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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기술

땅속에서 ‘골드 수소’를 캔다…더는 “미친 소리”가 아니다

등록 2023-03-06 10:02수정 2023-03-07 09:15

온실가스 배출하지 않는 청정 에너지
인류 수천년 쓸 수 있는 양 매장 추정
미국·호주·스페인 등서 잇단 탐사·시추
튀르키예 안탈리아주의 키메라산 불구멍. 땅속에서 스며나오는 가스의 10%가 수소다. 위키미디어코먼스
튀르키예 안탈리아주의 키메라산 불구멍. 땅속에서 스며나오는 가스의 10%가 수소다. 위키미디어코먼스

튀르키예 남서부 안탈리아주의 인기 여행지 가운데 하나인 키메라산은 지하에서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가스로 인해 불꽃이 꺼지지 않는 불구멍(야날타쉬)으로 유명하다. 가스의 주성분은 메탄이지만 10%가량은 수소다.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먼저 생긴, 우주에서 가장 작고 가장 많은 무색무취의 물질이다. 수소 분자는 비슷한 양의 디젤이나 휘발유보다 약 4배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명실상부한 청정연료다. 기후위기 해법의 돌파구를 찾고 있는 인류가 수소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이유다.

그러나 수소를 어떻게 얻느냐에 따라 청정의 정도가 달라진다. 화석연료에서 얻는 수소는 그 과정에서 많은 탄소 배출이 불가피하다. 이를 그레이수소라고 부른다. 천연가스(메탄)를 고온·고압에서 수증기와 반응시켜 수소를 추출하는 개질수소, 석유화학이나 철강 공정 등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부생수소가 그레이수소에 해당한다.

그레이수소 생산 과정에서 배출한 탄소를 포집·저장하면 탄소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를 블루수소라고 한다. 하지만 탄소 포집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석탄이나 갈탄을 고온고압에서 가스화해 추출하는 블랙(또는 브라운)수소도 있다.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방식이다.

유일하게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방법은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얻는 경우다. 이를 그린수소라고 한다. 그러나 그린수소를 얻기 위해서도 여전히 다른 많은 자원과 비용을 많이 투입해야 한다. 생산비용이 그레이수소의 두배가 넘는다.

수소는 이미 석유 정제, 비료용 암모니아 생산, 메탄올 생산 공정 등에 널리 쓰이고 있다. 2021년 소비량이 9400만톤에 이른다. 그러나 대부분 화석연료를 이용해 생산한 수소다. 이 과정에서 약 9억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세계 항공산업의 배출량과 맞먹는 양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수소 수요가 2030년까지 1억3천만톤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아프리카 말리의 천연수소 시추시설. 하이드로마 제공
아프리카 말리의 천연수소 시추시설. 하이드로마 제공

“처음 들었을 땐 미친 소리라 생각”

이에 따라 자연 속에 숨겨져 있는 ‘화이트수소’를 찾아내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수소를 석유, 석탄같은 1차에너지원처럼 자연에서 직접 채취해 쓰기 위해서다.

지구 지각에 갇혀 있는 천연수소는 100% 청정에너지원인데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얻을 수 있다. 일부에서 땅속에서 금을 캐는 것에 비유해 ‘골드수소’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단 천연수소의 잠재력은 충분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2022년 10월 미국지질학회 연례회의에서, 석유산업에 적용한 모델을 이용해 추정한 결과 지구 지각에는 수조톤의 수소가 있을 수 있으며 그 중 10%만 사용해도 현재 소비량을 전제로 수천년 동안 쓸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지질조사국은 장기적으로 천연수소의 생성량이 연간 수억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에너지고등연구계획국(ARPA-E)에서 방문연구원을 했던 재료과학자 에밀리 예디낙은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처음 들었을 때는 미친 소리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보고서를 읽을수록 과학적 근거가 탄탄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앞서 내추럴하이드로젠에너지의 비아체슬라프 즈고닉 박사는 2020년 ‘지구과학리뷰’에 발표한 논문에서 천연수소의 연간 발생량을 2300만톤으로 추정한 바 있다.

