산하기도 했던 칼로에게 몸은 고통스러운 것이었으리라. 배경의 지진은 그의 몸 또한 가르고, 그 안 기둥과 몸을 뒤덮은 수많은 못으로 칼로는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의 강렬한 눈은 정면을 응시한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끌어안으라며 감상자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그런 칼로의 몸은 결코 건강하지 않지만, 그는 ‘건강’하다.

옛말에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 했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우리가 지닌 불완전한 기술과 방법들을 통해 각자가 당면한 문제를 넘어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데에 시선을 돌려보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적어도 의학이 생의 모든 것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병원에서 처리된다고 하는 ‘사회의 의료화’는 덜어질 것이다. 환자와 의료인의 위치는 평등을 향하여 좀 더 나아갈 것이다. 적어도, 지금 우리의 관료제적 의학, 70년대 이후 국가의 산업화를 뒷받침하며 노동으로 고장난 몸을 일초라도 빨리 생산 현장으로 되돌려놓기 위해 초점이 맞춰진 기계적인 의학은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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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압력에 저항하기 위한 연대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읽는 일은 때로 불편하기도 하고 도전이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런 책이 나와주어서 무척이나 감사했다. 질환의 이야기는 보통 이 땅에서 잘 들리지 않는데, 그것은 그 목소리를 소외하고 낙인찍는 사회의 작동 방식 때문이기도 하고, 질병은 그저 빨리 없어져야 할 것으로 여기는 우리의 실용적 세계관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많은 의료인이 환자를 위하며, 환자와 함께 소중한 미래를 가꾸길 원한다고 믿는다. 그런 사람을 많이 만난 것 또한 감사할 일일 테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계는 녹록지 않으며 삶과 인간에 집중하기보다 당장의 직무에, 과정에, 권력에, 때로는 돈에 몰두하게 만든다. 의료인을 포함한 개인이 그런 거대한 힘에 저항하지 못하고 그저 끌려다니는 것으로 인해, 우리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마음에 미움을 가득 품을 때도 있다. 하지만 적은 의사가 아니다. 진짜 적은 질병 앞에서 인간이 서로 진심으로 만나지 못하게 하는 구조다.

맞다. 아픈 몸을 살아내기 위해 의료는 필요하지만, 그것을 직접 수행하는 의사가 미울 때는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나는 그럴 때 서로를 미워하기보다는 우리가 처한 구조적 모순, 거대한 압력에 저항하기 위해 환자와 의료인이 연대해야 한다고 믿는다. 단지 우리는 아직 그 방법을 모를 뿐이다. 아니, 혹시 누가 알겠는가. 이렇게 자신의 불편을 토로하는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될지(사실, 나는 그 안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김준혁/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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