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인근에 모인 4천여명의 시민들이 ‘두번째 지구는 없다’는 펼침막 등을 들고 정부에 기후정의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오늘 하루 연차를 내고 왔습니다.”
대전에서 직장을 다니는 정구철(43)씨는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후정의 파업에 참가하기 위해 연차를 냈다. 지난달은 기상관측망이 전국에 확충된 1973년 이래 ‘가장 더운 3월’로 기록됐다. 전국의 벚나무가 일찌감치 꽃망울을 터뜨렸고, 광주·호남 지역은 극심한 가뭄으로 물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정씨는 정부에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이날 집회에 두 아이와 함께 참석했다. 연차까지 쓰고 평일 집회에 참석한 건, 두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지켜주기 위한 것이다.
전국 350개 단체로 구성된 ‘4·14 기후정의파업 조직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함께 살기 위해, 멈춰’ 집회를 개최했다. ‘기후정의’란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가 불공평하게 나타나는 현상을 바로잡으려는 활동을 뜻하는 말이다. 주최 쪽은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는 윤석열 정부를 향해 ‘기후정의’를 요구하기 위해 이날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있는 세종시에서 집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9월24일 서울에서 개최된 기후정의행진에는 3만5천명(주최쪽 추산)이 참석했다. 하지만 주최 쪽은 이번 집회가 평일·비수도권에서 열리는 만큼 참석 인원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애초 3천명 정도가 참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날 집회 현장에는 이보다 많은 4천명의 시민이 모였다. 경찰 쪽에서도 정식 집계를 하지는 않았지만 “3천명이 넘게 온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기후 정의를 외치기 위해 직장인들은 연차를 내고, 자영업자들은 가게 문을 닫고 정부세종청사 앞으로 나왔다. 또 학생들은 체험학습신청서를 내고 이날 집회에 왔다고 했다. 이날 집회 현장에 나온 조은수(11)군은 “엄마가 우리 미래의 일이라고 해서 함께 왔다”며 “기후위기를 신경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조군의 손에는 “‘우리의 평생’을 위해 나의 하루를 멈춥니다”라는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열일곱살 동갑내기 친구 임은채·이현서양은 “평소 학교에서 기후위기와 지구온난화를 공부하면서 위기의식을 느꼈다”며 기후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경기 의왕시에서 달려왔다. 이들은 “봄인데 너무 덥고, 벚꽃은 빨리 피고, 산불도 많이 난다”고 걱정했다.
기후정의를 촉구하는 대규모 기후행동인 ‘4·14 기후정의파업’이 이뤄진 14일, 서울 구로구 디지털1단지 교차로 인근에서 민주노총 서울본부‧너머서울‧서울민중행동 등이 모인 2023년 차별없는서울대행진 주최로 기후정의 실현과 주거권 보장을 촉구하는 ‘폭우참사를 넘어 기후정의로’ 행사가 열렸다. 한 참석자가 기후정의를 위해 필요한 것을 스티커에 적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날 집회는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탄녹위) 앞에서 시작됐다. 박은영 4·14 조직위 집행위원장은 “탄녹위가 기업의 편에서 정의롭지 못하고 한가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탄기본)을 수립”한 점을 이유로 지적했다. 탄녹위가 2030년까지 산업부문의 탄소배출 감축 목표치를 기존의 14.5%에서 11.4% 낮춰준 것을 비판한 것이다.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이 자리에서 “윤석열 정부가 자본의 이해와 요구에 얼마나 충실한지 명명백백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했다.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또 윤 대통령의 임기 중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연평균 2%대 수준으로 묶어두었다가, 2027년 이후 감축량을 급속도로 늘리도록 한 것을 두고 “지금 정부는 펑펑 놀겠다는 것으로 무책임에 기가 찬다”고 비판했다.
1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4·14 기후정의파업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다가 죽은 듯이 드러누워 항의하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기민도 기자
집회 참가자들은 이후 산업통상자원부 앞으로 이동해 두번째 집회를 열었다. ‘오늘 육아를 멈추고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강언주 탈핵부산시민연대 집행위원은 “윤석열 정부의 핵 폭주 정책으로 10기 넘는 핵발전소가 줄줄이 수명을 연장하게 됐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에너지정책 때문에 지역주민들의 인권이 내팽개쳐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산업부 앞 집회 후에는 환경부를 향해 행진을 이어갔다. 시민들은 ‘기후부정의 당장 멈춰’ ‘생태학살 당장 멈춰’ ‘기후악당 정부 멈춰’를 외쳤다. 오후 4시쯤에는 집회 참가자들 모두 한 장소에 죽은 듯이 드러누워 항의를 표시하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는 기후위기가 모든 인류와 생명을 위협한다는 것을 경고하는 의미다.
이들은 △에너지 공공성 강화로 에너지 수요 대폭 감축 △에너지 기업들의 초과 이윤 환수 및 탈석탄·탈핵 추진 △공공 교통 확충 노동자·농민·지역주민·사회적 소수자들이 주도하는 정의로운 전환 △신공항·케이블카·산악열차 건설 추진 중단 △그린벨트 해제 권한 지자체 이양 시도 철회 등 6대 사항도 요구했다.
기민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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