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m 24초’ 2족 로봇 첫 기네스 등재 초속 4m…마라톤 3시간에 완주할 속도 타조 보행 방식에서 아이디어 얻어 개발
100미터 달리기 기네스 기록에 도전하고 있는 2족보행 로봇 ‘캐시’. 오리건주립대 제공
현재 100미터 달리기 세계 기록은 2009년 우사인 볼트가 세운 9.58초다. 시간 단위로 환산하면 시속 37km의 속도다.
로봇은 얼마나 빨리 달릴까? SF영화에선 자동차까지도 따라잡는 빠른 로봇이 등장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두발 달린 로봇의 이동 속도는 기껏해야 빠른 걸음이나 구보를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현대차 계열에 편입된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대표적인 휴머노이드로봇 아틀라스의 이동 속도는 초속 2.5미터다. 시속 9km로 조깅을 하는 정도의 속도다.
일본 혼다가 2000년에 개발해 큰 인기를 끌다 2018년 은퇴한 휴머노이드로봇 아시모의 걸음 속도는 시속 3.7km였다. 2011년엔 미시간대 연구진이 초속 3미터까지 달릴 수 있는 2족 로봇 메이블을 선보였으나 실험실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처음으로 야외 지형에서 명실상부하게 ‘달린다’고 할 수 있는 이동 능력을 보유한 2족 로봇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미국 오리건주립대 공대 로봇공학자들이 설립한 애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의 2족 보행 로봇 캐시(Cassie)다.
애질리티 로보틱스는 캐시가 지난 5월 실시한 기록 측정에서 100미터를 24.73초에 주파해 ‘가장 빨리 100m를 달리는 2족 로봇’으로 세계 기네스 기록에 등재됐다고 27일 밝혔다. 이는 초속 4미터, 시속 14km의 속도에 해당한다.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에 완주할 수 있는 속도다. 선수급 실력은 안 되지만 일반 성인의 달리기 수준은 충분히 따라잡은 셈이다.
캐시의 기록은 실제 100미터 달리기처럼 선 자세에서 출발하는 순간 측정을 시작했다. 기네스 기록을 인정받으려면 달리고 난 뒤 넘어져서도 안되는데, 캐시는 이 조건도 충족했다.
캐시는 타조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했다. 오리건주립대 제공
달리기보다 출발·멈춤이 더 어려워
공개된 동영상을 보면 캐시는 타조처럼 무릎을 구부린 상태에서 직립 상태를 유지하며 겅중겅중 뛰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달렸다. 실제 캐시는 타조의 걸음걸이 방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개발됐다.
고등방위계획국(다르파)의 개발 지원을 받아 2017년 첫선을 보인 캐시는 지난해 한 번 충전으로 5km를 53분에 주파하는 기록을 세운 바 있다. 당시엔 초속 약 1.6미터의 속도였다.
지난해 달리기에서 안정성과 내구성을 확인하는 데 중점을 뒀던 연구진은 올해 달리기에선 속도에 초점을 맞췄다.
연구진은 100미터 달리기를 위해 ‘병렬화’(parallelization)라는 컴퓨터 기술을 이용해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1년 동안 훈련받을 양을 1주일로 압축해 집중훈련시켰다.
연구진은 “캐시는 다양한 걸음걸이를 실행할 수 있지만 이 훈련을 통해 여러 속도별로 가장 효율적인 걸음걸이를 찾아냈다”며 “그 결과 인간의 생체 역학과 매우 비슷한 형태로 달리게 됐다”고 밝혔다.
100미터 달리기의 가장 큰 고비는 달리는 것보다는 안정적 자세로 출발하고 멈추는 것이었다. 비행기에서 활공보다 이착륙이 어렵듯 달리기 로봇도 선 자세에서 안정적으로 출발해 넘어지지 않고 다시 멈춰서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캐시는 이 고비를 훌륭히 넘었다. 다만 캐시가 코스를 스스로 조절하며 달린 건 아니다. 캐시엔 카메라나 센서가 없으며 리모컨으로 작동한다.
이 회사 공동창업자이기도 한 조너선 허스트 오리건주립대 교수는 “캐시는 달리기를 배운 최초의 2족 보행 로봇일 수는 있어도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며 “지금부터 발전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