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운동의 이론적 근거가 된 1975년 초판 <동물해방>(왼쪽)과 이번에 출판된 전면 개정판 <우리 시대의 동물해방>. 하퍼콜린스 제공
동물권의 고전인 <동물해방>의 전면 개정판(영문판∙하퍼콜린스 출판)이 출판됐다. 새로운 제목은 <우리 시대의 동물해방> (Animal Liberation Now)이다.
1975년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공리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77)가 스물아홉살 때 쓴 <동물해방>은 그동안 ‘인간의 동정’에 기대어 있던 동물운동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며, 현대의 체계적인 동물운동을 촉발했다.
싱어는 <동물해방>에서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면 인간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리주의 철학을 통해 입증했다. 또한 흑인 노예와 여성 등으로 ‘도덕 공동체’가 확장됐다며, 동물을 도덕적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은 ‘종차별주의’라고 비판했다.
“‘동물해방’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중대한 목표라고 생각되기보다는 다른 해방 운동의 서투른 모방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실제로 ‘동물에게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한때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논변을 조롱하기 위해 사용된 바 있다. 1972년 현대 여성해방론의 선구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권리 옹호>를 출간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은 그녀의 견해를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으며, 얼마 되지 않아 <동물의 권리 옹호>라는 책이 (여성 권리를 풍자하기 위해) 익명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전면 개정판에서 <동물해방>의 유명한 첫 문장은 바뀌지 않았다. 동물운동에 이론적 근거가 부재함을 드러내고, 노예∙비백인∙여성으로 도덕 공동체가 퍼져 온 역사를 상징적으로 지적한 대목이다.
하지만 <동물해방>이 출판된 1970년대에는 공장식 축산이 기후변화에 끼치는 영향이 밝혀지지 않았고, 동물의 고통을 평가하는 과학적 시도 또한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과학적 시도 또한 <동물해방>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달 25일 싱어가 재직하고 있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는 누리집을 통해
<동물해방> 전면 개정판 출간 소식을 알렸다. 이 대학교는 “현대 동물권 운동을 촉발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1975년 <동물해방>을 전면 개정한 것으로, 육류 소비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 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연구 그리고 지난 50년간 동물운동이 이룩한 성과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내용이 추가됐다”고 설명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공리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 위키미디어 코먼즈
<동물해방>은 1990년을 포함해 다섯번 일부 개정판이 나왔으나, 전면 개정해 나온 것은 48년 만이다. 이번 전면 개정판의 서문은 세계적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이자 비건(완전 채식주의자)으로 알려진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가 썼다. 싱어도 전면 개정판에 맞춰 이 책의 의의를 다룬 서문을 추가했다.
싱어는 ‘월드 북 투어’를 진행 중이다. 오스트레일리아 퍼스와 애들레이드에 이어 21일에는 온라인으로 전세계 독자를 만난다. (신청
http://rb.gy/kbgny)
그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지난 50년 동안 무엇이 변했느냐’는 질문에 “공장식 축산은 일부 지역에서 개선됐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악화했다. 중국은 지금 최대의 공장식 축산을 가지고 있지만, 국가적 기준 및 규제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제는 물고기도 고통을 느낀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며 “문어는 물론 바닷가재와 게 등 비척추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근거가 나오고 있다”가 말했다.
비건인 그는 굴은 가끔 먹는다.
굴이 고통을 느낀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유연한 비건’이라고 설명하며 “나는 굴을 즐겨 먹진 않지만, 굴을 먹는 데에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굴이 고통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굴 양식이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산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리주의자다운 그의 행동 방식이다.
급진적이고 고립적인 방식의 동물운동에도 그는 선을 긋는 편이다. 그는 “‘양심적인 잡식주의자’들은 공장식 축산 반대를 위해 연대해야 할 대상”이라며 “그들은 (공장식 축산) 식품 생산과정을 알려고 하고, 동물이 좋은 삶을 누리고 고통 없이 도살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심적인 잡식주의자는 고기를 먹되 될 수 있으면 줄이고 동물복지적으로 생산되는 고기를 먹는 이들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