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시 남부면 탑포리에서 바라본 노자산 일대. 이 일대 약 370만m²에 27홀 골프장 등을 포함한 거제 남부관광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거제/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여기 돌에 붙어 있는 작은 갈색 고둥 보이시죠? 저게 기수갈고둥이라고 하는 멸종위기종이에요. 그 옆에 하얗게 점처럼 붙어 있는 게 기수갈고둥 알이고요. 주로 남해안 기수역(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구간)에 사는데, 수명이 12년이래요. 고둥 종류 중에 제일 오래 사는 거죠. 그런데 여기 개발되면 다 없어지겠죠.”
지난 3일 경남 거제시 남부면 탑포리의 망버들천. 마을 앞바다인 남해로 흐르는 연장 756m 개천 속 한 돌을 가리키며 원종태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말했다. 이곳은 노자산 골프장을 중심으로 한 ‘거제 남부관광단지’ 예정지에 포함된 곳인데,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은 거제시와 건설사가 환경영향평가를 엉터리로 해놓고 개발을 추진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탑포리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노자산에서도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는 흔적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원 국장이 바위 옆에 떨어진 달팽이 사패(죽은 껍데기)를 발견했다. “이게 거제외줄달팽이예요. 패각에 보이는 검붉은 선이 6바퀴 반을 도는데, 높이가 다른 달팽이보다 큰 편이죠. 거제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거제에서도 이 산에서만 삽니다. 비가 많이 온 다음날 보이는데, 요즘 비가 안 와서 오늘은 못 만나겠네요. 이 달팽이는 100년 동안 사패만 보이다가 2010년에 처음 발견됐어요. 한국에 달팽이가 40여종 있는데, 그중에 멸종위기종은 울릉도달팽이랑 참달팽이, 거제외줄달팽이 이렇게 딱 세 종류예요.”
경남 거제시 남부면 탑포리 망버들천에 서식 중인 멸종위기종 기수갈고둥. 바위에 흰색 점처럼 붙어 있는 게 기수갈고둥의 알이다. 거제/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노자산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 거제외줄달팽이.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제공
왜 하필 여기 ‘삽질’을
7월에 만개했던 대흥란 꽃대, 동남아에서 5월 중순에 와 짝짓기하고 새끼를 키운 뒤 9월 말 돌아가는 팔색조·긴꼬리딱새의 둥지 등도 눈에 띄었다. 노자산엔 이런 멸종위기종 10여종을 포함해 법정보호종만 해도 50여종이 살아간다. 그뿐만이 아니다. “노자산은 식생으로 볼 때도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보시다시피 여기엔 소나무가 거의 없어요. 느티나무, 굴참나무, 굴피나무 같은 활엽수가 대부분인데, 천이(기후나 환경 등에 맞게 숲을 이루는 식생이 발전하는 과정)의 최고 단계인 ‘극상림’ 바로 전 단계라서 그래요. 노자산이 식생보전등급 1등급인 이유죠.” 원 국장의 설명이다.
노자산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 대흥란.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제공
문외한이 보고 들어도 ‘삽질’을 해선 안 될 것 같은 이곳이, 어쩌다 골프장을 품은 관광단지로 갈아엎어질 위기에 처한 걸까. 잘못된 첫 단추는 2018년의 전략환경영향평가였다.
환경영향평가엔 세 종류가 있다. 댐 건설, 권역별 관광개발계획 같은 큰 규모의 개발기본계획을 실행하려면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먼저 실시해야 한다. 개발사업이 일정 규모 이상이라면, 이 사업의 세부 실행계획 단위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봐야 하는데 그게 ‘환경영향평가’다. 그보다 규모가 작은 개발사업은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한다. 노자산 일대의 경우, 2017년 거제시와 경동건설이 27홀 골프장과 호텔, 워터파크 등이 들어서는 약 370만m²(112만평, 해상 약 40만m² 포함) 규모의 관광단지 지정을 신청했다. 이듬해 이들이 제출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가 통과돼 2019년 5월 경남도의 거제 남부관광단지 지정 고시에 이르게 된다.
노자산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 긴꼬리딱새.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제공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엔 팔색조, 긴꼬리딱새 등 버젓이 노자산에서 발견되는 법정보호종 20여종이 ‘없다’고 기재됐다. 100만평이 넘는 예정지 현지 조사를 딱 2명이 했고, 그나마도 봄철 하루와 여름철 사흘 동안만 실시해 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시기를 비켜 간 탓이다. 천연기념물인 수달의 발자국도 노자산에선 종종 발견되는데,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엔 기록되지 않았다. 골프장 예정지는 경사도 25도 이상이 43.7%여서 골프장 입지로 바람직하지 않은데, 업체는 인근 바다 면적까지 포함해서 계산해 실제보다 낮은 평균 경사도를 적시했다.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등 지역 환경단체와 반대 어민들이 들고일어났다. 전략환경영향평가가 거짓·부실로 진행됐다며 관할인 낙동강유역환경청에 협의 취소를 요구하고, 환경부에 현지 조사와 생태·자연도의 등급 상향 조정도 요청한 것이다. 생태·자연도는 자연환경보전법에 따라 환경부 산하기관인 국립생태원이 5년에 한번씩 작성하는 지도로, 해당 지역의 생태·경관 가치, 자연성 등을 평가해 등급을 매긴다. 토지 이용과 개발사업 등에 활용되는데, 환경영향평가를 할 때도 참조해야 한다. 이 가운데 1등급은 멸종위기종의 주된 서식지, 도래지, 주요 생태축 등이고 식생보전등급이 높아 개발할 수 없다. 2등급은 장차 보전 가치가 있거나 1등급 권역 보호를 위해 필요한 곳으로 개발은 할 수 있지만 훼손을 최소화해야 한다. 3등급은 개발이 가능한 지역이다. 그런데 당시 거제 남부관광단지 예정지의 생태·자연도에서 1등급지는 1.8%(6만2500㎡)에 불과했다.