천연수소가 처음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1987년이었다. 당시 서아프리카 말리의 수도 바마코에서 60km 떨어져 있는 한 마을에서 우물을 파던 중 깊이 108m 지점에서 가스가 새어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가스의 정체가 수소로 확인되자 폭발 우려로 시추공은 매립되고 이내 잊혀지고 말았다. 그러다 2007년 말리 출신 사업가 알리우 디알로가 이끄는 석유가스업체 페트로마(현 하이드로마)가 이 지역 자원탐사권을 획득하면서 수소는 다시 기회를 잡았다.

하이드로마는 2012년 이 지역의 수소가 순도 98%나 된다는 걸 확인한 데 이어 2018년 국제수소에너지저널에 “천연수소 가스 개발 가격이 화석 연료 또는 전기 분해로 제조된 수소보다 훨씬 저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처음으로 천연수소의 경제성을 확인한 연구였다. 이를 계기로 천연수소에 관한 연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사이언스’는 전했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해 여러나라에서 수십여개의 신생기업이 수소 탐사에 뛰어든 상태다. 미국석유지질학회도 지난해 천연수소위원회를 구성했고, 미국지질조사국은 미국내 수소 생산 유망 지역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화석연료보다 생성기간 훨씬 짧아

천연수소는 화석연료에 비해 생성기간이 훨씬 짧다는 것도 장점이다.

유기물이 땅에 퇴적해 석유와 가스로 변하는 데는 수백만년이 걸린다. 반면 천연수소는 지하수가 높은 온도와 압력에서 철 광물과 반응하면서 상시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말리 수소 사업에 참여했던 브라질 지질학자 알랭 프린츠호퍼에 따르면 2011년부터 말리에서 천연수소를 시험적으로 채굴해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10년 동안 생산량이 줄어들지 않았다.

자원탐사업계는 왜 그동안 수소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하나의 이유는 유전이 있는 퇴적암층에는 온전한 상태의 수소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맨틀 내의 암석에 있는 탄소 분자는 고온고압 조건에서 수소와 쉽사리 결합해 탄화수소를 만든다. 또 암석의 산소와 반응해 물을 만들거나 이산화탄소와 결합해 메탄을 생성할 수도 있다. 수소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분자라서 조그만 틈만 있어도 빠져나가기 때문에 한 곳에 모여 있기도 어렵다. 수소가 목표가 아니니 수소가 얼마나 있는지 신경을 쓰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천연수소 생성의 3가지 경로

과학자들이 추정하는 첫번째 수소 공급원은 맨틀 상부에 널리 분포돼 있는 감람석이다. 철 성분이 풍부한 감람석이 고온에서 물과 반응해 사문석이 되는 과정에서 수소가 만들어진다. 철이 물 분자로부터 산소 원자를 빼앗고 수소를 방출한다.

과학자들은 실제로 북극해에서 아프리카 최남단을 잇는 대서양 중앙 해령에서 이 장면을 목격했다. 해저화산이 밀집돼 있는 중앙해령에선 지각판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과정에서 맨틀 암석이 솟아오르면서 새로운 해저 지각이 만들어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 가운데 로스트 시티(Lost City)라는 열수분출 지역에서 해저로부터 솟는 다량의 수소를 확인했다. 이 해령에 닿아 있는 아이슬랜드의 지열 발전소에서도 비슷한 함량의 수소가 분출됐다.

과학자들이 더 주목하는 것은 고대 대륙의 중핵부를 이루는 대륙괴(craton)다.

대륙괴 안에는 철분이 풍부한 암석지대, 이른바 그린스톤벨트가 있다. 먼 옛날 대륙 충돌 과정에서 압착된 해양지각의 산물이 그린스톤벨트다. 이곳에 있는 200도 이상 고온의 감람석을 비롯한 광물은 지표면에서 스며들어오는 물과 반응해 수소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프리카 말리의 수소도 서아프리카 대륙괴의 그린스톤벨트에서 나오는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우라늄, 토륨 같은 지각의 방사성 원소가 붕괴하면서 지하의 물 분자를 쪼개 수소를 생성할 수도 있다. 2014년 캐나다 토론토대 바바라 셔우드 롤라 교수(지질학)는 ‘네이처’에 지구 수소의 80%는 사문석화 과정에서, 나머지 20%는 방사선분해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일부 과학자는 지구의 핵이 수소의 공급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핵에 갇혀 있는 수소가 수천km의 암석을 거쳐 지표면까지 올라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아직까지는 가설이다.

