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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 논란’ 네안데르탈인 두개골에 구멍 낸 진짜 범인 찾았다

등록 2021-05-11 10:03수정 2021-05-11 19:46

이탈리아 동굴서 5만~10만년전 유골 무더기 발견
식인풍습 논란 두개골 구멍 범인은 하이에나 추정
이탈리아 과타리동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화석화된 유골. 이탈리아 문화부 제공
이탈리아 과타리동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화석화된 유골. 이탈리아 문화부 제공

현생 인류의 사촌격이라 할 네안데르탈인은 나무 창, 뾰족한 돌 조각 등의 도구로 사냥 능력을 키웠지만, 자신보다 날쌔고 힘 좋은 맹수들의 위협 앞에서 힘겨운 생존 투쟁을 벌여야 했을 것이다. 그런 현장으로 볼 수 있는 유적이 발굴됐다. 과거 식인 풍습 논란을 일으켰던 네안데르탈인 두개골에 구멍을 낸 범인은 네안데르탈인이 아닌 하이에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들이 나왔다.

이탈리아 문화부는 로마에서 남동쪽으로 90㎞ 떨어져 있는 해안지대의 산 펠리체 치르체오(San Felice Circeo) 마을 인근 과타리동굴에서 하이에나에 희생돼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네안데르탈인 두개골 조각, 치아, 부러진 턱뼈 등 화석을 무더기로 발견했다고 8일 밝혔다.

이번에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유골 주인공은 모두 9명이다. 8명은 5만~6만8천년 전, 나머지 1명은 9만~10만년 전 것으로 추정됐다. 발굴팀은 9명 가운데 7명은 남성, 1명은 여성, 나머지 1명은 어린 소년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들과 함께 오래 전에 멸종된 하이에나종과 코끼리, 코뿔소, 그리고 오늘날 소의 조상인 우루스 등의 뼈도 발견됐다.

과타리 동굴 내부.
과타리 동굴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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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놀이에 큰 구멍…1939년 발굴된 것과 유사

이 동굴은 1939년 네안데르탈인 두개골이 아주 잘 보존된 상태로 발견돼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그런데 이 두개골에는 관자놀이 부위에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당시 이 두개골을 살펴본 고생물학자 알베르토 카를로 블랑크 박사는 네안데르탈인이 식인 풍습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그 바람에 이 동굴도 유명세를 더하게 됐다.

발굴 작업은 1950년대 이후 중단됐다가 2019년 10월 다시 시작됐다. 이번 발굴 작업 최대 성과는 지금은 멸종된 옛 하이에나에 잡아먹힌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 뼈 수백개가 발견됐다는 점이다. 빙하시대에 유럽에서 번성했던 동굴 하이에나는 오늘날의 하이에나보다 훨씬 덩치가 커, 몸무게가 100㎏이나 됐다.

지금은 멸종된 빙하시대 유럽의 동굴 하이에나 재현품. 오늘날의 하이에나보다 덩치가 훨씬 크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금은 멸종된 빙하시대 유럽의 동굴 하이에나 재현품. 오늘날의 하이에나보다 덩치가 훨씬 크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마리오 롤포 로마토르베르가타대 교수(선사고고학)는 하이에나는 네안데르탈인도 먹잇감으로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요한 추정 근거는 두개골에 난 구멍이다. 그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 유골 중 한 두개골에 1939년 발견된 두개골과 비슷한 구멍이 있다. 이는 블랑크 박사의 식인풍습 가설을 잠재우는 명확한 증거라고 그는 강조했다. 롤포 교수는 “하이에나는 뼈를 우적우적 씹기를 좋아한다”며 하이에나가 아마도 두개골 속을 파먹기 위해 구멍을 낸 것같다고 설명했다.

하이에나는 병약하거나 나이 든 표적을 주로 사냥한다. 발굴팀은 하이에나가 네안데르탈인들을 살해한 뒤 동굴로 끌고 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했다. 롤포 교수는 그러나 다른 원인으로 사망한 네안데르탈인 시신을 먹잇감으로 삼은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렬해 놓은 네안데르탈인 유골들.
정렬해 놓은 네안데르탈인 유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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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년 전 산사태가 유골 보존에 좋은 환경 조성

어쨌든 이번 발굴로 이 지역이 네안데르탈인 집단 거주지였다는 사실만큼은 확인된 셈이다. 다리오 프란체스키니 이탈리아 문화부장관은 이번 발굴은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연구를 풍성하게 해주는 특별한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발굴팀은 이번에 유골이 대거 발견됨에 따라 네안데르탈인 생활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 지역 인류학자 마우로 루비니는 <뉴욕타임스>에 “인간의 뼈는 나이, 성별, 키, 게놈, 질병 유무는 물론 뭘 먹었는지, 얼마나 걸어다녔는지, 얼마나 재밌게 놀았는지까지 말해주는 강력한 기록보관소”라고 말했다. 치석을 조사한 결과 이 동굴의 네안데르탈인들은 주로 곡물을 섭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네안데르탈인이 유럽에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존재했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현재로선 40만년 전 출현해 약 4만년 전까지 번성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네안데르탈인 유골은 유럽과 서아시아 일대에서 발견된다.

과타리 동굴은 5만년 전 지진 여파로 일어난 산사태로 동굴 입구가 막히는 바람에 유골들이 특히 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80년 전 과타리호텔 인부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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