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1988년 9월 21일 한겨레신문 3면
송건호 대표이사
귀하의 건강하심을 기원합니다.
<한겨레신문>이 국민의 뜻을 모아 창간된 지 석 달 남짓 되어 지난 8일 지령 1백 호 기념호를 냈읍니다. 한겨레신문은 이제 창간 초기의 어려움을 딛고 대중매체로서의 위치를 다지면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읍니다. <한겨레신문>이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지난 4월 25일 자로 문공부에 등록, 5월 15일에 창간되었음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한겨레신문은 다른 언론과 마찬가지로 국내외의 모든 소식을 국민에게 정확하고 신속하게 알려야 할 책임과 권리가 있으며 이를 위해 뉴스가 있는 모든 기관 및 단체에 자유롭게 출입하고 취재할 필요가 있읍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부 기관 중에서 유독 청와대만은 본사 기자의 취재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읍니다.
청와대에는 국내 언론사 가운데 종합일간지로서 경향신문·동아일보·서울신문·중앙일보·조선일보·한국일보 등 6개사가, 방송사로 KBS와 MBC가, 영자지로 코리아헤럴드와 코리아타임스, 경제지로 매일경제신문과 한국경제신문, 지방지로 경북일보·광주일보·대구매일신문·부산일보 등과 연합통신이 출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그런데도 종합일간지인 한겨레신문에 대해서만은 출입 자체를 봉쇄해 뉴스원에 대한 접근권조차 허용치 않는 것은 선의로 해석하더라도 공평하지 않은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한겨레신문사는 이러한 일이 정부 책임자의 신중한 검토를 거쳐 결정됐다기보다는 일선 담당자의 잘못된 관행에서 빚어진 것으로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수차례의 공식·비공식 접촉에서 확인된 바로는 한겨레신문에 대한 편파적인 처사가 일선 담당자 한두 사람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청와대 당국과 본사와의 그간의 접촉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본사는 문공부로부터 등록필증을 받은 뒤 지난 5월 9일 출입·취재 허용 요청 공한과 함께 청와대 출입 내정 기자에 대한 인적 사항 자료를 청와대로 등기우편으로 발송했읍니다.
청와대 당국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6월에 들어서야 전화로 공한을 접수했음을 알려왔을 뿐 출입·취재 허용 여부에 대해서는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았읍니다. 본사의 몇 차례 요청에도 청와대의 관계자는 시종일관 “기자실이 좁아 대책을 세우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대답뿐이었읍니다.
본사는 지난 7월 14일 다시 등기우편을 보내 7월 말까지 본사 기자의 출입·취재가 가능하도록 적절한 조처를 취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만일 이때까지도 아무런 조처가 없다면 부득이 독자 및 국민 여론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음을 강조한바 있읍니다.
이에 대해 청와대에서는 7월 29일에야 비로소 홍성철 비서실장 명의로 “청와대 출입·취재 문제는 이미 상시 출입·취재하고 있는 상당수의 언론사 이외에 신규 출입·취재를 희망하는 언론사들이 계속 늘어나 이들 모든 언론사 기자에게 당장 출입·취재의 편의를 제공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종합적으로 대책을 검토하고 있으며 귀사의 요청에 즉시 응하지 못함을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내용의 짧은 회신을 보내 왔읍니다.
청와대 쪽에서 말하는 종합 대책 검토는 이미 몇 달 전부터 밝혀 오던 것으로서 한겨레신문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종합 검토'를 이미 4개월이나 기다려 온 것입니다. 청와대의 회신을 받은 지도 벌써 한 달이 더 지났읍니다.
우리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기자실이나 특별한 편의시설의 제공이 아니라 뉴스에 대한 접근권 자체라는 점을 기회 있을 때마다 밝혀 왔읍니다.
이제 <한겨레신문>이 대통령에게 직접 공개서한을 보내는 이유는 이 같은 청와대 당국의 처사가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며 이 같은 사실을 대통령은 물론 국민 전체가 알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겨레신문사는 이 서한이 청와대에 접수된 후에도 적절한 조처가 없을 경우 이 공개서한을 본지에 그대로 게재할 것입니다. 본사는 이 같은 결정이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라고 믿습니다.
귀하의 건강과 행운을 빕니다.
1988년 9월 9일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 송 건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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