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26일 북해에 있는 독일의 섬 헬골란트에서 바닷새 가넷들이 플라스틱 쓰레기와 어망 잔해로 뒤엉킨 둥지에 앉아 있다. DPA 연합뉴스
플라스틱 때문에 발병하는 새로운 질병이 바닷새에게서 발견됐다. 호주와 영국의 연구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은 이 질환을 ‘플라스틱증(플라스티코시스)’이라고 명명하고, 야생동물에서 플라스틱으로 유발된 섬유증의 처음 기록된 사례라고 밝혔다.
5일 국제 과학저널인 ‘위험물질저널’에 최근 발표된
‘플라스틱증: 바닷새 조직에서 큰 플라스틱과 미세 플라스틱 관련 섬유화 특성 규명’ 논문을 보면, 연구팀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아닌 미세 플라스틱 조각으로 소화기관에 염증이 생기고, 지속적인 염증으로 인해 조직이 상처를 입고 변형돼 바닷새의 성장, 소화, 생존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이 플라스틱의 피해를 입은 바닷새는 붉은발슴새로 호주 해안에서 동쪽으로 600㎞ 떨어진 로드하우섬에서 서식한다. 10년 넘게 로드하우섬의 바닷새를 조사해온 연구팀은 붉은발슴새가 바다에서 플라스틱 조각을 먹이로 착각해 섭취하고, 또 (새끼들도 이 질병에 걸린 것으로 보아) 새끼들에게도 먹이로 준 것으로 본다.
연구팀은 붉은발슴새가 플라스틱을 섭취한 양과 위의 조직 사이의 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새가 더 많은 플라스틱을 섭취할수록 위 조직에 더 많은 흉터가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부상 후 생기는 일시적인 흉터 조직은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염증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과도한 양의 흉터 조직이 형성돼 조직의 유연성이 감소하고 구조가 변경될 수 있다. 이러한 질환은 붉은발슴새 위 내부에 있는 관 모양의 분비선을 점진적으로 파괴했다. 분비선을 잃게 되면 새들은 감염과 기생충에 더 취약해진다. 또 음식을 소화하고 비타민을 흡수하는 능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연구팀은 이를 플라스틱으로 인해 발생한 질병임을 분명히 하며 이를 ‘플라스틱증’이라고 명명했다. 연구진은 “‘플라스틱증’이라는 용어는 거의 30년 전에 잠깐 소개됐는데 금속 접합 교체 장치 내 플라스틱 구성품의 고장으로 정의돼 있다”며 “(그러나) 우리는 플라스틱증이라는 용어가 플라스틱으로 인한 염증과 섬유증으로 더 적절하게 정의돼야한다고 제안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또 “우리가 아는 한, 이것은 야생 유기체에서 플라스틱으로 유발된 섬유증을 문서화하고 정량화한 최초의 연구”라고 밝혔다.
현재 플라스틱증은 붉은발슴새에게서만 발견됐다. 그러나 전지구적으로 플라스틱 오염의 양을 감안할 때 다른 종들도 이 질병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 연구팀은 전세계 해양 플라스틱을 15조~51조 조각으로 추정한 한 연구를 인용하며 “더 작은 플라스틱 조각의 감지와 수집의 한계로 인해 현재 플라스틱 추정치는 크게 과소평가돼 있다”고 밝혔다. 2040년까지 약 10억 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육지와 바다에 버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3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유엔환경총회에서 175개국은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시키기 위해 2024년 말까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 협약을 제정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대해 “파리협정 이후 가장 큰 기후 합의”라는 평가가 나왔고, 다음 회의는 오는 5월 프랑스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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