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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기술

‘핵주권’ 갈림길…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시험대’

등록 2010-10-27 09:32

우리나라가 개발해 제4세대 소듐냉각고속로 개념의 하나로 선정된 칼리머(KALIMER) 원자로 실험장치.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우리나라가 개발해 제4세대 소듐냉각고속로 개념의 하나로 선정된 칼리머(KALIMER) 원자로 실험장치.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플루토늄 따로 분리 못하는 ‘파이로프로세싱’
핵확산 막을순 있지만 실용화까진 가시밭길
고준위 폐기물 없애는 ‘미라프로젝트’ 대안책
한-미 원자력협상 계기로 본 현주소

우리나라와 미국은 2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원자력협력 협정 개정 협상을 시작했다. 한-미 원자력협정은 1956년 처음 서명된 뒤 1973년 개정 때 41년간의 유효기간을 둬 오는 2014년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번 협상에서는 협정 제8조 시(C)항의 ‘특수 핵물질의 재처리와 형성 변경’ 규정이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 조항은 “특수 핵물질의 재처리 또는 형태나 내용의 변형은 두 당사자가 공동으로 결정해 수락하는 시설 안에서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실제로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사용후핵연료 사용 시설에 대해 5년마다 미 국무부의 승인을 받고 있다. 사안별로 미국의 승낙을 받아야 하는 구조여서, 특정 연구를 위해 미리 시설을 구축할 필요가 있을 때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재원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일본처럼 장기 시험시설 구축과 연구에 대한 ‘포괄적 동의’를 받는 쪽으로 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까닭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미국은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과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방식의 하나)의 타당성 연구는 별도로 진행하자”는 제안을 해왔다고 최근 외교부는 밝혔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을 계기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관련한 연구 진행 상황을 핵심어 중심으로 살펴본다.

■ 제4세대 고속로 원자력발전소는 우라늄에 중성자를 쏘아 핵분열을 시킴으로써 얻은 에너지로 물을 끓여 터빈을 돌리는 방식으로 전기를 얻는다. 핵분열 때 튀어나오는 중성자의 속도를 그대로 놔두면 핵폭탄이 되기에 감속재를 쓰는데 물을 쓰면 경수로, 물보다 무거운 중수를 쓰면 중수로다. 3세대로 불리는 이들 원전에는 천연우라늄 중 0.7%밖에 없는 우라늄235를 사용해 다량의 쓰레기(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하고 있다. 천연우라늄의 매장량도 유한하다. 세계 각국이 제4세대(Gen-4) 원자로 개발에 나서는 이유다.

‘고속로’는 경수로에서 쓰이는 중성자보다 빠른 중성자를 사용해서 붙은 이름이다. 고속중성자를 우라늄238(천연우라늄의 99.7%)에 쏘아 플루토늄으로 만들고, 여기서 다시 발생한 중성자가 같은 작업을 반복하기에 우라늄 이용률이 경수로에 비해 100배 높아진다고 연구자들은 주장한다.

소듐냉각고속로-파이로 재순환 시스템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소듐냉각고속로 2001년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일본·캐나다·프랑스 등 9개국은 제4세대 원자로 국제포럼(GIF)을 결성하고 6개 시스템을 공동연구 과제로 선정했다. 제4세대 원자로는 높은 경제성과 피동안전성(사고 시 원전 스스로 안전한 상태로 가는 시스템), 핵 확산 저항성, 적은 방사성 폐기물 등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우리나라는 소듐냉각고속로와 초고온가스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원자력위원회는 2008년 소듐냉각고속로 실증시설을 2028년까지 건설하기로 의결했다.


소듐냉각고속로(SFR)는 감속재로 소듐(나트륨)을 쓴다. 고속로에 감속재로 물이나 중수를 못 쓰는 것은 고속중성자가 가벼운 원소(수소)와 만나면 에너지가 낮아져 고독성의 핵물질을 만들기 때문이다. 다만 소듐고속로는 증기발생기에서 물과 소듐이 만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중간 열전달계통을 별도로 둬야 해 발전소가 커지고 건설비가 추가로 든다는 단점이 있다. 또 소듐은 산소와 잘 반응해 고온 상태에서 공기 중에 새어나오면 화재 위험이 있다.

