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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기술

“끝이 없는 기초연구…임상시험 중에도 새 원리 발견”

등록 2018-11-12 13:08수정 2018-11-26 09:56

[기초연구로 빚은 성공 비결을 묻다] ① 바이로메드

90년대 정부 기초연구 지원 토대
생소한 유전자치료제 연구 시작
학내 벤처1호 세워 세계에 도전장
통증 분야 세계 첫 임상3상 시험
2021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듯

“기초과학은 논리적 사고의 학문
경영에도 논리적 접근 과학 필요”

바이로메드의 연구원들이 연구실에서 유전자치료제 개발 연구를 하고 있다. 바이로메드는 지난 7월 미국에서 유전자치료제인 브이엠202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VM202-DPN)의 임상시험 3상을 시작했다. 바이로메드 제공
바이로메드의 연구원들이 연구실에서 유전자치료제 개발 연구를 하고 있다. 바이로메드는 지난 7월 미국에서 유전자치료제인 브이엠202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VM202-DPN)의 임상시험 3상을 시작했다. 바이로메드 제공
정부는 1989년 12월 ‘기초과학 연구 진흥법’을 제정하면서 이 해를 ‘기초연구 진흥의 원년’으로 선언했다. 기초연구 진흥 30년을 맞아 정부의 기초연구 지원을 디딤돌 삼아 세계를 선도할 연구성과를 창출해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기업들한테서 성공의 비결을 듣는다.

바이오벤처 ‘바이로메드’ 연구팀은 지난달 말 국제학술지 <바이오케미컬·바이오피지컬 리서치 커뮤니케이션>에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미국에서 임상시험 3상이 진행중인 유전자치료제 ‘브이엠202’(VM202)에서 나타난 약물 용량에 따른 반응의 원리를 밝힌 연구논문이다. 브이엠202는 당뇨병 환자한테 나타나는 통증인 당뇨병성 신경병증을 치료하는 약으로, 다른 화학요법의 통증 치료약과 달리 적정량을 투여했을 때 가장 높은 진통효과가 나타났다. 김선영 바이로메드 대표는 “임상시험 중에 발견된 현상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새로운 기초 원리를 발견한 것이다.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만든 치료제의 실용화 과정에 새로 연구할 거리가 생기고 다시 실험실로 가져와 동물실험 등을 통해 기초 원리를 밝히는 ‘역중개연구’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기초연구는 끝이 없다”고 말했다. 중개연구는 기초연구를 통해 세포나 동물에서 드러난 원리를 사람에서 확인하는 임상연구를 말하는데, 거꾸로 임상시험중에 드러난 현상의 기초원리를 동물실험 등에서 밝히는 것을 역중개연구라 한다.

브이엠202는 바이로메드가 개발하는 유전자치료제의 플랫폼이다. 플라스미드라는 디엔에이 조각을 이용해 사람의 근육세포에 유전자를 전달해 필요한 단백질을 만드는 방식이다. 이를 기초로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VM202-DPN), 당뇨병성 허혈성 족부궤양 치료제(VM202-PAD), 근위축성 측삭경화증(루게릭병) 치료제(VM202-ALS), 허혈성 심장질환 치료제(VM202-CAD) 등이 개발됐다. 브이엠202-디피엔은 지난 7월 미국에서 임상3상에 들어갔다. 9개월의 추적관찰 뒤 결과가 내년 6~7월께 나와 시판 허가 과정을 거치면 2020~2021년께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브이엠202-피에이디도 임상3상이 진행중으로 2019년말께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김 대표는 “통증을 치료하는 유전자치료제로서 임상3상을 진행하는 것도 최초이고, 시판이 가능해지면 플라스미드로 의약품을 만드는 것도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세계에서 개발된 유전자치료제는 지난해 노바티스가 ‘키메라 항원 수용체 티세포’(CAR-T)를 이용한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유전자치료제 ‘킴리아’를 처음 출시한 것을 비롯해 모두 8개뿐이다. 바이로메드는 지난 5월 미국 식품의약국(FAD)으로부터 첨단재생의약치료제(RMAT) 지정 승인을 받았다. 아르엠에이티는 에프디에이가 신속한 신약허가를 위한 기존 4개의 특별 절차(패스트 트랙)에 최근 세포치료제와 유전자치료제를 위해 추가한 절차다. 아르엠에이티로 지정받으면 시판 허가 과정에 6개월~1년 반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시판 허가 서류를 제출하기 전에 여러 차례에 걸쳐 사전 상담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VM202가 나오기까지는 20년이 훌쩍 넘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조교수를 하던 김 대표는 1992년 13년 동안의 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해 모교 교수로 부임했다. 마침 기초연구 진흥에 나선 정부로부터 목적기초 연구비와 선도기술개발사업(G7) 등의 연구비를 받아 유전자치료제 연구를 시작했다. 유전자치료라는 개념이 생소해 일부 평가자들이 공상과학(SF) 정도로 보거나 한국의 과학 수준으로 연구할 수 있겠느냐며 낮은 점수를 줘 겨우 따낸 연구비였다. 김 대표는 “아마도 부모의 특성이 자식에게 전해지는 유전(heridity)이라는 개념과 유전형질을 규정하는 정보의 단위인 유전자(gene)에 대한 오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유전자는 화학적 구성성분 곧 물질이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 인식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김 대표의 연구 테마는 에이즈 바이러스의 분자생물학적 규명이었다. 하지만 미국에는 과학에 우호적인 수천명의 환자가 있는 반면 한국 환자는 150여명에 불과했다. 김 대표는 에이즈 바이러스와 같은 레트로바이러스를 이용해 유전자전달체를 만드는 연구를 했다. 연구 결과를 들고 국내 제약회사들을 찾아다녔지만 유전자치료제 개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김 대표는 1996년 직접 회사를 차렸다. 국내 최초의 학내 벤처였다.

