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낮 기온이 34도를 넘기며 찜통더위가 이어진 31일 오후 한 직장인이 수성구 한 도로에서 햇볕을 가리기 위해 우산을 쓰고 얼음 음료를 마시며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폭염’와 ‘극한 호우’가 하룻동안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도깨비 날씨’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반도를 겹겹이 감싼 뜨거운 공기가 대지를 달구고 이로 인해 대기가 불안정해지면서 곳곳에서 국지성 소나기가 퍼붓는 상황이다. 소나기가 지난 자리에 남은 습기가 다시 햇볕과 만나 체감온도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무덥고 습해 찜통을 방불케 하는 한국의 여름철 날씨는 오랜 기상 현상이지만, ‘더우면 폭염, 비오면 폭우’ 수준으로 날씨가 극단으로 치닫는 현상에 대해선 기상학자들도 입을 모아 우려할 수준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31일 낮 최고기온이 31~35도에 육박하며 전국 대부분 지역데 폭염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강원도와 경북 일부 지역에는 호우특보가 내려졌다. 전날 경기도 안성 고삼면의 낮 최고기온이 올들어 전국에서 가장 높은 38.9도까지 치솟고, 서울 영등포구 등 서쪽 지역과 경기도 일산 등에 시간당 50㎜ 수준의 ‘극한 호우’가 쏟아진 데 이어,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연이틀 이어진 것이다.
기상청은 1일에도 전국 낮 최고기온이 36도까지 치솟는 등 폭염이 계속되고, 경기 북동부와 강원도 내륙 및 산지에 5~40㎜의 소나기가 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폭염은 적도 부근에서 연이어 올라온 제5호 태풍 ‘독수리’와 6호 ‘카눈’이 따뜻하고 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을 밀어올리고 있는 가운데, 중국에서 내려온 뜨겁고 건조한 티벳고기압이 위로 겹쳐지며, 뜨거운 공기층이 대기 하층부터 겹겹이 쌓이면서 일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높은 기온의 공기층이 중첩한다는 점에서, 언뜻 한반도가 정체된 ‘열돔’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열돔은 특정 지역에 공기 흐름이 일시적으로 정체되고 그 지역에 햇볕이 계속 내리쬐며 기온이 오르는 현상으로, 이번 폭염을 몰고 온 두 개의 거대한 기단 사이에는 공기 흐름이 형성된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7월31일 저녁 기상청 특보 발효현황. 기상청 제공
한낮의 더위가 대기 하층까지 달궈 대기가 불안정해지면서, 오후~저녁 시간을 중심으로 국지성 소나기가 퍼붓는 날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열대 중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증가해 대류활동이 강화되고, 우리나라 부근에 저기압성 순환을 강화해 남쪽으로 많은 양의 수증기가 유입되면서, 소나기의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소나기가 내리면 일시적으로 기온이 떨어지지만, 급격하게 높아진 습도는 비 갠 뒤 찾아드는 따가운 햇볕과 만나 체감온도를 더욱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예로, 지난 28일 강원도 철원 지역에선 소나기가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습도가 약 60%였는데, 소나기가 내리는 중엔 그 수치가 90%까지 치솟았다. 같은 조건이라면 습도가 10% 오를 때, 체감온도는 1도 상승한다. 단순 계산을 해봤을 때, 소나기가 그친 뒤 철원의 체감온도가 3도 정도 더 올랐단 얘기다.
기상학자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이처럼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며 우려했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지구온난화로 지구 평균온도가 높아지는 동시에 기상 변동성이 커져 극단적인 날씨가 나타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조 전 원장은 “1940년대와 비교해 현재 강수량이 거의 10% 늘어났는데, 실질적으로 이 강수가 여름철에 몰려 있어 봄철 가뭄과 여름 호우가 과거에 비해 심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중배 부산대 명예교수(대기환경과학학과)도 “올해 길어진 장마가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더) 극한 폭염으로 치닫았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며 “기후변화 시나리오보다 온난화의 수준이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게 가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지난 100여 년의 (국내 기상) 자료를 보면, 여름철 강수가 아열대 기후에서 볼 수 있는 국지성 집중호우, 변동성 많은 강수 등의 패턴으로 가고 있는 데다, 여름철에 집중되는 경향이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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