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구좌읍 행원리 풍력발전단지. 제주 연합뉴스
A: 결론부터 말하면, 챗지피티의 판정승이라고 봅니다.
아르이100(Renewable Energy 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글로벌 캠페인입니다. 영국에 기반을 둔 비영리단체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와 더클라이밋그룹이 2014년부터 시작했습니다. 28일 현재 기준으로 아르이100에 가입한 글로벌 기업은 399개에 이릅니다. 민간 캠페인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은 이 캠페인에 참여한 것을 넘어 부품 등을 공급받는 협력회사에 아르이100 참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업 생존에 필수가 되고 있는 셈이죠. 2022년 대한상공회의소가 벌인 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300개 제조기업 가운데 14.7%(대기업은 28.8%, 중견기업은 9.5%)는 애플, 베엠베(BMW) 등 글로벌 고객사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 압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르이100 참여기업은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달성을 목표로 하는데, 연도별 목표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정합니다. 예를 들어, 아모레퍼시픽은 목표 시점을 2030년으로 정했지만, 삼성전자는 그 목표를 2050년으로 제시했습니다.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원전, 석탄, 액화천연가스(LPG)를 비롯해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데요. 이렇게 전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방식별 구성을 ‘에너지 믹스’라고 합니다. 에너지 믹스와 관련해서도 아르이100은 중요합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르이100에 가입한 국내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충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챗지피티(ChatGPT)에 한번 물어봤습니다. “현재 한국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아르이100에 가입 기업의 수요를 감당할 수 있어?” 챗지피티는 “수요를 완전히 충족하기는 어렵다”고 답하네요. 다만, 챗지피티의 한계는 있습니다. 아르이100 가입 기업들의 구체적인 전력소비량은 모르고 있었고, 2021년까지의 지식만 학습했다는 점입니다.
반면,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구체적 근거를 들며 아르이100 가입 기업의 수요를 맞출 수 있다는 입장을 지난 1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밝혔어요. 전기본은 정부가 전력수급 안정을 위해 2년마다 전력 수요를 예측하고 그에 따라 전력 설비와 전원 구성을 설계하는 15년 단위의 중장기 계획입니다. 환경부는 제10차 전기본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아르이100 기업들의 수요를 근거로 재생에너지 확대를 요구했지만, 산업부는 지난해 10월 “금년(2022년) 재생에너지 공급량(예상)은 삼성전자를 포함한 현재 가입 기업(23개) 전체 전력사용량을 충당 가능한 규모”라며 이런 요구를 거부했어요. 2022년 재생에너지 발전량(예상)은 44TWh(테라와트시)인데, 아르이100 기업(23개) 전력소비량은 43~44TWh로 예상된다는 것이 그 근거였어요. 아르이100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소비량에 견줘 발전량이 부족하지 않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예상’이 아닌 확정 통계인 아르이100 가입 기업의 전력소비량과 2021년도 재생에너지 공급량을 보면, 산업부의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28일 <한겨레>가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한국전력공사로 자료를 보면, 아르이100 가입 기업 27개의 2021년 전력사용량은 53.9TWh였습니다. 이는 삼성 에스디아이(2022년 10월2일), 삼성 디스플레이(2022년 10월13일) 등 같은 해에 추가로 4개 기업이 아르이100에 가입한 것을 포함해 27개 기업의 2021년 전력사용량을 조사한 내용입니다. 또한 김 의원실이 산업부에서 받은 아르이100 가입 기업 23개의 2021년 전력소비량도 45TWh였습니다.
재생에너지 공급량을 나타내는 한국에너지공단의 ‘2021년 신·재생에너지 보급통계 확정치’(2021년 12월14일 발표)를 봐도, 2021년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3.6T Wh(총 발전량 대비 7.15%)로 나타났습니다. 아르이100 가입 기업 27개의 2021년 전력사용량보다 재생에너지 공급이 약 10.3TWh 부족하고, 23개 기업으로 따져봐도 1.4TWh 미달한 것입니다. “전체 전력사용량을 충당 가능한 규모”라는 산업부의 설명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재생에너지 신규 설비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에요. ‘2021년 신재생에너지 보급통계 확정치’를 보면, 2021년 재생에너지 신규 설비 보급은 4275㎿(메가와트)로 전년(5347㎿) 대비 20.04% 줄었어요. 구체적으로 태양광 신규 설비는 2021년 3915㎿로 전년(4664㎿)보다 16.1% 줄고, 풍력은 2021년 64㎿로 전년(160㎿)대비 60.2% 감소했어요.
이런 상황인데도 산업부는 문재인 정부의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안에서 제시한 신재생에너지 비율 30.2%를 제10차 전기본에서 21.6%로 낮췄어요. 신재생에너지 비율도 낮추고, 실제 재생에너지 신규 설비 보급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높아지는 글로벌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와 아르이100 국내 기업들의 재생에너지를 충족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여기서 잠깐, 신재생에너지는 신에너지(연료전지, 석탄가스화복합발전)와 재생에너지(태양광, 풍력 등)를 합한 것으로 아르이100은 신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올해 3월에는 대통령 직속 기구인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를 중심으로 ‘2030 엔디시 수정안’과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 확정될 예정입니다. 이때 다시 한 번 재생에너지 비율 등 에너지 믹스가 논의된다고 해요. 제10차 전기본을 논의할 때, 탄녹위는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무탄소 전원의 확대를 요구했는데, 이번에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는지, 높아진다면 얼마나 높아지는지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녹색연합을 비롯한 환경단체는 28일 “최근 탄녹위는 엔디시 이행방안과 추진 현황을 공유하고 산업계의 애로사항을 청취한다는 취지로 경제단체 대표들과 간담회 자리를 가졌다. 하지만 노동자, 농민, 청년,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각층의 참여와 목소리를 보장하는 과정은 전무하다”고 밝혔습니다.
기민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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