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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수목장 뒤틀릴라

등록 2006-02-07 18:47수정 2006-02-07 21:54

우리나라에 수목장을 알리는 계기가 됐던 김장수 전 고려대 농대 학장의 수목장 모습. 산림청 제공
우리나라에 수목장을 알리는 계기가 됐던 김장수 전 고려대 농대 학장의 수목장 모습. 산림청 제공
한그루 100만원 사설 난립 조짐
지난 2004년 9월 어느 바람 맑은 날 경기도 양평의 고려대 농대 연습림 한 가운데서 특별한 장례식이 열렸다. 유족들은 한 참나무 아래에 구덩이를 판 뒤 작은 상자에 모셔온 유골을 넣고는 다시 흙으로 덮었다. 그것이 끝이었다. 봉분도 만들지 않았고, 묘비도 세우지 않았다. 다만 바로 위 참나무에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라는 작은 푯말 하나를 달았을 뿐이다. 원로 임학자 김장수 고려대 농대 교수의 유족들이 “죽어서 나무로 돌아가겠다”고 한 고인의 뜻에 따라 치른 ‘수목장’이었다.

상업적 수목장치 허용 땐
수종·주변조경 등
되레 산림 막개발 가능성

복지부는 “수목장은
산림 관리적 접근 말아야”

이 장례를 계기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수목장이 불과 1년여 만에 묘지와 납골당에 의한 국토 잠식과 산림 훼손을 막아줄 환경친화적 장례방식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인천·광주시와 경북·경기도, 용인·서산시 등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수목장을 할 수 있는 공간 마련에 나섰다. 지난해 한국형 수목장 발전모형을 마련한 산림청은 올해에 전국 국유림 가운데 3곳 정도의 수목장림을 선정해 내년부터 봉안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보건복지부는 현재 개정을 추진 중인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자연장’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수목장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수목장을 확산시키기 위한 민간단체쪽 움직임도 활발하다. 지난해 9월 국내 최초로 수목장제도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을 연 뒤 수목장을 홍보해오고 있는 한국산지보전협회와 산림포럼은 오는 14일 ‘수목장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공식 창립하고 수목장 실천을 범국민운동으로 펼쳐나갈 계획이다.

상지대 총장인 김성훈 한국산지보전협회 회장은 “유한한 국토에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땅싸움을 하는 꼴로 만들고 있는 현행 장사문화와 묘지제도를 방치하고서는 환경과 산림보전을 이야기 할 수 없다”며 “수목장이 조상 대대로 내려온 우리의 자랑스런 장례문화의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국토와 산림을 지켜낼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가 파악하고 있는 것을 보면, 70% 이상이 산림지역에 들어서 있는 전국의 묘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전토의 1%인 998㎢에 이른다. 해마다 20여만기의 묘지가 새로 생기면서 이 면적은 해마다 여의도 시가지 면적의 두 배 꼴인 600여㏊ 가량씩 늘어나고 있다. 환경단체들이 산림훼손의 또다른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는 전국의 골프장 면적이 193.9㎢(문화관광부 ‘2005 전국 등록·신고 체육시설업 현황’)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묘지에 의한 산림훼손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수목장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상당히 긍정적이어서, 수목장 보급 전망을 밝게 해준다. 한국산림정책연구회가 지난달 전 국민 1600여명을 대상으로 벌인 수목장에 대한 시민의식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2.4%가 수목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자신의 죽으면 반드시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응답자도 14.7%나 됐다. 이런 조사결과는 법적·제도적 뒷받침만 이뤄지면 머지 않아 수목장이 새로운 장례방식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아직 법적근거 마련안돼


이미 전국의 여러 지자체들이 아직 수목장에 대한 법적 근거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앞다퉈 수목장지 조성에 나서는 것도 이런 전망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수목장 보급운동을 펴고 있는 민간단체들에서는 이런 움직임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국토와 산림을 지키기 위한 대안으로 화장과 납골이 장려됐지만, 납골당과 납골묘가 지나치게 호화로운 석축물로 꾸며지면서 또 다른 자연훼손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형웅 ‘수목장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 기획실장은 “묘지는 그대로 조성하고 묘석만 나무로 대체하는 식으로 수목장 묘지를 따로 조성하는 식의 수목장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존 산림의 나무 밑에 유골을 묻어 유골이 숲으로 둘러싸이게 하는 것이 진정한 수목장”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수목장은 원칙적으로 국공유림에만 허용하고, 사유림에도 허용할 경우 30년 이상 숲을 가꾼 독림가 등에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상업적인 묘지형 수목장지를 전면적으로 허용할 경우 호화 납골묘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처럼, 나무의 수종과 형태 크기, 주변 조경 등에 따라 호화 수목장이 등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산림청도 같은 견해다. 산림청 산림휴양정책과 권영계 사무관은 “사설 수목장을 허용할 경우 영리 목적으로 흘러 규정에 없는 비석을 세운다든지, 주변 숲을 훼손한다든지 하는 부작용이 생길 것으로 예상돼 일단 국공유림으로 제한해 먼저 해보고, 제도적으로 안정되면 점진적으로 확대하자는 것이 산림청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국공유림부터 먼저 시행을

수목장에 대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보건복지부쪽은 이런 주장에 부정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노인지원팀의 이창섭 사무관은 “수목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장례가 우선이며 산림관리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성훈 산지보전협회장은 “이미 나무 한그루에 100여만원 이상씩 받는 사설 수목장묘지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수목장이 또다른 산림 난개발의 원인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수목장을 제도화할 때 수목장의 취지가 숲을 가꾸자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의 큰 관심 속에 이제 막 만들어지고 있는 수목장 제도가 환경훼손을 막는 친환경적인 장사제도로 자리매김할 지 아니면 또하나의 실패한 장묘제도가 될지 주목된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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