계약일보다 빠른 조사날짜
국립생태원은 현장 조사를 거쳐 1등급지가 개발 예정지의 30%가량인 100만m² 이상이라고 수정한 생태·자연도를 공고했다. 그러자 이번엔 거제시와 사업자가 이의를 신청했다. 추가적인 조사가 없었지만, 환경부는 이의를 그대로 수용해 1등급지가 6만m²라고 2019년 7월 고시했다. 다시 지역 환경단체들이 이의를 신청했고, 국립생태원의 재조사를 통해 1등급지가 120만m² 이상이라는 환경부의 생태·자연도 수정보완 고시가 지난해 10월 나왔다.
같은 곳을 놓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에 따라 환경부 고시가 오락가락한 것도 문제지만, 더 황당한 건 사업자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 초안이다. 가장 최근에 고시된 생태·자연도 대신, 자신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2019년 고시를 근거로 이 초안을 작성해 제출한 것이다.
나뭇가지 위에 앉아 먹이를 먹고 있는 팔색조. 게티이미지코리아
지역 환경단체들은 이렇게 작성한 환경영향평가서 초안도 전략환경영향평가서만큼이나 부실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경동건설과 환경영향평가 업체들이 계약을 맺기도 전에 이뤄졌다는 현장 조사다. 환경영향평가는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 대행업체(1종업체)에 용역을 주고, 이들이 다시 기초 현황조사 업체(2종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구조로 진행된다. 경동건설과 1종업체의 계약일은 2020년 1월, 1종업체와 2종업체의 계약일은 같은 해 7월이다. 그런데 초안을 보면, 해양동식물상 1차 조사가 2016년 8월, 2차 조사가 2019년 5월, 3차 조사가 2019년 11월 이뤄졌다. 대기질, 해양수질, 토양, 소음 등 다른 현장 조사 날짜도 2016~2019년 사이다.
전략환경영향평가 때와 마찬가지로 법정보호종이 나타나지 않는 시기에 조사해 ‘없다’고 하거나, 조사를 해놓고도 결과를 적지 않아 ‘의도적 누락’이 의심되는 경우도 많았다. 거제외줄달팽이나 대흥란처럼 특정한 환경에서만 자라 이식이 불가능한 법정보호종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대책으로 내놓기도 했다.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 당시 낙동강유역환경청이 경사도 문제를 지적하며 골프장 규모를 18홀로 축소하라고 한 내용도 환경영향평가 초안엔 반영되지 않았다.
개발사업과 환경영향평가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은 노자산만의 일이 아니다. 부산은 낙동강 하구 철새도래지를 사이에 둔 강서구 식만동과 사상구 삼락동을 잇는 대저대교 건설을 두고 몸살을 앓고 있다. 낙동강 철새도래지는 천연기념물인 큰고니, 멸종위기종인 각종 기러기와 오리 등의 서식지로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최근엔 세계적 희귀종인 대모잠자리가 발견돼, 국내 최대 서식지로 추정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전국이 ‘부실 환경영향평가’ 몸살
부산에서 낙동강을 지나는 기존 교량 10개로도 충분한데다, 대저대교를 짓겠다는 위치가 큰고니 핵심 서식지를 파괴할 우려가 크다며 부산은 물론 전국의 환경단체들이 연합해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던 중 부산시가 2019년 낙동강유역환경청에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가 현장조사도 없이 작성되는 등 거짓으로 만들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은 환경영향평가 거짓·부실검토전문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나섰는데, 환경질 분야와 자연생태 분야의 평가서가 거짓으로 작성됐다고 결론을 내린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의 수사 의뢰를 받은 부산지방경찰청은 지난해 6월 두 분야의 조사를 맡았던 2종업체 2곳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에게 하도급을 준 1종업체 2곳은 낙동강유역환경청에서 영업정지 6개월 등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이상한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환경단체들과 겨울철새 공동조사를 하자고 협약한 부산시 관계자들이 올해 초 낙동강 하구에서 큰고니를 쫓아내는 모습이 영상에 찍혀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게다가 부산시는, 행정처분을 받은 1종업체 2곳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2종업체 1곳을 낙동강유역환경청이 명령한 환경영향평가 재조사에 참여시켰다. 이 2종업체는 거제 남부관광단지 전략환경영향평가서 거짓 작성 의혹으로 지난해 6월 경찰에 고발된 곳이기도 하다. 재조사라고 한들, 그렇게 작성된 환경영향평가서를 신뢰할 수 있을까?
