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주의 제지회사 컬럼비아펄프. 밀짚으로 펄프를 만드는 최초의 회사다. 컬럼비아펄프 제공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위기를 맞은 지구를 구하려는 묘안으로 나무 대신 밀짚을 이용해 종이를 생산하는 회사가 생겨났다. 녹조를 일으키는 조류로 3D 프린팅해 옷감을 만드는 기술도 나왔다.
미국 북서부 워싱턴주에 있는 더글러스펄(미송)과 미국솔송나무, 시트카가문비나무숲은 탄소흡수 효율이 높은 세계적 생태계로 이름 나 있다. 이들 숲은 워싱턴주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35%를 흡수하며, 숲의 가치는 2018년 1억2400만달러(1400여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워싱턴에 있는 제지업체인 컬럼비아펄프는 나무로 종이원료인 펄프를 생산하는 대신 밀짚을 이용해 펄프를 만드는 새로운 공정에 도전하고 있다. 북미에서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종이를 생산하는 첫번째 회사다. 워싱턴주는 밀 경작 면적이 9천㎢(220만에이커)에 이르는, 미국에서 세번째로 큰 밀 재배지다. 워싱턴주에서 한 해 폐기물로 처리되는 밀짚만 24만톤에 이른다.
미국 워싱턴주는 국내에서 세번째로 큰 밀 재배지이다. 플리커 제공(Keith Ewing 촬영)
이집트인들, 짚의 일종인 파피루스로 종이 만들어
이집트인들이 처음 만든 종이는 밀짚처럼 생긴 파피루스가 재료였다. 하지만 짚은 큰 종이를 대량생산하는 원료로 적당하지 않았다. 펄프를 만들 수 있는 셀루로스는 3분의 2 정도이고 나머지는 다른 물질인 데다, 이 잔여물질을 제거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 비경제적이었다. 워싱턴주립대 연구팀은 나무 펄프 제조 때보다 물과 화학물질 사용을 90% 이상 줄인 ‘피닉스 공법’이라는 밀짚 펄프 제조법을 개발했다. 잔여물질을 비료나 결빙방지제 등에 쓰일 수 있는 무독성 바이오폴리머로 만드는 공법이다.
컬럼비아펄프는 “피닉스 공법으로 펄프를 생산하면 나무를 사용하는 기존 공정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76%나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공정 자체에 의한 감축도 있지만 무엇보다 종이를 생산하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지 않는 점이 가장 크게 기여하는 부분이다. 회사 쪽은 “14만톤의 기존 공법 펄프를 새로운 공정으로 생산하면 연간 13만3천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이는 580만 그루의 나무가 흡수하는 양”이라고 밝혔다.
미국 로체스터대 안느 메이어 교수 실험실에서 3D 프린터와 조류를 이용한 바이오 잉크 기술로 만든 광합성 생물 재료로 제조한 미니 티셔츠. 로체스터대 제공
한편 미국 로체스터대와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공동연구팀은 3D 프린터를 사용하는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이용하고 조류(말)를 잉크 삼아 옷감을 만드는 공정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박테리아(세균)가 배설한 유기화합물인 세균성 섬유소(셀루로스)를 틀로 이용했다. 세균성 섬유소는 유연성, 인성, 강도, 뒤틀리거나 부서지는 등 물리적 왜곡이 일어난 뒤 원상태로 회복되는 능력 등 다양하고 독특한 구조적 특성을 갖고 있다. 연구팀은 ‘죽은’ 세균성 섬유소를 프린터의 종이처럼 사용하고, ‘살아 있는’ 미세조류는 잉크처럼 썼다. 연구팀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살아 있는 조류를 세균성 섬유소에 증착했다.
광합성 생물 재료로 만든 미니 티셔츠는 접거나 찌그러뜨리고 비틀어도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는 탄력성과 강도를 지녔다. ‘어드밴스트 펑셔널 머티리얼스’ 제공
두 요소의 결합으로 조류의 광합성과 세균성 섬유소의 견고함을 지닌 독특한 재료가 탄생했다. 친환경적이고, 생분해가 가능하며 생산하기에 단순하고 쉽게 규모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재료가 식물과 비슷하다는 것은 몇 주 동안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먹이를 제공한다는 것을 뜻한다. 또 복제가 가능해 소량의 재료 샘플을 현장에서 재배하면 더 많은 재료를 만들 수 있다. 연구팀 논문은 세계적 재료 및 응용분야 학술지 <어드밴스트 펑셔널 머티리얼스>(AFM)에 실렸다.(DOI :
10.1002/adfm.20201116)
조류로 만든 바이오 옷감. 이산화탄소를 공급해주면 저절로 광합성 생물 재료가 만들어진다. ‘어드밴스트 펑셔널 머티리얼스’ 제공
논문 제1저자인 스리칸트 발라수브라마니안 델프트공대 박사후과정 연구원은 “새로운 재료로 인조 잎이나 광합성 옷감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인조 잎은 햇빛을 받아 물과 이산화탄소로 산소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실제 잎을 모사한 것으로, 광합성을 하는 동안 식물 잎보다 더 많은 산소와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잎은 설탕 등 화학물질 형태로 에너지를 저장하는데, 이는 연료로 변환할 수 있다. 인조 잎은 우주 거주지 등 식물들이 잘 자라지 못하는 환경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수단이 된다. 무엇보다 인조 잎은 친환경 물질로 만들어졌다.
이 재료는 의류업 부문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연구팀은 주장한다. 논문 공저자인 로체스터대 안느 메이어 교수는 “조류로 만든 바이오 의류는 지속가능성과 완벽한 생분해성을 지닌 고품질의 섬유라는 점에서
현재 의류산업이 일으키는 반환경적 비용을 극복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광합성을 통해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제거함과 동시에 전통적인 의류와 달리 세탁할 필요가 없어 물 사용을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연구팀의 마리이브 오빈탐 델프트공대 교수는 “바이오 재료들은 물이나 영양소 없이도 며칠 동안 살아 있고 스스로 새로운 바이오 재료를 만들어내는 씨앗으로 사용될 수 있다. 먼 우주에서도 현장에서 바로 파종할 수 있다”고 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