김영일 한국원자력연구원 고속로기술개발부장은 “소듐냉각고속로와 파이로 재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면 원전 폐기물은 20분의 1, 고준위폐기물 처분 공간은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 파이로프로세싱 세계 각국이 고속로 연구에 몰입하는 또다른 이유는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올해 6월 현재 1만1천여t의 사용후핵연료가 원전 안에 쌓여 있고, 2100년이면 10만t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을 지하암반에 쌓아놓으려면 경주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장의 20배 크기의 면적이 필요하다. 고속로에서는 경수로 등에서 나온 반감기 2만~400만년의 유독성 핵종들(초우라늄원소들·TRU)을 집어넣어 독성이 약한 단반감기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고속중성자가 유독성 핵종들을 쪼개면 한편으로는 플루토늄이 나와 원료로 다시 쓰이고 한편으로는 단반감기 물질이 생성된다.

사용후핵연료를 고속로에 넣기 위해 처리하는 기술이 ‘파이로프로세싱’이다. ‘파이로’는 그리스말로 불을 뜻한다. 사용후핵연료에는 우라늄이 약 96%, 플루토늄 1%, 마이너 액티나이드(MA) 물질인 넵투늄(Np), 아메리슘(Am), 퀴륨(Cm) 등 핵분열생성물이 3% 포함돼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핵연료를 5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용융염 매질과 전기를 이용해 전기화학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 일차 우라늄을 회수하고, 이차적으로 남은 우라늄과 플루토늄 및 미량의 핵물질을 회수한다.

이전에는 사용후핵연료를 화학적으로 용해해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분리해내는 방식(PUREX)을 썼다. 널리 쓰이는 방식이지만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순도 높은 플루토늄240이 생성돼 핵무기 보유국이 아니면 재처리 시설 운영이 ‘원천 봉쇄’돼 있다. 핵무기 미보유국 가운데 일본만이 유일하게 재처리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한도희 원자력연구원 원자로시스템기술개발본부장은 “파이로프로세싱은 플루토늄과 핵분열생성물질을 혼합한 상태로 고속로에서 원료로 재활용하기 때문에 플루토늄을 따로 분리할 수 없어 핵확산 위험에 자유롭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외교통은 “미국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아직 세계 어디에서도 가동이 시작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내년에 천연우라늄을 이용한 시험시설을 짓는 데 이어 2016년 실험용 실증시설, 2025년에 실증시설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워놓았다.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의 안정적 추진을 위해서는 원자력협정의 개정이 관건으로 여겨진다. 실용화 단계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규모의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는 점도 원자력계가 넘어야 할 벽이다.

■ 미라 프로젝트 지난 18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선동 의원(한나라당)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을 위해 미라(MYRRHA) 프로젝트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그는 “미라 프로젝트에 참여해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 장치를 확보하고,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라 프로젝트는 ‘가속기 구동(ADS) 미임계로 연구시설’로 정의된다. 고속로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핵분열에 필요한 중성자의 5%를 가속기로 가속한 중성자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황일순 서울대 교수(핵변환에너지연구센터장)는 “만일의 사태 때 가속기를 세우면 핵분열을 일으킬 중성자 양이 모자라 임계치에 도달하지 못함으로써 원자로가 멈추게 된다”며 “가속기는 일종의 브레이크 구실을 한다”고 설명했다. 고속로가 고준위폐기물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미라 프로젝트는 고준위폐기물을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황 교수는 덧붙였다.

13년 동안 1조5천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미라 프로젝트는 벨기에가 주도를 하고 있다. 우리도 5%의 지분 참여를 권고받았다. 정부는 미라프로젝트 평가단을 꾸려 조사를 하고 있다. 다음달 결과에 따라 참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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