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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4일 한겨레신문 18면 ‘김훈의 거리의 칼럼’
김훈 기자
월드컵 네 경기가 벌어진 일요일, 서울지역 지방선거 합동연설회장은 썰렁했다. 어깨띠를 두른 운동원들이 연단 앞에 자리 잡았고, 노인유권자 몇 명이 나무그늘에 앉아 있었다. 구슬땀을 흘리는 입후보자들이 그 몇 명의 유권자를 향해 승리의 구호를 외치며 악수를 청했다. 한 운동원은 "투표율이 낮을수록 한 표가 더욱 소중하다. 그래서 빈 마당에서 열심히 뛴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월드컵 열풍 속에서 치르는 지방선거의 문제를 요약하고 있었다. 유권자 다수의 외면 속에서 불과 몇 표차로 당락이 갈리는 사태를 그는 예견하고 있었다.
이번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대결구도 속으로 가라앉게 되리라는 예측은 타당해 보였다. 후보자들은 지역적 삶의 주체성에 접근하기보다는 중앙정치의 갈등구도를 지역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대체로 지방의원 입후보자들은 소속 정당 광역단체장 후보의 공약과 그 정치적 그늘 밑에서 발언하고 있었다.
크고 선풍적인 힘이 삶의 구체성을 휩쓸어 가버리는 방식으로 이번 지방선거는 전개되고 있는 것 같다. 그 선풍적 힘들이 부딪치는 회오리 속에서 뙤약볕이 내리쬐는 학교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고, 볼륨 높은 확성기가 토해내는 정치적 열정의 목소리는 헛되게도 듣는 사람이 없었다.
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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