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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조상님이 ‘비건’이었을지도 몰라…‘NO고기 뭇국’ 채식 차례상

등록 2023-01-25 07:00수정 2023-01-25 13:46

‘채식 차례상’ 명절 새풍속도
지난 22일 홍우열씨가 경기 수원 본가에서 차린 채식 차례상. 홍우열씨 제공
지난 22일 홍우열씨가 경기 수원 본가에서 차린 채식 차례상. 홍우열씨 제공

전, 떡국, 나물, 과일, 한과….

설날인 지난 22일 홍우열(28)씨가 경기 수원의 본가 차례상에 올린 음식이다. 언뜻 보면 여느 차례상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채식 차례상’이다. 떡국은 채수(채소로 우려낸 물)를 이용하고 고명으로는 표고버섯만 얹었다. 애호박전, 새송이버섯전, 고구마전에는 계란을 이용하는 대신 강황 가루를 입혀 노란색을 냈다.

최근 기후위기 대응과 동물권 보호 등을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이 늘면서 명절에도 채식 차례상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홍씨는 3년째 설과 추석 차례상에 다른 친척들이 먹을 일반 명절 음식과 비건(적극적 채식주의자)인 그와 어머니가 먹을 비건 음식을 함께 올리고 있다. 그는 서울 동대문구에서 비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나물 무침에도 소고기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등 비건 음식만큼은 완전 비건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서로 존중해주면서 비건이 공존하는 차례상인 셈이죠.”

지난해 설 조민주씨가 경북 칠곡의 본가에서 차린 채식 차례상. 조민주씨 제공
지난해 설 조민주씨가 경북 칠곡의 본가에서 차린 채식 차례상. 조민주씨 제공

서울 관악구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조민주(31)씨는 2014년부터 9년째 경북 칠곡의 본가에서 채식 차례상을 차리고 있다. 조씨는 비건이고, 부모님도 비건을 지향한다. 주로 차례상에 아버지가 직접 기른 과일이나 농사지은 쌀로 만든 떡을 올리고, 가끔 대체육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번 설에도 버섯과 다시마로 채수를 내고 두부 고명을 올려 떡국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때그때 있는 재료로 최대한 간소하게 차례상을 차리고 있어요. ‘차례상에 왜 이렇게 뭐가 없냐’고 하는 분도 있는데, 꼭 풍성하게 준비하기보단 필요한 만큼만 준비해 음식 낭비를 줄이는 게 환경에도 좋으니까요.”

홍씨와 조씨는 건강 문제로 채식을 시작했다. 이후 환경과 동물권을 보호하기 위해 채식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은 차례를 지내는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차례상을 차리자고 제안한다. “꼭 전에 계란물을 입혀야 조상님들이 좋아할까요? 기존 방식대로 하지 않고 비건으로 음식을 준비해도 차례를 지내는 본질만 새긴다면 충분히 좋아하실 거라 생각해요. 제 가족은 소고기뭇국 대신 파기름만 내 끓인 뭇국을 ‘노(NO)고기뭇국’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런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갈 수도 있고요.”(홍우열씨) “자기가 먹지도 않을 명절 음식을 만들면서 힘들어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비건 친구들이 많아요. 시대가 변하고 있는 만큼, 차례를 지내는 사람의 가치관에 맞는 방향대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조민주씨)

한국채식연합은 올해 1월 현재 채식 인구를 전체 인구의 4~5% 수준인 200만~25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원복 한국채식연합 대표는 “엠제트(MZ)세대가 국내 채식 인구의 50~60%를 차지하며 채식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채식 인구가 늘고 대기업들이 대체육, 채식만두 등 채식 제품을 더 출시하고 있는 만큼 채식 차례상도 새로운 차례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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