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연구팀 초파리 연구로 규명 배부르면 ‘피에조 채널’ 작동해 신호 영양분 농도 높아도 ‘동작그만’ 알려
국내 연구진이 동물들이 과도한 음식 섭취를 자제하는 생리적인 원리를 찾아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국내 연구진이 인간과 달리 동물들이 ‘배가 터지도록’ 과식을 하지 않는 원리를 밝혀냈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은 15일 “생명과학과 서성배 교수 연구팀이 초파리 연구를 통해 동물들이 압력에 작동하는 ‘피에조 채널’이라는 물리적 방식과 영양분 농도를 감지하는 화학적 방식 등의 복합 작용으로 신경세포 활성을 조절해 과도한 식이 섭취를 자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2008년부터 뉴욕대(의대) 교수를 지냈으며, 2015년부터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뉴욕대 재직 당시 발견한 신경세포(DH44+)의 기능에 대한 후속연구로, 카이스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뉴욕대 박사후연구원으로 가 있는 오양균 연구원과 공동으로 진행했다.
동물의 뇌 속에는 미각 신경이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해온 영양분 감지 신경세포들이 있다. 디에이치44 신경세포가 활성화하면 초파리는 식사량을 증가시키지만, 배가 부른 상태 곧 몸 안에 당도가 높은 상황에서는 디에이치44 활성화를 억제하는 신호를 통해 음식물 과잉 섭취를 막는다는 것을 연구팀은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 신호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여러 말단 장기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갔다. 연구팀은 초파리의 위에 해당하는 내장 부위와 척수에 해당하는 복부 신경중추에서 디에이치44 억제 신호가 발생하는 것을 찾아냈다. 내장 부위에서는 물리적인 신호를, 복부 신경중추에서는 화학적 신호를 발견했다.
초파리 디에이치44(DH44) 신경세포의 두 가지 억제 신호에 대한 모식도. 음식물을 먹어 초파리 내장기관이 팽창하면 활성화되는 ‘피에조 채널’과 몸 속 영양분이 증가하면 이를 감지해 활성화하는 ‘후긴’ 신경세포는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디에이치44 신경세포의 활성을 억제한다. 카이스트 제공
신호 발생 과정을 분석해보니 디에이치44 신경세포가 내장 기관에 신경 가지를 뻗어, 기관에 음식물이 차서 팽창하는 신호를 물리적으로 인지했다. 이 인지를 담당하는 것이 ‘피에조 채널’이다. 피에조 채널은 압력을 받으면 전기신호가 발생하는 센서로, 포유동물의 호흡이나 혈액 조절 등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
피에조 채널이 음식물로 초파리 위가 채워져 팽창한 것을 감지하면 신호가 발생해 디에이치44 신경세포의 기능을 억제한다. 이 신호가 초파리의 탄수화물 섭취를 막음으로써 과도한 섭식으로 인한 내장 기관의 물리적 팽창을 보호한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피에조 채널에 오작동이 생기면 모기가 인간의 피를 끝없이 빨아먹다 배가 터져버린다.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대의 페란 로즈 연구팀은 실제로 모기가 사람 피를 빨아먹다 배가 터지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또 초파리의 복부 신경중추에 있는 ‘후긴’ 신경세포는 몸 안의 영양분 농도가 높으면 이를 감지해 디에이치44 신경세포들의 활성을 억제하는 구실을 했다. 이런 작용을 통해 체내 에너지가 높은 상태에서는 소화기관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추가 섭식 행동을 차단한다는 것을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서성배 교수(왼쪽)와 뉴욕대 오양균 연구원. 카이스트 제공
서 교수는 “과식에 대한 억제는 독립적으로 인지되는 물리적, 화학적 척도를 종합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할 만큼 동물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으로 보여준 연구로, 인간의 식이장애와 비만 예방 연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초 연구”라고 소개했다. 연구팀 성과는 유명 학술지 <뉴런> 5월19일치에 실렸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