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이로봇이 2002년에 처음 출시해 선풍적 인기를 모은 로봇청소기 룸바. 한겨레 자료사진
1957년 미국의 가전회사 월풀이 배포한 10분 남짓한 홍보영화 ‘기적의 주방’의 테마는 자동화였다. 경쟁사인 제너럴일렉트릭이나 웨스팅하우스의 홍보영화보다 볼거리가 많았다. 자동으로 높낮이를 조정하는 주방가구, 손짓 하나로 오렌지 음료를 만드는 주서가 등장하고, 무거운 식기를 옮기는 자동 카트와 부엌 바닥을 알아서 청소하는 납작한 자동 진공청소기가 돌아다녔다. 당연히 모두 가짜였다. 영화 촬영 준비에 동원된 엔지니어의 회상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중거울 뒤에 숨어 이를 조종했다고 한다. 알아서 움직이는 인공지능 로봇은 이로부터 45년이 지나서야 가정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그사이 ‘로봇’이란 단어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고 인공지능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1966년 에스알아이(SRI)는 미국 국방고등연구국(DARPA)의 자금으로 이동형 로봇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로봇’이 공식 문서에 쓰기에는 부적절한 단어로 여겨지던 시절이라 이동형 오토마톤(자동기계) 개발을 프로젝트 목적으로 내세웠다. 비슷한 다른 프로젝트들도 있었지만 인공지능을 만들어 탑재하겠다는 것이 차별점이었다.
로봇의 외형은 요즘 간간이 볼 수 있는 식당용 서빙 로봇과 영화 ‘월-이(E)’의 주인공인 청소 로봇을 섞어 놓은 듯한 형태인데, 마름모꼴로 배치된 바퀴 네개 위에 무거운 박스가 있고, 그 위에 솟아오른 마스트(돛대)에 흑백티브이(TV) 카메라 등이 달려 있었다. 마스트 양옆으로 튀어나온 두 안테나를 통해 컴퓨터와 통신하고, 컴퓨터에 탑재된 인공지능이 로봇을 조종하는 방식이었다. 전체적으로 사람만한 크기였다.
연구 프로젝트로서는 대성공이었다. 최대 해상도가 240×240인 티브이 카메라가 찍은 평면 화상에서 물체의 입체적 형태를 추정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목적지만 지정하면 알아서 방해물을 피해 최적 경로를 계산해내는 알고리즘도 발명했다. 이 알고리즘은 현재도 서빙 로봇이나 인공지능 물류 로봇에 기본으로 장착된다. 프로젝트 후반에는 이동 중 방해물을 움직이면 자동으로 최적 경로를 다시 설정하고 간단한 음성 명령으로 작동하는 정도까지 발전했다. 다만 부드럽게 움직이지는 못해서, 이동 중 자꾸 떨린다는 뜻으로 ‘셰이키’(shakey)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중적으로도 각광을 받았다. 여러차례 보도된 끝에 1970년 ‘라이프’ 잡지에 “최초의 전자인간 셰이키를 소개합니다: 마음을 지닌 기계의 매혹적이고 무서운 실상”이란 제목으로 장문의 특집기사가 게재되기도 했다. 하지만 실용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1972년 국방고등연구국이 프로젝트 연장 요청을 거절한 이유다. 실용화를 위해서는 이동형 로봇의 동작 자유도와 경로 길이가 더 늘어나야 했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해야 하는 계산량은 경로 길이를 동작 자유도만큼 제곱한 정도로 커진다. 웬만한 컴퓨터로는 이런 계산을 감당할 전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범용 이동형 로봇용으로는 인공지능보다 원격조종이 낫다는 통념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현재도 이동형 인공지능 로봇은 식당이나 물류창고처럼 제한된 공간에서부터 쓰이고 있다.
