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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방치된 환경운동 자료 400만쪽 ‘디지털 서가’에 담았죠”

등록 2021-09-13 18:33수정 2021-09-14 02:32

[짬] 숲과나눔 장재연 이사장

장재연 숲과나눔 이사장. 김정수 선임기자
장재연 숲과나눔 이사장. 김정수 선임기자

1982년 ‘공해 추방’ 깃발을 내걸고 출발한 한국 환경운동이 올해로 39년째를 맞았다. 급속한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환경 오염에서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자연 파괴, 생태계 훼손, 기후 변화 문제로 관심을 넓혀온 환경운동의 역사는 그대로 한국 시민운동의 역사다. 이 역사는 환경단체들이 수시로 내놓는 각종 보고서, 회의자료집, 기자회견문, 성명서 한 장 한 장에 기록돼 있다. 한국 시민운동사의 1차 사료인 이런 문건들은 안타깝게도 가난한 환경단체의 좁은 사무실에서 시나브로 유실돼 왔다. 새로 만들어지는 자료들에 떠밀려 책장에서 먼지 낀 창고 속으로 들어갔다가 이사를 할 때마다 조금씩 버려지기 때문이다.

재단법인 숲과나눔의 디지털 아카이빙은 그런 안타까움에서 시작됐다. 환경 관련 문서 자료들이 사라지기 전에 피디에프(PDF) 파일로 만들어 보존하면서 필요한 사람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환경 관련 문서자료를 모은 환경아카이브풀숲(ecoarchive.org)을 공개한 데 이어 1년 만에 환경 사진만 따로 모은 에코 포토 아카이브(ECO PHOTO ARCHIVE)까지 완성한 숲과나눔 장재연(64) 이사장을 지난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역 근처 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숲과나눔 재단이 환경 자료 아카이브를 주요 사업의 하나로 추진한 이유는 장 이사장 이력을 생각하면 금세 이해된다. 그는 미세먼지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30여년 전 미세먼지의 건강영향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환경보건전문가로 초기부터 환경운동에 참여했다. 전업 환경운동가로 나서진 않았으나 전문성을 바탕으로 활동을 이어가 2012년부터 9년 동안 환경운동연합 공동 대표까지 지냈다. 누구보다도 환경 관련 자료들이 방치되고 사라져 가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환경 자료 아카이빙은 사실 환경단체들 숙원 사업의 하나입니다. 환경연합에서도 몇 번 하려고 하다가 비용 문제 때문에 못했어요. 그래서 재단이 출범하면서 바로 이것을 준비했는데, 환경단체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호응해 잘 진행됐습니다”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 등 주요 환경단체 자료부터 이미지화해 쌓기 시작한 환경아카이브 풀숲’의 디지털 서가에는 지금은 지역의 작은 풀뿌리 환경단체는 물론 개인들이 보관하고 있는 자료들까지 채워지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7월 아카이브 공개 당시 2만여 건에 200만여 쪽이던 소장 자료 규모는 1년 만에 4만여 건·400만여 쪽으로 두 배가량 늘었다. 이 서가에서는 누구나 들어와 클릭만 하면 80년대 초 한국 환경운동이 태동하는 계기가 된 온산병 사태의 조사보고서를 비롯한 다양한 자료들을 내려받을 수 있다.

장 이사장은 “아카이브에 대한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일주일에 500~600명이 이용하고 있고 최근에는 학자들까지 사용이 늘었다고 한다”며 “내년부터는 아카이브를 이용한 환경과 사회 연구도 촉진해보려고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환경운동 성명서 등 망실 안타까워

지난해 환경 문서 아카이브 만들어

지난 7월엔 환경 사진 아카이브도

‘미세먼지 건강 영향’ 주제로 박사

9년 동안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하이닉스 출연금으로 재단 설립

숲과나눔재단의 ‘에코 포토 아카이브’에 참여한 46명의 환경사진가들. 사진평론가이자 큐레이터 최연하씨가 기획하고 구성했다.
숲과나눔재단의 ‘에코 포토 아카이브’에 참여한 46명의 환경사진가들. 사진평론가이자 큐레이터 최연하씨가 기획하고 구성했다.

문서 자료 아카이브의 성공적 출발은 1년 뒤 사진 자료 아카이브로 이어졌다. 지난 7월 문을 연 ‘에코 포토 아카이브’는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환경 전문 사진작가 40여 명이 찍은 사진 1만여 점이 등록돼 있다. 장 이사장은 “처음에는 자료의 형태와 상관 없이 아카이빙을 했는데, 누가 무슨 내용으로 작성한 것인지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문서와 달리 사진은 찍은 사람만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별도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평생 환경 관련 사진을 찍어온 작가와 기자들까지 많은 사진 자료들을 내줘서 아카이브가 문서와 사진 자료의 양 날개를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전업 사진작가는 아니지만 평소 환경 분야에 관심을 두고 꾸준히 사진을 찍어온 일반인들의 작품까지 받아 사진 아카이브를 확대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장 이사장이 이끄는 숲과나눔 재단은 출범한 지 올해로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인재 양성, 대안 개발, 교육·협력 등의 다양한 사업으로 환경단체들과 풀뿌리 환경모임, 환경전공 전문가 등 사이에 ‘키다리 아저씨’로 자리 잡았다.

재단은 2018년 6월 에스케이하이닉스가 출연한 343억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2014년 이후 <한겨레>가 에스케이하이닉스 노동자들의 반도체 관련 직업병 문제를 공론화시킨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장 이사장은 아주대 의대 교수이자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로 이 문제에 대한 조사와 보상을 다루는 산업보건검증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인연으로 재단 이사장까지 맡았다. 환경연합 공동대표를 하면서 환경·보건분야 인재를 양성하고 지원할 펀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차에 우연한 계기로 사회공헌 방법을 찾고 있던 에스케이하이닉스와 연결이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기업 돈으로 재단을 운영한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재원만 대고 운영에는 참견하지 않는 기업이 있으면 좋겠다는 공상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하이닉스 경영진이 이런 생각을 받아줬다. 파격적으로 이사진 구성까지 모두 나에게 맡기고 회사에서는 이사 한 명 파견하지 않고 일절 간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2년간 학교와 재단 사무실을 오갔던 그는 지난해 재단 일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를 떠났다.

재단 사무실 입구에는 ‘환경·안전·보건 분야 난제를 풀겠습니다’라고 쓰인 작은 게시판이 손님을 맞는다. 무척이나 원대한 목표다. 어떤 난제를 풀겠다는 것일까. 장 이사장은 “사실 미세먼지, 에너지, 폐기물 등 환경 안전 보건과 관련된 모든 문제가 난제일 수 있다. 목표는 크게, 실행은 차근차근히 하려고 한다. 우리 혼자 난제를 풀려는 방식보다는 인재를 육성하고 아이디어를 지원해서 함께 난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을 취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숲과나눔 누리집(koreashe.org) 참조.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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