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한전)가 당장 내년부터 신규 회사채를 발행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내부 전망이 나왔다. 올해 전기요금이 소폭 인상되는 데 그치며 적자폭이 커져 회사채 발행 규모를 결정짓는 적립금이 급감한 데 따른 것이다. 한전 상황상 회사채 발행이 막히면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은 7일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2023∼2027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 문건 등에서 전기요금 인상이 이뤄지지 않고 에너지 가격과 환율이 기준안(기획재정부 전망치)보다 각각 10%, 5% 상승할 경우,
2024년 회사채 발행 한도를 초과해 연말에는 ‘자본금+적립금’의 7.3배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전기 판매 수익은 늘지 않는데, 에너지를 사오는 비용이 늘어나니 적자 폭이 커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적립금이 줄어 회사채 발행 한도가 줄어드는 데 따른 것이다.
이때 한전이 예상하는 올해 당기순손실(7조8천억원)을 현재 자본금+적립금(약 20조9천억원)에 적용하면, 내년 자본금+적립금은 13조 1천억원이 된다. 여기에 지난해 말 개정된 한국전력공사법(한전법)을 적용하면, 한전은 최대 6배인 78조6천억원까지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다. 하지만 한전의 회사채 발행 잔액은 지난 8월 말에 이미 78조3천억원까지 찼다. 내년 초 사채 발행 한도를 초과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이유다.
물론 이런 전망은 한전이 ‘부정적’ 상황을 가정해 내놓은 것이다. 한전은 이번에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을 세우며 전기요금과 환율, 에너지 가격을 변수로 넣어, ‘기준안’과 ‘긍정적 시나리오’, ‘부정적 시나리오’ 등 세가지 전망을 작성했다.
한전은 전기요금을 인상하고, 기재부가 지난 5월 제시한 2023~2027년 환율 및 에너지 가격 수준을 반영한 ‘기준안’에선 2025년 무렵엔 회사채 발행 범위 내인 ‘자본금+적립금’의 6배까지 회사채를 발행해야 하고, 2027년엔 4.1배 정도 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전기요금을 기준안보다 더 많이 인상하고, 에너지 가격과 환율이 각각 10%, 5% 하락한 것을 전제로 한 긍정적 시나라오에선 ‘회사채 발행 배수는 2024년 말 5배까지 상승했다가 2027년 말 1.9배까지 지속적으로 하락(개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올해 4분기와 내년 1·2분기에 전기요금을 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한전은 이런 전제를 고려하면, 올해 안에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한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회가 한전법 개정을 통해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기존 ‘자본금+적립금’의 2배에서 5배로 확대(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승인시 6배)한 지 1년도 채 안 된데다,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 추가 확대가 회사채 시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정연제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전기요금 인상을 하지 않고 버티려면 한전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그것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며 “정부가 효과 없는 ‘한전 구조조정’을 말하는 대신 전기요금을 인상하도록 힘을 쓰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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