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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기술

서툴러도 괜찮아, AI 영어 선생님이 있잖아

등록 2020-07-20 05:00수정 2020-07-20 10:21

“더듬거려도 창피해할 필요 없으니
막혔던 말문 터지며 학습효과 쑥쑥”
엘지 개발 ‘AI 튜터’ 직장인들 인기
스마트폰으로 언제든지 이용 가능
했던 말 다시 들으며 발음 교정도
초등생 등으로 이용 대상 확대 추진
엘지씨엔에스(LGCNS) 직원이 직장인을 위한 영어학습 서비스 ‘에이아이(AI) 튜터’를 시연해 보이고 있다. 엘지씨엔에스 제공
엘지씨엔에스(LGCNS) 직원이 직장인을 위한 영어학습 서비스 ‘에이아이(AI) 튜터’를 시연해 보이고 있다. 엘지씨엔에스 제공

지난 18일 경기도 송추계곡서 도봉산 오르는 길.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한적한 길로 산을 오르는데, 앞서가던 등산객이 영어로 “덥고, 다리 아프고…그만 내려가고 싶다”고 연신 투덜댄다. 뒷모습으로 볼 때 분명 한국인이고 혼자인데 영어로 누군가와 계속 얘기한다. 서둘러서 추월하다가 눈이 마주치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인공지능과 영어회화 훈련 중”이라고 했다.

‘인공지능(AI) 영어회화 선생님 서비스’(이하 인공지능 교사)가 등장해, ‘아재’ 회사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영어 울렁증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인공지능 교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업 임직원들이 많아지고 있다. 선생님이 기계라 영어 표현이 서툴거나 발음이 시원찮아도 창피하거나 당황스럽지 않다는 게 인기 이유로 꼽힌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써온 사람들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거나 표현·발음이 서툰 건 당연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를 창피하게 여긴다. 그래서 영어를 곧잘 하는 사람들도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 앞에서는 입을 다물기 일쑤다. 더욱이 중·장년층은 중학교부터 길게는 대학까지 10년 가까이 영어를 배웠지만, 말이 아닌 글과 문법으로 배워 읽거나 쓰기는 웬만큼 하면서도 회화에는 젬병인 경우도 많다.

2000년대 초반, 마이크로소프트(MS)가 한국 기자들을 미국 시애틀 캠퍼스(본사)로 초청해 만찬 행사를 할 때였다. 엠에스가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길 것에 대비해, 본사에 근무하는 한국인들을 기자와 엠에스 임직원들 사이사이에 앉히며 통역을 하게 했다. 그날따라 음식 준비가 늦어지면서 허기를 느낀 한국 기자들이 와인으로 배를 채웠는데, 이게 반전을 가져왔다. 다음날 엠에스 홍보실 직원이 “한국 기자들은 다 영어를 잘하느냐”고 물어왔다는 것이다. 취하면서 창피함을 잊자 영어 말문이 터진 것이다.

인공지능 교사는 기계다. 술 취했을 때처럼, 영어 표현이 서툴거나 발음이 시원찮아도 창피해하지 않아도 된다. 등산길에 만난 이용자는 “예전에 한 연예인이 내비게이션(빠른 길 안내) 안내를 받으며 홀로 운전할 때 내비가 ‘직진하세요’라고 하면 ‘싫어! 니가 뭔데 직진하라 마라야! 난 우회전 할 거야. 꼭 우회전하고 말 거야’라고 대거리하듯 떠들며 예능 훈련을 했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같은 방식으로 인공지능 교사가 뭐라고 할 때마다 영어로 마구 떠들며 영어회화 공부를 하고 있다. ‘기계인데 뭐 어때’라고 생각하니 되더라”고 털어놨다.

현재 나와 있는 인공지능 교사는 엘지(LG) 정보통신기술(ICT) 계열사 엘지씨엔에스(LG CNS)의 직장인을 위한 영어학습 서비스 ‘에이아이(AI) 튜터’가 대표적이다. 이 업체는 영어교육 전문업체 캐럿글로벌과 손잡고 인공지능 교사를 개발해, 지난해 12월 회사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이용 기업이 엘지 계열사 15곳과 한국전력·케이비(KB)국민카드·롯데홈쇼핑·유한킴벌리·농심·제일제당·케이씨씨(KCC) 등으로 확대됐다. 이 업체는 “기업 임직원 이용자가 이미 1만명을 넘었다. 개인도 이용할 수 있도록 와이비엠넷·튜터링·파고다 같은 영어교육 전문업체들과 함께 서비스 대상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곧 무료체험 행사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 어린이가 엄마와 함께 구글 인공지능(AI) 비서(어시스턴트)를 지원하는 스피커로 어린이용 인공지능 영어교육 선생님 서비스를 이용해보고 있다. 구글 제공
한 어린이가 엄마와 함께 구글 인공지능(AI) 비서(어시스턴트)를 지원하는 스피커로 어린이용 인공지능 영어교육 선생님 서비스를 이용해보고 있다. 구글 제공

에이아이 튜터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좋은 물건을 고르거나 결제, 등산 중에는 숨차고 다리 아픈 상황, 호텔과 식당 등에서는 체크인과 주문 등을 주제로 인공지능 교사와 영어로 대화해볼 수 있다. 인공지능이 상대 수준에 맞춰 말하기를 유도하고, 잘못된 표현을 사용하면 바로잡아준다. 뭔 말을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면 적절한 표현을 추천해준다. 예를 들어,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상대가 “가까운 서점 위치 알려줘”라고 영어로 말해 “서점을 왜 찾아?”라고 되물었는데, 아무 말이 없으면 ‘책을 한권 사고 싶어’라는 표현을 알려주고 말해보게 한다. 엘지씨엔에스는 “300여개의 상황 대화가 준비돼 있다”고 밝혔다. 대화 내용이 다 녹음돼, 학습자가 다시 들어보며 발음을 교정할 수도 있다.

엘지씨엔에스는 “에이아이 튜터가 추구하는 것은 영어 울렁증 극복이다. 영어를 교실에서 책을 통해 문법 중심으로 배우다 보니 10여년 공부해 읽고 쓰는 건 하면서도 듣거나 말하는 상황이 되면 창피해하며 뒷걸음질부터 치는 상황을 극복하게 해주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학습자가 영어로 말하고 듣는 것에 대한 울렁증을 해소해 발음과 표현이 서툰 말이라도 입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것으로 판단되면, ‘하산’해도 된다고 판단해 전화 영어나 대면 교육 단계로 가라고 권한다고 했다.

이에 이용자들의 반응이 좋다. 엘지씨엔에스가 임직원들의 에이아이 튜터 이용 상황을 분석한 결과, 1월에 417명이던 이용자가 5월에는 708명으로 늘었고, 연속 수강자 비율도 달마다 늘어 5월에는 68%에 달했다. 따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학습자의 78%가 전화영어(17%)·유튜브강의(4%)·인터넷강의(1%)보다 좋다고 응답했고, 91%가 ‘영어회화 실력이 좋아졌다’고 밝혔다.

엘지씨엔에스는 최근 어린이 영어교육 전문업체 윤선생과 손잡고 ‘윤선생 에이아이 튜터’ 서비스를 별도로 내놨다. 구글 인공지능 비서(어시스턴트)를 지원해, 구글 인공지능 스피커로도 이용할 수 있다. 이 업체는 “에이아이 튜터 이용자들이 자녀 교육용으로도 만들어달라고 요청해 따로 개발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학교나 학원을 가지 못하는 초등학생 어린이들을 위한 인공지능 교사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김재섭 선임기자 겸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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