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한 주택 처마에 둥지를 튼 제비가 밖으로 나가고 있다. 둥지 아래에는 배설물 받침대가 보인다. 대전환경운동연합 제공
옛사람들은 처마에 둥지를 튼 제비를 내쫓지 않고 반겼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길조로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반기지 않는 사람도 종종 있다.
“저희 할아버지도 제비 둥지를 털어내셨거든요. 제비 배설물 때문에 그런 분들이 종종 계세요. 악취가 나는 건 아닌데, 보기에 좀 안 좋고 치우기 불편하니까 그러시는 것 같아요.” 탐조가이기도 한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의 말이다.
대전환경운동연합은 제비 둥지에 쓰는 배설물 받침대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이 사무처장은 “제비와 귀제비는 둥지를 틀고 스스로 배설물 처리를 하는데, 다 처리하지는 못해서 일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한다”며 “2020년 서남부터미널에 배설물 받침대를 설치한 이후 많은 사람의 요청이 있어 무료 배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골판지로 만들어진 배설물 받침대는 제비 둥지 밑에 붙여준 뒤, 배설물이 쌓이면 갈아주기만 하면 된다.
귀제비가 자신의 배설물을 물고 둥지를 떠나고 있다. 제비와 귀제비는 배설물을 스스로 처리하는 습성이 있다. 대전환경운동연합 제공
14일 대전환경운동연합은 대전 지역의 ‘제비∙귀제비 둥지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단체는 “제비는 80개 둥지와 34쌍 68개체, 귀제비는 94개 둥지, 42쌍 84개체를 확인했다. 귀제비와 제비를 합치면, 11개 지역에서 174개 둥지 76쌍 152개체에 이른다”고 밝혔다.
제비와 귀제비는 양쯔강 이남(강남)의 중국 본토와 동남아시아에서 겨울을 나고 한국에 찾아오는 ‘여름 철새’로, 과거에는 전국 어디서나 쉽게 보였지만, 농약의 사용과 가옥 구조가 변하면서 번식할 수 있는 처마가 사라져 개체 수가 급감했다. 제비는 밥그릇 모양의 둥지를 틀며, 귀제비는 이글루를 뒤집은 듯한 모양의 둥지를 틀고 입구를 좁게 만든다.
귀제비는 제비와 달리 몸통이 연한 황갈색을 띤다. 개체 수가 더 적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전국적인 개체 수 조사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 이경호 사무처장은 “제비는 작은 규모의 주택을 선호하고, 귀제비는 학교 같은 커다란 저층 건물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환경운동연합은 “이번 조사는 제보와 현장 모니터링을 통해 확인된 것으로 전수 조사로는 볼 수 없다”며 “대전시는 이번에 확인된 11개 지역에서 제비를 보전할 방안과 혹시 있을지 모르는 시민의 불편함을 개선할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배설물 받침대 신청은 (042)331-3700, 3702. 택배비는 자부담.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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