김 대표는 브이엠202를 ‘기초연구의 종합판’이라고 표현한다. 그동안 레트로바이러스에 대한 기초연구 데이터를 융합해 만들었다는 뜻이다. 바이로메드는 25년 동안 기초연구와 실용연구를 병행해 왔다. 물론 비율은 초기 7대3에서 현재 1대9 정도로 변해왔다. 김 대표가 회사를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대학 교수를 계속 해온 이유기도 하다. 김 대표는 “기초과학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이 실용연구에서도 가장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기초과학은 논리적 사고과정을 배우는 학문으로 경영에도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과학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브이엠202의 시장 진출에 집중하려 지난 8월 서울대 교수 정년을 2년 앞두고 조기 퇴임했다. 바이로메드는 100여명의 직원 가운데 절반이 여전히 연구원이다. 지금까지 국내외 특허 등록만 122건에 이르고 48건이 출원중이다. 에스시아이(SCI·과학기술 논문 인용색인)급 저널 등 국내외 학술지에 실린 논문도 거의 90여편에 이른다.

유전자치료제 개발 연구를 하고 있는 바이로메드 연구원. 바이로메드 제공
유전자치료제 개발 연구를 하고 있는 바이로메드 연구원. 바이로메드 제공
김 대표는 창업 뒤 얼마 지나지 않은 2000년 말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에 2천여쪽에 이르는 유전자치료제 임상시험 허가원을 제출했다. 당시 국내에서 유전자치료제는 개념조차 낯설어 김 대표 스스로 ‘유전자치료제 허가 및 임상시험 관리지침’ 초안을 만들어 식약청에 건네줘야 할 정도로 불모지였다. 지금은 연구 환경이 많이 나아졌지만 국내에서는 아직도 에이즈나 암같은 난치병이나 불치병에 한해 유전자치료제 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등 제한이 많다. 정부의 지원을 밑돌 삼아 개발된 유전자치료제가 정부의 제약으로 발목이 잡히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기초연구가 바탕인 바이오벤처는 주로 대학에서 탄생한다. 바이오산업에서 대학은 혁신 제품과 기술 개발의 근원지이다. 실제로 메디포스트, 메디톡스, 제넥신, 신라젠, 강스템바이오텍 등 국내 바이오를 주도하는 기업들은 거의 대학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바이오는 아직 숙성되지 않아 기초와 산업의 벽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내 대학의 규정은 이런 환경을 못 따라잡고 있다. 김 대표는 학내 창업을 ‘지하운동’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창업은 시행착오를 각오하는 투지가 필수적인데 서울대에서는 40대에 해당하는 부교수 이상만 창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해놓았다. 창업을 하려는 젊은 교수들이 눈치를 보지 않도록 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로메드를 창업할 당시 김 대표 역시 41살의 부교수였다.

기초연구 진흥 30년…28개 연구단 운영중

미국 미시건대 정치학 교수로 국립과학재단(NSF) 연구자문위원을 지낸 도널드 스토크스는 저서 <파스퇴르 쿼드런트>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과학보좌관을 지낸 반네바 부시가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이분화를 규정한 보고서 ‘과학, 끝없는 프런티어’를 비판하고 있다. 스토크스는 “부시의 보고서는 ‘기초연구가 실용이라는 미숙한 사고에 의해 제한받는다면 기초연구의 창의성이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곧 연구 목적으로서 ‘이해’와 ‘사용’은 본질적으로 상충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인식을 수십년 동안 과학계에 심어왔다”며 “하지만 많은 연구는 이해와 사용 두가지 목표 모두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프랑스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미생물학의 기초적 이해를 추구하는 동시에 저온살균과 탄저병·광견병 극복이라는 응용 목표를 추구한 사례를 들었다.

한국 정부는 1982년 ‘특정 연구개발 사업’이라는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를 하면서 예산의 10%를 목적 기초연구 사업에 할애해 정부 출연연구소뿐만 아니라 대학과 기업연구소도 연구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1989년에는 ‘기초과학 연구 진흥법’을 제정해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근거를 만들었다. 이를 토대로 우수과학연구센터(SRC)와 우수공학연구센터(ERC), 기초의과학연구센터(MRC), 국가핵심연구센터(NCRC), 지역협력연구센터(RRC, 현 지역혁신센터·RIC) 등이 설립됐다. 2011년에는 기초과학 전담 연구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설립돼 현재 28개 연구단이 운영중이다.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를 아우르는 연구개발사업으로는 1992년 ‘선도기술 개발 사업’(G7사업)을 필두로, 1999년에는 대형 복합연구사업인 ‘21세기 프런티어 연구개발 사업’이 출범했다. G7은 10년 동안 18개 사업에 3조6천억원이 투자됐으며, 21세기 프런티어도 10년 동안 22개 사업단에 1조6천억원이 투입됐다. 2010년부터는 21세기 프런티어의 후속 사업인 ‘글로벌 프런티어 사업’이 진행 중으로, 2023년까지 10개 사업단에 1조2천억원이 투여될 예정이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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