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부발전이 지난해 ‘신재생 발전설비 건설 등’에 쓰겠다며 녹색채권(Green Bond)을 발행해 조달한 3200억원을 모두 화석에너지인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사업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엘엔지 발전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친환경 녹색경제활동으로 분류된 사업을 위한 녹색채권 발행 대상에 포함되긴 하지만, 신재생에너지와는 무관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학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26일 기후단체 ‘기후솔루션’과 함께 한국서부발전의 ‘녹색채권 사후 통합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서부발전이 녹색채권 공모 자금을 발행 목적과 다른 화석에너지 사업에 투자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실제 서부발전이 지난 4월 누리집에 게시한 이 보고서를 보면 서부발전은 지난해 3월 제52회 녹색채권으로 1300억원, 같은 해 5월 제53회 녹색채권으로 1900억원을 발행해 모두 김포 액화천연가스 복합발전소 건설 사업에 집행한 것으로 나와 있다.
환경부가 발행한 녹색채권 가이드라인(2020)을 보면, 녹색채권을 통해 마련되는 자금은 기후변화 완화·적응 등 목표에 기여하고 환경 개선 효과를 가져오는 녹색 프로젝트에 사용되어야 한다. 이 녹색채권 발행 당시 투자설명서에서 서부발전은 제52회와 제53회 녹색채권 발행자금 총 3200억원의 세부 사용 내용을 모두 ‘신재생 발전설비 건설 등’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엘엔지 발전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건설과는 무관한 화석에너지 사업이다. 석탄 발전보다 온실가스를 덜 배출한다는 이유로 환경부가 ‘2050 탄소중립’ 달성 등을 고려해 최대 2035년까지 한시적으로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했을 뿐이다. 서부발전의 녹색채권을 산 투자자들은 의도치 않은 화석에너지 사업 투자자가 된 셈이다.
그럼에도 이 녹색채권은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녹색채권 평가의 신뢰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서부발전이 누리집에 공개한 ‘이에스지 금융상품 인증 평가’를 보면 한국신용평가는 서부발전의 제52·53회 녹색채권에 대해 “본 녹색채권 조달 자금의 용도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투자”라고 밝히면서도 용도와 다른 자금 집행에 최고 등급인 ‘지비(GB)1’을 부여했다.
이학영 의원은 “녹색채권 발행 자금을 애초 용도와 다른 곳에 쓴 것이 확인될 경우 이후 발행에 제약을 가하는 등의 제재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