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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24일 한겨레신문 18면 ‘김훈의 거리의 칼럼’
김훈 기자
지난 2년 동안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활동으로, 개인의 생명을 압살해 온 국가권력의 잔혹한 실체가 일부 드러났다.
이 잔혹성의 발가벗은 모습은 너무나도 치 떨리는 것이어서 보도조차 제대로 되지 못했다. 국가와 개인이 양심의 문제로 대치할 때, 국가가 개인의 생명에 대해 폭력을 행사한다면 개인은 살 자리가 없다.
의문사위원회는 최근 지난 1970년대 형무소에서 벌어진 사상전향공작에 항거하다 고문 끝에 숨진 좌익수 3명의 죽음에 대해 “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없다”고 결정했다. 위원회의 결정문은 ‘양심’과 ‘체제’ 사이에서 고통스럽게 갈팡질팡하고 있다. 위원회는 민주화의 지향점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이 ‘기본질서’ 쪽으로의 전향을 거부하다가 맞아 죽은 사람들의 ‘양심’을 긍정하면서도 이 죽음은 “민주화와 관련이 없다”고 위원회는 판단했다.
위원회의 결정은 불완전해 보인다. 그리고 이 불완전한 결정은 불완전한 체제의 모습을 정직하게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와 개인의 대치는 지나간 70년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은 여전히 개인으로서 국가와 대치하고 있다.
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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