1969년에 완성된 최초의 이동형 로봇 셰이키와 이를 개발한 찰스 로즌. 에스알아이 누리집
1980년대 말 전문가 시스템이 몰락하면서 시작된 두번째 인공지능 겨울은 모든 현상을 컴퓨터에서 기호화할 수 있다는 ‘기호주의 인공지능’ 연구가 더 이상 막강한 패권을 누릴 수 없게 했다. 몰락했던 인공신경망 연구가 다시 주목을 받았고, 퍼지 가전이 한때 각광을 받았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젊은 로봇 공학 교수 로드니 브룩스가 인공지능에 대한 또 다른 접근법 ‘누벨 에이아이(AI)’를 제창한 것도 이 시기였다. 오늘날 흔한 가전제품으로 취급받는 로봇청소기는 단순한 지능으로도 현실세계에서 유용한 능력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는 누벨 에이아이의 적통이다.
원래 브룩스는 기호주의 연구 전통에서 훈련받은 연구자였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 가서 존 매카시 밑에서 컴퓨터 화상인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평면 화상에서 공간과 물체를 입체로 인식해내는 문제에 주력했고, 이는 셰이키 개발팀 이래 내려온 연구 주제였다. 1984년 엠아이티 이동로봇연구실 담당 교수로 부임한 브룩스는 이동 로봇용 인공지능을 기호주의 방식으로 구현하려다 기호주의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1990년 브룩스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코끼리는 체스를 두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누벨 에이아이를 제창했다. 코끼리는 나름 뛰어난 지능을 지녔으면서도 체스를 둘 줄 모른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개념과 기호에 의지하는 고등지능만 지능이라고 여기는 당시 통념을 비판했다. 그는 “곤충 같은” 수준의 단순한 지능부터 만들어 점차 발달시키는 접근법을 제시했다. 복잡한 개념 모델부터 만드는 대신, 센서와 반응회로를 만들고 그런 것들을 엮어서 환경에 지능적으로 적응해서 행동하는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자는 아이디어였다. 때로는 레고로 시작하기도 했고 구하기 쉬운 상용 부품으로 시연품을 만들어냈다. 이듬해 그는 인공지능 로봇 제작사 ‘아이로봇’을 차렸다. 아이로봇은 화성 탐사 로봇 자동차의 원형을 만들었고 미군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3000여대를 투입한 폭발물 제거 로봇 ‘팩봇’도 개발했다.
아이로봇은 1999년부터 브룩스의 제자이자 1호 직원인 조 존스의 주도로 극도로 단순한 로봇청소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로봇청소기 아이디어 자체는 1950년대 이래 잊히지 않았고, 브룩스의 연구들이나 1993년 존스가 출판한 책 ‘모바일 로봇’을 통해서 소형 이동형 로봇을 만드는 노하우는 상당히 퍼져 있었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여러 가전회사들은 로봇청소기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존스는 완벽한 성능, 미래적 기능, 뛰어난 인공지능을 갖춰야만 한다는 관념으로는 인공지능 로봇 프로젝트에 성공할 수 없다고 봤다.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는 1996년부터 개발 중인 로봇청소기를 홍보하고 있었는데 자랑만큼 뛰어난 성능이 나오기도, 제대로 작동하기도 힘들어 보였다. 게다가 최고급 부품들을 사용하니 가격도 고가일 수밖에 없었다. 존스의 아이디어는 청소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능(아마도 곤충보다도 못한 수준)만 부여하자는 것이었다. 누벨 에이아이식 사고방식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셈이었다.
