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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15일 한겨레신문 18면 ‘김훈의 거리의 칼럼’
김훈 기자
아시아경기대회 기간 중에 부산 도심거리에서 벌어진 북쪽 취주악단의 공연은 많은 인파를 끌어모았다. 북쪽 여가수들의 목소리는 다들 꾀꼬리 같았다. 그들의 노래에서는 노래하는 개인의 음색이나 내면이 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창법은 그들의 감격적 어조와 닮아 있었고, 그들의 미소와 애교는 학습된 정형성을 노출시켰다. 그 꾀꼬리 창법은 그들 사회에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개별적인 인간의 사랑과 꿈을 노래하는 남쪽 대중음악에 비하면 북쪽 여성의 공연은 그다지 재미없었다. 그리고 남쪽의 이 ‘재미’가 그들의 귀에는 퇴폐와 타락과 무기력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13일 마지막 공연이 벌어진 다대포항 만경봉호 앞 공터에는 2만5천여 인파가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공연시작 5시간 전부터 자리를 깔고 앉아 김밥과 라면을 먹으며 기다렸다. 부산 인접 시·군에서 온 늙은 부부, 젊은 연인, 농부, 어부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통일운동가도 사상가도 아닌 보통사람들이었다. 군중들은 열광적인 박수와 함성으로 이 ‘꾀꼬리 같은’ 음악에 응답했다. 그 함성은 낯설게 느껴질수록 더욱 가까이 가려는 사람들의 열망으로 들렸다. 화해는 노선투쟁이나 이해다툼이 아니다. 생활 속에서 구현돼야 한다는 것을 지도자들보다 군중이 먼저 알고 있는 듯했다.
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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