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지난 8월22일 ‘에너지의 날’을 맞아 부산역 광장에 설치한 북극곰 조형물인 ‘열받곰’ 앞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요구하는 행위극을 벌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세운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 비중(30.2%)은 이번 정부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1.6%로 줄었다. 연합뉴스
온실가스 감축 등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과 관련한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기구인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가 정부에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원자력발전 비중을 확대하고 그만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축소하기로 한 윤석열 정부 방침에 사실상 제동을 건 것이어서, 향후 에너지 정책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한겨레>가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전기본) 관련 탄녹위 검토 의견’과 관련 취재를 종합하면, 탄녹위는 지난 10~11월 세 차례 회의를 열어 재생에너지 등 무탄소 발전 비중을 확대하라는 의견을 산업통상자원부에 보냈다.
산업부는 지난달 말 발표한 제10차 전기본 초안에서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30.2%에서 21.6%로 낮추고, 원전 비중은 23.9%에서 32.4%로 높이기로 했다. 전기본은 정부가 전력수급 안정을 위해 2년마다 전력 수요를 예측하고 그에 따라 전력 설비와 전원 구성(에너지 믹스)을 설계하는 15년 단위의 중장기 계획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확정하면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0.2%, 원전 비중을 23.9%로 잡은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탄녹위는 검토 의견서에서 “탄소중립 진전에 따라 전기화 수요가 증가했고 무탄소 전원 필요성이 확대돼, 재생에너지 등 무탄소 전원 발전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탄녹위는 이어 “에너지 믹스(전원 구성) 재조정 등을 할 때 정부는 명확하게 확인된 과학적 근거를 신속히 제시해야 한다”며 이번 10차 전기본 초안 성안 과정에서 이러한 내용이 빠졌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탄녹위는 또 내년 3월 탄녹위가 확정할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탄소중립계획)에서 도출되는 전원 구성 등의 내용을 차기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한다’는 문구를 10차 전기본에 표기하라고 요구했다. 이밖에 산업 분야에서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민간 공급 중심 재생에너지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범정부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 공동위원장인 한덕수 국무총리와 김상협 민간위원장이 지난 10월26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열린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수위 출신 인사들 ‘재생에너지 확대’에 딴지
이번 의견서는 9명으로 구성된 ‘에너지∙산업 전환 분과위’(분과위원장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가 작성했다. 지난달 1일 열린 2차 회의에서 위원들은 ‘아르이(RE)100’ 참여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재생에너지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며, 10차 전기본으로는 이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의견을 쏟아냈다. 아르이100은 기업이 필요한 전력을 전량 재생에너지로 구매하는 국제 캠페인으로, 납품∙협력업체도 이를 달성해야 해서 삼성∙엘지 등 국내 대기업은 물론 수출 중견기업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하지만 아르이100은 원전을 재생에너지에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져 왔다.
결국 지난달 9일 3차 회의에서 이 분과 위원들은 무탄소 전원에너지 확대가 필요하다는 문구를 논쟁 끝에 확정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대다수 위원들은 아르이100 등을 볼 때 재생에너지 비중이 너무 낮으니 (정부가)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며 “하지만 극히 일부 위원들이 ‘재생에너지만이 (탄소중립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라고 반대해, 비교적 중립적인 용어인 ‘무탄소 전원’이라고 의견서에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토 의견에 이의를 제기한 위원들은 원자력계 인사이거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한 이들로 알려졌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반대한 이들 가운데 한 위원은 “탄소중립을 할 때 에너지 믹스에서 과학적 근거를 확보해달라는 대통령 요청이 인수위 때도 있었고 탄녹위 출범 때도 있었다”며 “어느 전원을 확대할 것인지 대해 근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에너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명시하는 것에 반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탄녹위는 내년 3월 △연도∙부문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 △발전원별 비중 등이 포함한 2050년 탄소중립기본계획을 확정한다. 탄녹위 관계자는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탄소중립계획은 개념상 전기본 위에 있는 탄소중립∙에너지 최상위 계획으로, 탄녹위가 심의·의결한 뒤 국무회의에서 확정된다.
내년 탄소중립계획에서 재생에너지 비중 높아질까?
현재 환경부 산하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작업반은 탄녹위와 함께 부문별 전력수요 결과를 토대로 수요 적정성과 전원 구성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과위 회의에 참여한 또 다른 인사는 “제10차 전기본을 (내년도 탄소중립 기본계획 내용에 맞게) 바로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전기본이 2년 주기로 개정 기간이 짧은 만큼 차기에 맞추라고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탄소중립계획은 5년마다, 전기본은 2년마다 작성된다.
황인철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은 “정부 안에서조차 소통과 근거 제시 없이 10차 전기본이 추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첫 탄소중립계획에 재생에너지 확대만이 아니라 △1.5도에 부합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재검토 △과감한 에너지 수요 감축 계획 △기업에 대한 감축 책임 부과 등이 제대로 담기지 않는다면, 국제적인 기후악당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10차 전기본은 국회 산자위에 보고된 뒤 연말께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정책심의회에서 최종 확정된다. 이동주 의원은 “10차 전기본은 상위계획인 탄소중립계획과 정합성을 맞추어야 하는 만큼 탄녹위의 검토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는지 상임위에서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