미국 네브라스카주 내추럴하이드로젠에너지의 천연수소 시추기. Natural Hydrogen Energy
미국 네브라스카주 내추럴하이드로젠에너지의 천연수소 시추기. Natural Hydrogen Energy

남호주서 올해 3분기에 첫 시추

‘사이언스’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천연수소를 발견했다는 기록은 수백개에 이른다.

미국 동부 캐롤라이나만, 브라질, 나미비아, 오스트레일리아에선 원형 함몰부(fairy circles) 지형에서 천연수소가 확인됐다.

남호주에선 이미 천연수소 시추 붐이 시작됐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신생기업 골드하이드로젠은 올해 3분기에 첫 천연수소 시추에 나설 계획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남호주 지역 시추를 통해 최대 500미터 깊이에서 순도 80%의 천연수소를 확인했다.

스페인의 헬리오스 아라곤이란 회사는 피레네산맥 중심부에 있는 고대 해양 암석에 수소가 저장돼 있을 것으로 보고, 2024년 후반 시추를 계획하고 있다.

2019년 미국에선 처음으로 천연수소 시추공을 뚫었던 내추럴하이드로젠에너지의 비아체슬라브 즈고닉 대표는 “이제 시작 단계이지만 앞으로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동부해안의 해저 10km 깊이 맨틀 암석층과, 미네소타에서 캔자스에 이르는 중서부 일대의 맨틀 암석층을 수소 저장소로 보고 있다. 휴스턴의 셈비타 팩토리란 회사는 버려진 유전에서 미생물을 이용한 수소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아프리카 말리에선 30개 유정을 시추한 결과 적어도 500만톤이 땅속에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하이드로마는 천연수소가 서아프리카지역에 번영을 가져다 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천연수소 매장지 가운데 하나인 브라질 상프란시스쿠분지의 ‘페어리서클’. 페어리서클엔 초목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ALAIN PRINZHOFER/사이언스에서 인용
천연수소 매장지 가운데 하나인 브라질 상프란시스쿠분지의 ‘페어리서클’. 페어리서클엔 초목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ALAIN PRINZHOFER/사이언스에서 인용

160년 전의 오일러시 재현?

일부에선 말리에서의 천연수소 가스 발견을 164년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타이터스빌의 유전 개발에 비유한다.

당시까지만 해도 석유는 지표면으로 스며나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1859년 에드윈 드레이크는 이곳에서 시추공을 이용한 새로운 석유 생산 방법을 개척했다. 시추공으로 21미터 깊이 땅속에서 석유층을 찾아냈다.

이후 미국에선 오일러시가 일어났다. 스위스 베른대의 에릭 고셔 교수(지구화학)는 ‘사이언스’에 “수소도 그런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개념과 도구와 지질학은 이미 확보했으며 투자자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천연수소가 석탄, 석유를 잇는 에너지원이 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땅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천연수소의 생성 메카니즘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세계 석유 대기업들도 관망 중이다. 프랑스의 그르노블알프스대의 프레데릭-빅토르 돈제 교수(지구물리학)는 ‘사이언스’에 “과학적 사실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과대포장 가능성을 경계했다.

에너지원으로서 무시못할 단점도 있다. 수소 1kg을 담으려면 레미콘 트럭보다 더 큰 저장 공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를 압축해 저장하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

에스에프(SF)작가 쥘 베른은 1874년에 발표한 ‘신비의 섬’에서 “언젠가는 물이 연료로 쓰여, 물을 구성하는 수소와 산소가 단독으로 또는 함께 열과 빛의 무한 공급원이 될 것”이라며 수소 에너지의 출현을 예고했다. 그로부터 약 150년이 흐른 지금 그의 상상은 그린수소로 현실화했다. 하지만 한 번 가공을 해야 사용할 수 있는 2차에너지라는 약점을 안고 있다.

천연수소가 개발된다면 수소의 지위는 석유, 석탄과 같은 1차에너지로 격상될 수 있다. 아직은 현실보다는 미래의 영역이다. 현재로선 말리를 제외하면 상업적 천연수소 생산은 가시권에 있지 않다. 과학자들의 탐구와 기업가들의 모험적 투자가 어우러져 천연수소에서 기후위기 탈출을 위한 구명줄을 찾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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