누벨 에이아이의 첫 민수용 작품인, 아이로봇의 로봇청소기 룸바는 2002년에 출시됐다. 성능은 당시 기준으로도 빈약했다. 휴대용 충전식 청소기의 흡입모터 출력은 100W 수준인데, 룸바의 흡입모터 출력은 3W에 불과했다. 느린 속도의 염가형 중앙처리장치(CPU)에 램도 32MB 수준이었다. 센서들로 최소화했다. 충돌 감지용 센서들 몇개, 계단 턱 감지 센서, 적외선 감지 센서가 외부 환경을 감지했고, 모터 회전축 각도 센서와 배터리 전압 센서가 내부 상태를 모니터했다. 모터가 회전한 각도를 더해서 주행거리를 짐작하는 방식이었다. 주행 모드는 무작위 지그재그, 나선형 그리고 벽면 따라가기 세종류뿐이었다. 벽면 따라가기는 충돌 감지 센서에 신호가 들어오면 일단 멈추고 약간 회전해 움직여보면서, 계속 충돌 감지 센서에 신호가 들어오면 벽에 닿았다는 가정 아래 일정 거리를 직진하면서 청소한 뒤, 다시 약간씩 회전해서 움직여보는 식이었다. 사람이 일반 진공청소기로 10분 만에 깨끗이 청소할 방을 대충 청소하는 데 한두시간 걸렸다. 그래서 적외선 방출기를 별도로 추가했다. 룸바는 적외선을 만나면 마치 벽에 부딪힌 것처럼 방향을 틀었다. 그러다 보면 마치 유리병에 갇힌 날벌레처럼 룸바는 방 한쪽 편에서만 돌아다니게 된다. 공간을 인식하고 분할하는 인공지능 없이도 집중적인 청소 효과를 내는 꼼수였다.
2004년에 출시된 2세대 룸바 ‘디스커버리’.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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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상의 한계가 없지 않았지만 룸바는 광적으로 팔려나가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최초로 보급된 가정용 인공지능 로봇의 명예를 얻어 국제전기전자학회가 주는 상을 받았고, 카네기멜런대학이 운영하는 로봇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 뉴욕현대미술관에는 영구 전시됐다. 성공 요인을 분석한 기사와 논문들은 물론, 룸바가 초래한 변화를 추적하는 사회학·인류학 연구논문들도 여러편 나왔다.
경제지들은 룸바의 가격 경쟁력에 주목했다. 2001년 시판을 시작한 일렉트로룩스의 로봇청소기 트릴로바이트의 가격은 3000달러였고 룸바는 180달러였지만 청소 능력엔 큰 차이가 없었다. 인류학자들은 룸바 사용으로 달라진 생활 패턴을 분석했다. 바닥에 늘어놓은 물건들이 줄었고, 구석진 좁은 공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구가 재배치됐다.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의 상호 적응이 발생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누벨 에이아이의 관점에서 최소한의 센서와 반응회로를 엮어 충분히 쓸 만한 인공지능을 발생시킨 성공 사례였다.
룸바의 첫 성공 이후 각국에서 경쟁 제품을 선보였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이스라엘 제품은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일본 가전회사들은 몇몇 모델을 출시하는 정도에 그쳤다. 반면 한국 회사들이 주목받는 제품들을 내놓았다. 원자로용 로봇 회사로 출발한 한울로보틱스에서 2003년에 내놓은 로봇청소기 오토로는 인공지능 모바일 로봇으로서는 최고 성능이었다. 2개의 카메라와 12개의 초음파 센서와 고감도 기압 센서로 방의 크기와 형태, 그리고 청소기의 위치를 3㎝ 이내 오차로 결정하고, 청소한 구역과 청소할 구역을 구별해서 최적 경로로 청소하는 인공지능을 갖췄다. 셰이키 개발팀이 꿈꿨던 능력을 상상 이상으로 구현한 셈이다. 가격은 400만원대. 2000년대 중반부터는 가전 회사인 엘지와 삼성도 청소 기능 개선에 주력한 100만원대 제품을 출시했다.
이제 로봇청소기는 건조기·식기세척기와 함께 가정의 평화를 지켜주는 ‘삼신 가전’으로 대우받는다. 인공지능을 갖춘 놀라운 제품이라고 광고하는 일도 오래전에 사라졌다. 룸바의 성공은 인공지능이 구현할 목표로 사람 수준의 고등지능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음을 증명한다.
과학저술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과학사 및 과학철학협동과정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에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