제주 제2공항도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부실 문제로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데, 환경부는 이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는 ‘부동의’ 대신 평가서를 보완해 오라는 ‘반려’를 거듭하고 있다. 제주 비자림로 확장,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아파트를 짓고 있는 경남 양산시 사송지구, 전남 고흥 비행성능시험장, 강원 설악산 케이블카, 경북 영양군 풍력발전단지, 경남 창녕군 대봉늪 제방공사 등 전국 곳곳의 크고 작은 개발사업 가운데 환경영향평가를 둘러싼 거짓·부실 논란이 일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개발사업을 하는 사업자가 대행업체에 돈을 주고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한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오염자 부담 원칙’이라는 명분이지만, 사업자 돈으로 조사를 하는 용역업체가 ‘개발 불가 또는 축소’라는 답을 선택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환경단체들이 현행 환경영향평가제도를 두고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꼴”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환경영향평가 업체의 부실한 상황도 간과하기 어렵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지난 3월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19년 접수된 환경영향평가는 6676건이다. 그런데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1종업체는 304곳, 현장조사를 하는 2종업체는 57곳이다. 2종업체 57곳을 다 합쳐도 현장조사에 투입되는 전문인력은 226명에 그치는데, 그나마도 조사 분야가 9개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각 분야의 전문인력은 평균 25명에 불과하다. 환경영향평가서가 부실하지 않은 게 이상한 구조인 셈이다.
그럼에도 각 지역 환경청이 환경영향평가서에 부동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환경부가 지난 4월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15~2020년 환경영향평가 협의 1만7893건 가운데 부동의는 1.9%인 332건에 머물렀다. 나머지 98.1%인 1만7561건은 조건부 동의였다. 지욱철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환경영향평가가 요식 행위일 뿐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입지 선정과 계획 수립, 토지 매입, 환경영향평가 등에 이미 많은 돈이 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정부부처나 지방정부 사업을 못 하도록 막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돈의 고리를 끊으려면
이 때문에 환경영향평가가 제구실을 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사업자와 환경영향평가 업체 사이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의 환경단체 등이 모인 ‘환경영향평가 제도 개선을 위한 전국연대’는 그 방안으로 비용공탁제를 제시하고 있다. 환경영향평가에 드는 돈은 사업자가 지불하되, 정부나 독립된 기구가 이 비용을 받아 환경영향평가 업체를 선정·관리하자는 것이다. 환경은 공공재이므로, 이를 어떻게 이용할지에 영향을 주는 환경영향평가는 개발로 사익을 얻는 사업자가 아니라 정부 등 공적인 기구가 주도해야 한다는 취지다. 환경영향평가 비용공탁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환경영향평가를 좀 더 ‘시민참여형’으로 바꿔볼 수도 있다는 대안도 제시된다. 이상범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민들이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한 정보를 실효성 있게 얻을 수 있도록 주민 의견 수렴을 위한 공람 기간(현재 환경영향평가법상 공람 기간은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초안 20~40일,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20~60일)을 늘리고, 공람 방법을 다양화하는 한편, 평가서를 이해하기 쉽게 작성할 필요가 있다. 또 생태계 조사를 할 때 주민이나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것도 환경영향평가제도의 개선 방안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가 시작돼 개발사업이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되지 않도록, 행정 절차보다 환경영향평가를 먼저 실시하거나 입지 선정 때 이해관계자 대신 시민과 전문가가 참여해 타당성을 따져보자는 아이디어도 있다.
노자산은 어떻게 될까? 거제시와 경동건설은 지난해 10월 고시된 1등급지 120만m² 가운데 56만㎡를 해제해달라고 이의신청을 했다. 국립생태원은 지난 6일, 이 가운데 7만m²만 2등급지로 하향조정한 네번째 수정 공고를 내놨다. 거제시 쪽은 “국립생태원에 다시 이의신청을 할 계획”이라며 “우리도 소모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관광진흥법에 따라 관광단지로 지정돼 민간 사업자가 4천억원 이상 투자를 하겠다고 한 사업이다. 사업자가 현재 사업부지의 70% 이상을 매수한 상태로 이미 적은 금액이 들어간 게 아닌데다, 행정상으로도 관광단지로 먼저 지정된 다음에 생태·자연도가 변경됐는데 우리가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나”라고 밝혔다. 노자산에 오르면 한눈에 들어오는 통영 쪽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배경으로 골프공이 포물선을 그리게 될지, 팔색조가 흰색·자홍색 어우러진 대흥란을 발아래 둔 채 집을 짓고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줄 수 있을지 결정될 날은 아직 멀었다.
노자산 쪽에서 바라본 전경. 통영 쪽 바다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제/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거제/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