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뒤로 젖히며 걷는 방식…에너지 소모량 낮아 스프링·도르래 결합해 구현…에너지 효율 4배로
타조 보행 방식을 본따 만든 2족보행 로봇 ‘버드봇’. 막스플랑크연구소제공
로봇 개발자들이 기술 개발이 까다로운 인간형 로봇을 굳이 만드는 주된 이유는 우리의 생활 환경이 인간을 중심으로 편제돼 있기 때문이다.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어야 사람을 도와 일하는 데 유리하다.
인간형 로봇의 핵심 기술 가운데 하나가 두 발로 이동하기다. 보행 로봇은 계단이나 울퉁불퉁한 지형도 바퀴 로봇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보행을 모델로 한 2족 보행 로봇은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다리를 움직이는 데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두 발로 걷는 새가 2족 보행 로봇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독일 막스플랑크지능시스템연구소와 미국 어바인캘리포니아대(UCI) 연구진이 타조를 모델로 삼아 에너지 효율이 훨씬 좋은 2족 보행 로봇 ‘버드봇’(BirdBot)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발표했다.
타조는 몸무게가 100kg을 넘는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초원에서 최대 시속 55km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 연구진은 타조의 뛰어난 운동 능력의 비밀이 특별한 다리 구조에 있을 것으로 보고 분석에 들어갔다.
새는 이동을 위해 다리를 들어올릴 때 발을 뒤로 젖힌다. 날지 못하는 새 타조도 마찬가지다. 반면 사람의 발과 발가락은 땅바닥에 있을 때나 들어올릴 때나 항상 앞을 향하고 있다. 연구진은 여기에 사뿐사뿐하게 걷는 새의 이동 비결이 숨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타조와 버드봇의 보행 방식, 버드봇의 다리 구조. 동영상 갈무리
어떻게 하면 새의 보행 방식을 로봇에 적용할 수 있을까? 이런 화두로 5년간을 매달린 끝에 연구진은 새의 독특한 다리 접기의 핵심은 신경이나 근육, 전기자극이 아니라 다리에서 발에 이르는 여러 관절이 하나의 기계적 시스템으로 결합돼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진은 이에 착안해 이 시스템을 적용한 로봇 다리 구조를 고안해냈다. 발에 모터를 다는 대신 스프링과 연결선으로 이뤄진 관절을 만들고, 도르래를 이용해 관절과 관절 사이를 연결시켰다.
모터는 고관절과 무릎 두 곳에만 달았다. 고관절 모터는 다리를 앞뒤로 움직여 주는 역할을, 좀 더 작은 무릎 모터는 다리를 들어올려 구부려 주는 역할을 한다.
러닝머신에서 보행 연습을 하고 있는 버드봇.
다리 길게 만들면 몇톤 무게도 견딘다
그런 다음 조립한 로봇 다리를 러닝머신에서 걸어보게 하고 관찰했다.
그 결과 명확한 장점이 드러났다. 버드봇은 다리를 땅에 디딘 상태에서는 발과 다리 관절에 힘을 전해줄 액추에이터(동력장치)가 필요 없었다. 스프링이 힘줄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레 관절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앞뒤로 움직이는 동작에서는 발과 다리를 잇는 스프링(힘줄)이 풀리면서 타조처럼 발이 뒤로 접혔다. 엉덩이에서 무릎과 발까지 이어지는 다리가 전체적으로 하나의 긴 스프링처럼 작동해 에너지 소비량을 줄여줬다.
연구진은 종전엔 서 있을 때나 보행을 위해 다리를 들어올릴 때 다리가 바닥에 부딪히지 않도록 모터를 작동시켜야 했으나 버드봇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고 밝혔다. 모터를 제때 작동시키려면 센서와 제어장치도 필요하다. 이에 따라 새 로봇에 필요한 에너지는 이전 보행 로봇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연구진은 “이렇게 튼튼하고 빠르고 효율적인 구조 덕분에 타조처럼 덩치가 크고 무거운 새도 빠르게 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버드봇은 대형 로봇 개발에도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진에 따르면 버드봇과 같은 구조의 다리를 1미터 이상 길게 만들면 이론상 무게가 몇톤이나 되는 로봇도 큰 힘 들이지 않고 움직이게 할 수 있다.
공룡 시대 이후 오랜 세월 진화를 거듭하며 체화한 새의 고효율 2족 보행 기술이 그보다 훨씬 짧은 역사를 가진 인간의 2족 보행 기술에 한 수 가르쳐준 셈이다.
앞으로 에스에프(SF)에 등장할 인간형 미래 로봇은 타조처럼 걷고 달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